Constantinopolis

지역: 서아시아 · 좌표: 41.008, 28.980 · 사건 410건

사건 목록

해사료내용
32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콘스탄티누스가 다시 전쟁 — 뷔잔티움과 크뤼소폴리스를 점령, 리키니우스는 니코메디아로 도망
324년조시모스 새 역사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티온 성벽을 15스타디온 넓히고 궁전·경마장·광장·신전을 세우고 로마에서 따라온 원로원 의원들에게 집을 지어 주었다
33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콘스탄티누스가 뷔잔티움 자리에 도시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라 함
337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콘스탄티누스의 시신이 자기 이름을 붙인 도시로 옮겨졌고 로마 민중은 매우 슬퍼했다
36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콘스탄티우스가 죽자 율리아누스가 시신을 맞아 나란히 천도를 따라가 궁에 들어감(군·원로원 영접).
40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에우독시아가 크리소스토모스를 미워해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로스와 결탁, 아르카디우스에게 그를 유배시키도록 설득.
408년프로코피우스아르카디우스가 비잔티온에서 죽음을 앞두고 어린 아들 테오도시우스와 제국의 앞일을 어찌할지 고심
45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마르키아누스 사망 — 일부는 아스파르 사주 독살이라 함
45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레오 즉위 직후 아스파르가 아들 하나를 카이사르로 세우라고 재촉
47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아스파르와 아르다부리오스가 황제에 의해 제거됨 (일부 전승)
47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레오 1세 병사, 재위 18년 후 어린 손자 레오 2세가 뒤를 잇다
475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바실리스코스가 캄푸스에서 왕으로 추대됨 (제노 축출 시도)
49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제노 사망, 아리아드네가 아나스타시오스를 황제로 올림 (원로원·군대 동의)
5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트라키아인 비탈리아노스가 참주를 꾀하며 도시 쪽 농토를 황폐화, 함대로 도시를 공격
518년프로코피우스아나스타시우스가 죽고 유스티누스가 제위를 이었으며, 카바데스는 자기 사후 왕위 문제로 근심
51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아나스타시오스가 죽기 직전 음모 고발, 유스티누스·유스티니아누스 등을 체포
51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아나스타시오스 사후 후계 결정 — 아만티오스가 돈을 유스티누스에게 주어 군사에게 나눠 주게 함
531년프로코피우스헤르모게네스의 강화 사절이 실패하고, 벨리사리우스는 지휘권을 박탈당한 채 비잔티온으로 소환
532년프로코피우스비잔티온에서 청색당·녹색당이 갑자기 대폭동(니카 반란)
532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와 문도스가 병력을 이끌고 경기장 쪽으로 몰려든 군중을 공격해 진압 — 폭동이 끝남
532년프로코피우스황제가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동방 총사령관에 앉히고 리비아(반달) 원정을 보냄 — 페르시아는 평화를 후회
53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유스티니아누스가 큰 화재 뒤 더 크고 화려한 성당(소피아) 재건을 시작함
533년프로코피우스유스티니아누스가 반달 원정을 공표하나 다수가 레온 원정 실패를 떠올려 반대
533년프로코피우스7번째 해 하지 무렵, 총독 함선이 궁 앞 해안에 정박 — 총대주교 에피파니오스가 기도하고 출항
534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겔리메르와 반달을 데리고 비잔티온에 도착 — 600년간 장군에게 없던 개선 영예
540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비티기스와 고트 귀족·재물을 데리고 비잔티온에 도착 — 황제가 기쁘게 맞이
542년프로코피우스역병이 비잔티온에서 4개월, 절정 3개월 — 하루 5천에서 1만 이상 사망
548년프로코피우스황제가 파쿠리오스·세르기오스를 먼저 이탈리아에 보내고 새 원정군 준비
548년프로코피우스아르타바네스를 중심으로 유스티니아누스 암살 음모 모의
549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5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비잔티온으로 귀환 — 육지에는 상륙 못 하고 해안 요새만 오감
551년프로코피우스호스로에스의 사절 이스디구스나스가 비잔티온에서 장기 협상 끝에 5년 휴전에 합의
552년프로코피우스인도에서 온 수도사들이 황제에게 비단을 직접 만들겠다고 약속 — 페르시아 의존을 끊으려 함
600년테오파네스 「연대기」포카스가 마우리키우스의 아들들과 게르마누스 및 그 딸을 프로테 섬에서 처형하게 함
600년테오파네스 「연대기」포카스가 프라시니 당파에 분노해 공적 직무를 맡지 못하도록 단죄
600년테오파네스 「연대기」포카스가 마크로비우스 스크리보니우스를 광장에서 화살로 쏘아 죽이고 헤브도몬 성에 매달
60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포카스가 반란으로 황제가 되고 마우리키우스와 그 아들들을 죽임
61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헤라클리우스가 대함대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닿고, 소피아 항 해전에서 포카스를 이김
61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헤라클리우스가 포카스의 사지와 머리를 자르고, 남은 몸은 보우스 광장에서 불태움
61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헤라클리우스가 궁전 스테파노스 기도실에서 총대주교 세르기우스에게 관을 받아 즉위
610년테오파네스 「연대기」헤라클리우스가 긴 성벽까지 나가 차간을 맞아 평화를 굳히려 했으나, 차간은 맹약을 깨고 기습
61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헤라클리우스가 포카스를 사로잡아 옷을 벗겨 자기 앞에 끌어냄 — 포카스 몰락
613년테오파네스 「연대기」헤라클리우스가 부활절 뒤 페르시아 원정에 나섬. 출정 전 교회의 기물을 녹여 돈을 마련
62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아바르인이 트라키아에서 몰려와 배와 기계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열흘간 공격, 실패하고 물러남(같은 시기 페르시아 사르바로스는 칼케돈 포위)
62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헤라클리우스가 예루살렘 회복 뒤 도읍으로 돌아와 원로원과 시민의 환호를 받았다
674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아랍 함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앞 해안에 나타나 7년간 해전과 포위를 이어감
67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사라센 함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해전이 이어졌다; 포위를 풀고 키지코스를 차지해 겨울을 났고, 이듬해 봄 다시 도시를 쳤다
695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레온티오스가 반란을 일으켜 유스티니아누스 2세를 잡아 코를 자르고 케르소네소스로 유배
698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도시에 속임수로 들어온 지휘관(원문 Prefeis, 이름 판독 불가)이 시민 재산을 약탈하고, 레온티오스를 잡아 코를 자른 뒤 수도원에 가둠
698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아프시마로스(티베리오스)가 시카이로 배를 타고 들어와 배신으로 도성을 차지, 레온티오스의 코를 베어 수도원에 가둠
705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밤에 소수와 함께 수로로 몰래 들어가 도시를 차지하고 블라케르나이 궁을 점령
705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테르벨리스의 불가리아·슬라브 군과 함께 돌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음
711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필리피코스가 싸움 없이 도시에 들어와 곧바로 무장병을 이끌고 유스티니아누스를 치러 감
712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필리피코스가 제6차 공의회에 모였던 교부들을 아나테마(파문)로 단죄
713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필리피코스의 서기 아르테미오스가 황제로 선포되어 아나스타시오스라는 이름을 받는다
717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파트리키오스 레오가 동방 군대의 환영을 받아 성대한 의식으로 입성, 대성당에서 황관을 받음
717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사라센 군이 수많은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황제의 도시 원정에 나섬
717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식수 저장고가 말라 죽은 사람의 시체로 채워짐 — 포위 속 기아·식수 고갈 (주어는 OCR로 판독 불가)
717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레오 3세(이사우리아) 즉위 — 717년 3월 25일
740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10월 26일(수요일) 오전 8시경 큰 지진 — 테오파네스 인용
741년니케포로스 간추린 역사콘스탄티누스 5세(코프로니모스) 제위 계승 — 741년 6월 18일
780년테오파네스 「연대기」레오 4세 사망 (9월 8일)
780년테오파네스 「연대기」에이레네가 아들 콘스탄티노스(6세)와 함께 제위를 잡음 (9월, 인딕티오 4)
78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이레네 여제가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의 아내감으로 카롤루스 왕의 딸을 구하려고 사신을 보냄
788년테오파네스 「연대기」콘스탄티노스 6세가 아르메니아 출신 마리아와 혼인 (11월, 인딕티오 12). 원문은 어머니가 프랑크 왕녀 혼약을 깨게 했다고 씀
789년테오파네스 「연대기」콘스탄티노폴리스 큰 지진 — 사람들이 집 안에서 자지 못하고 천막·정원에서 지냄
79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니케포로스 카이사르(콘스탄티누스의 삼촌)를 황위에 올리려는 음모가 드러나 그의 눈이 뽑힘
795년테오파네스 「연대기」콘스탄티노스 6세가 테오도테와 혼인 (9월, 인딕티오 4, 성 마만스 궁) — 원문은 이를 불법 혼인이라 함
797년테오파네스 「연대기」콘스탄티노스 6세가 포르피라 방에 갇혀 눈이 뽑힘 (8월 15일, 에이레네 측 명령)
79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5년 뒤 이레네가 다시 황위를 되찾음
80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황위를 노린 음모. 아이티오스 측이 레오를 황위에 올리려 함(주어 판독 불확실)
80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날이 밝자 이레네를 궁에서 동쪽 궁전으로 옮김 — 이레네 폐위
806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니케포로스가 부활절 공동 투표로 총대주교가 되나, 플라톤·테오도로스가 반대함 (황제 니케포로스 1세와 다른 인물)
811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스타우라키오스가 중상을 입고 물러나자 미카엘(레단 쿠로팔라테스)이 원로원·군에 의해 황제로 선포됨
811년테오파네스 「연대기」미카엘 1세가 원로원·군 단위에서 히포드롬 황제로 추대됨 (10월 2일 제1시)
811년테오파네스 「연대기」미카엘 1세가 아들 테오필락토스를 대성당에서 황제로 대관 (12월 25일)
81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미카엘 쿠로팔라테스가 새벽에 황제로 선포됨. 스타우라키오스는 머리를 깎고 수도사 옷을 입음
813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레오가 황금문으로 들어와 궁정을 점령하고 미카엘은 제위를 놓음
813년테오파네스 「연대기」동방 장관 레오가 군에 옹립돼 도성 앞 연단에서 로마 황제로 추대되고, 정오 무렵 금문(크뤼세 문)으로 입성해 궁으로 들어감
813년테오파네스 「연대기」미카엘이 레오 옹립 소식을 듣고 아내(원문 'Proco- cia' 줄 끊김)와 자식들과 함께 시장 곁 기도실로 피해 들어가 머리를 깎고 수도복을 입음
813년테오파네스 「연대기」7월 11일 대성당 강단에서 총대주교 니케포로스가 레오에게 황관을 씌움 (대관)
8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아르메니아 출신 레오 5세가 황제가 됨 (소제목)
815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레오 5세가 성상 파괴를 공식 결정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동의를 강요
815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니케포로스 유배 뒤 테오도투스 멜리세노스가 대주교 자리에 앉음 (부활절 주일)
815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레오 5세가 성상에 대한 박해를 시작 (소제목)
815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니케포로스 추방, 테오도토스(카시테라스)가 계승 (소제목)
81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레오 5세가 미카엘 2세 음모 고발을 접수하고 직접 심문. 미카엘이 사형 판결을 받음
82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레오 5세가 성당 안에서 크리스마스 새벽 기도 중 살해됨
82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2세가 대성당에서 총대주교의 손으로 대관하고 황제로 추대됨
82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성상 공격 속에 미카엘(발부스)이 단죄됨 (소제목)
82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미카엘이 레오 5세를 죽이기로 함 (소제목)
82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레오 5세가 살해된 뒤 미카엘이 계승 (소제목)
821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토마스의 육군과 해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께 포위. 쇠사슬 항구가 뚫림
82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토마스가 며칠 뒤 다시 도시를 육지와 바다에서 기계·사다리로 공격
82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2세가 성문을 열고 기습해 토마스 군을 크게 무찌름. 토마스 함대도 흩어짐
82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2세가 이질로 사망하고, 시신은 성 사도 성당(성 유스티니아누스 제실)에 안치됨
82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2세의 아들 테오필로스가 10월에 황제로 즉위
82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즉위한 테오필로스가 아버지 레오 5세 쪽 관리들을 마그나우라로 불러 모은 뒤 체포해 처형
82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미카엘 2세가 재위 8년 9개월 만에 죽고 테오필로스가 즉위 (본문 2507, 소제목 2525)
82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테오필로스가 경건한 이들에게 몹시 가혹함 (본문 3108~3109)
84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테오필로스가 병으로 죽음. 죽기 전 원로원을 마그나우라에 모아 아내와 아들 미카엘을 맡김. 재위 12년 3개월
84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섭정 테오도라가 성상 숭배를 되살림. 총대주교 요안네스를 쫓아내고 메토디오스를 총대주교로 세움. 이어 성상을 교회에 복원
84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바르다스가 미카엘 3세와 짜고 총리 테오크티스토스를 궁정에서 제거. 도망치던 테오크티스토스는 칼에 맞아 죽음
85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북쪽 바다에서 온 루스(Rossi) 해군이 흑해 연안을 휩쓸고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위협. 이후 물러가 세례를 청함
867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3세가 궁정에서 밤 셋째 시각에 살해됨. 바실리오스가 권좌를 잇고, 미카엘이 시킨 암살 음모를 피해 살아남음
86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바실레이오스 편 음모자들이 술 취한 미카엘 3세를 덮침
86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바실레이오스가 나라를 굳히고 모든 이에게 황제로 환호받음
86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바실레이오스가 대성당에 들어가려다 포티오스 총대주교에게 막히자, 회의를 열어 포티오스를 교회에서 쫓아냄
86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즉위 초 귀족 몇이 바실레이오스에 맞서다 붙잡혀 벌을 받음
895년타바리 연대기슬라브인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913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시메온이 블라케르나에서 황금문까지 진을 쳐 도시를 노렸으나 성벽 방비를 보고 물러나 평화를 청함
9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알렉산드로스가 1년 1개월 재위 뒤 죽고, 일곱 살 콘스탄티누스가 단독 황제가 됨
9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안드로니쿠스 두카스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두카스가 알렉산드로스 죽음을 듣고 황위를 빼앗음 (도성 밖에 있었다)
9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도성 안 시가 전투: 섭정 쪽이 병력을 모아 맞서 싸움, 두카스 쪽 그레고라스 전사
91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콘스탄티누스 두카스가 목이 잘려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 바쳐짐 — 레오가 예언한 대로 두카스는 황제가 되지 못함
91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 레카페노스가 맹세를 어기고 궁에 들어가, 신의를 받고 대 헤타이리아르크로 임명됨
91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의 딸 헬레나가 콘스탄티누스와 혼인 (부활절 셋째 날, 총대주교 니콜라오스가 축도)
92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불가리아군이 아무도 막지 않는 가운데 페게 궁과 스테눔을 불태움
92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로마누스가 코스미디온 바닷가에 회담 자리를 마련, 시메온과 배 위 회담 준비 (시메온은 그 전 템플 불태움)
920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시메온 사후 불가리아 페트로스와 평화 맺음, 로마누스 딸 마리아와 혼인
92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가 9월 24일 카이사르(부황제) 칭호를 받음 (12월 대목은 조각 끝에서 잘림)
92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가 장남 크리스토포로스 외에 아들 둘과 손자에게도 황관을 씌움; 막내 테오필락토스는 성직자로 만듦
92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불가리아 왕 시메온이 도성 공격; 로마누스는 교외를 지키려 병력을 내보냄. 불가리아군 역습에 귀족 여럿 전사, 병사 일부는 배에서 빠져 익사
92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니콜라오스 총대주교가 죽은 뒤, 아마세이아 주교 스테파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지명됨
944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8월 15일 에데사 성상이 블라케르나이 성모 성당에 도착, 이튿날 총대주교 테오필락토스 등이 행렬로 대성당을 거쳐 파로스 성당에 안치
944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스테파노스 레카페노스(아들)가 아버지 로마누스 1세를 폐위해 프로트 섬으로 유배
94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가 콘스탄티누스와 맺은 약조를 어긴 것을 되짚음. 폐위 장면은 문장이 잘려 다음 조각으로 넘어감
948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로마누스 1세가 죽어 뮈렐라이온에 묻힘
959년레온 부제 「역사」로마누스가 콘스탄티노스 사후 제위를 이어받음
95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콘스탄티누스 7세가 독살 기운을 받고 도성으로 돌아온 뒤 죽음
963년레온 부제 「역사」니케포로스가 카이사레이아에서 수도로 진군함
963년레온 부제 「역사」요셉이 수도를 차지하려다 내부 소요로 실패해 달아남
963년레온 부제 「역사」니케포로스가 수도에 들어가 관을 받음
963년레온 부제 「역사」니케포로스가 테오파노와 혼인함
963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로마누스 2세 황제가 죽음(3월 15일)
963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니케포로스 포카스가 대성당에서 황관을 받음
96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노스 사후 왕비 테오파노의 부름을 받아 포카스가 수도로 돌아옴
968년레온 부제 「역사」12월 22일 제4시 맑은 하늘에 해가 가려져 땅이 어두워짐; 레온은 그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었다고 씀.
969년레온 부제 「역사」황후 테오파노가 요하네스 치미스케스를 몰래 궁으로 들여 니케포로스를 폐위하려는 공모가 짜임.
969년레온 부제 「역사」12월 11일 밤 공모자들이 궁 안 침실에서 니케포로스를 죽임; 그 자리에서 요하네스가 황제로 추대됨.
969년레온 부제 「역사」요하네스가 총대주교 폴리에욕토스의 조건을 받아들여 황후 테오파노를 프로티 섬으로 보내고, 레온 발란테스를 암살범으로 넘긴 뒤 성 소피아에서 대관.
969년레온 부제 「역사」황후가 도메스티쿠스와 공모해 자객을 침소 옆 경당 통로로 들였고, 잠든 니케포로스 황제가 살해당함
96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치미스케스 일당이 궁에서 니케포로스 포카스를 살해
969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치미스케스가 성탄절 대성당에서 황관을 받음
96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니케포로스 2세가 자던 중 칼에 찔림. 짐미스케스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죽어가는 황제에게 다가감
97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폴리에욱토스 총대주교가 짐미스케스 즉위 35일 뒤 죽고, 바실리오스 수도사(세아만드레노스)가 뒤를 이음
971년레온 부제 「역사」요하네스 치미스케스가 콘스탄티누스 포르피로게니투스의 딸 테오도라와 혼인; 즉위 2년째 11월.
972년레온 부제 「역사」레온 쿠로팔라테스(니케포로스의 동생)가 레스보스 유배지에서 빠져나와 몰래 콘스탄티노폴리스 맞은편에 상륙해 궁 열쇠를 위조해 입성을 꾀함; 발각되어 아들과 함께 두 눈이 뽑힘.
972년레온 부제 「역사」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선; 도로스톨룸을 '테오도로폴리스'로 개명하고 불가리아 왕 보리스에게 마기스테르 직함을 줌.
975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바실리오스와 콘스탄티노스(로마누스의 아들들)가 황제로 함께 올라 실권은 바실리오스 총관(praeses)에게
976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찌미스케스 요안네스가 독살로 죽음
976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찌미스케스가 제위를 두 아들 바실리우스·콘스탄티누스에게 넘김
98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지진으로 집과 교회가 무너지고 큰 성당 둥근 지붕(구체) 일부가 파손. 황제가 금 10 센테나리움을 들여 재건
1025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바실리우스 2세가 죽음 (본문 표기 LXXIT, OCR 그대로 — 수치 미검증)
1034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로마누스가 죽고 미하일이 즉위함 — 총대주교 알렉시오스가 궁으로 불려 감
1040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요한이 병든 황제를 설득해 조카 미하일을 카이사르로 세움 — 조에의 승계를 막으려는 것
1042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시민 폭동으로 조에·테오도라가 복위. 미하엘 5세는 눈이 뽑혀 수도원에 유배됨
104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민중이 조에를 극장에 세우고, 이어 테오도라 쪽으로 돌아서 대성당 쪽으로 몰려감
104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조에의 선택이 콘스탄티누스 모노마코스에게 기움 — 그는 로마누스 황제의 조카딸을 첫 아내로 맞았다 여읜 귀족
1043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루스(러시아) 군주 블라디메르가 대규모 함대로 수도를 공격. 바실리오스 테오도로카노스가 야간에 기습해 불배 화공으로 배 7척을 태우고 3척을 가라앉힘. 루스 함대는 바위에 부딪쳐 대다수 파손
1043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총대주교 알렉시오스가 죽고 미하일 케룰라리오스가 자리를 이음
1044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3월 9일 황제 공개 행렬이 시민 소요로 중단 — 시민이 모노마코스의 첩 스클레라이나의 황후 자리를 반대하고 죽이라고 외침, 황제는 궁으로 돌아감
1047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토르니키오스 반란군이 9월 수도 포위 — 블라케르나이 쪽 진영, 황제 측이 저녁 출격해 방벽을 뚫고 격퇴, 토르니키오스 물러남
104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레오 토르니키오스가 갑자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공해 성벽 앞까지 감 — 병사와 시민이 많이 따름
1054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모노마코스 사망 — 마강 수도원 근처에 장례, 황후 테오도라 단독 통치 시작
105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테오도라 황후 사망 — 8월 말, 장 질환으로
105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내시와 레오 신클렐로스가 노령의 미카엘 스트라티오티코스를 황제로 추대 — 실권은 측근이 쥠
1056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테오도시오스 반란 — 대성당으로 향했으나 총대주교와 성직자가 문을 닫아 막힘, 병력이 흩어져 체포되어 페르가몬으로 유배
1057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카엘 6세 스트라티오티코스가 제위를 내려놓고 자기 집으로 떠남 — 다음 날 암부스토스가 궁에 들어가고 이사키오스도 그날 저녁 입성
1057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이사키오스 콤네노스가 9월 1일 대성당에서 공식 행렬 뒤 황제로 대관
1057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미카엘 6세가 총대주교 말을 듣고 황제 표장을 벗고 물러남 — 콤네노스가 궁 점령 명령
1059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이사키오스가 콘스탄티노스 두카스에게 황위를 넘기고 스투디오스 수도원으로 들어감
106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에우도키아가 로마누스 디오게네스와 혼인, 디오게네스가 황제로 선포됨
1071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요안네스 카이사르 쪽이 황후 에우도키아를 수도원으로 보내고 미하일을 황제로 선포하며 로마누스의 귀환을 거부하다
1078년스킬리체스·케드레노스 「역사 개요」미하일 7세가 궁에서 쫓겨 수도원에 보내지고, 보타니아테스가 입성하다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코무니노스 일가가 새벽 전 문을 열고 가족을 데리고 콘스탄티노스 광장으로 나감 — 쿠데타 개시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반란군이 블라케르나 성문 자물쇠를 부수고 황실 마구간으로 들어감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성금요일(4번째 인딕티오, 6589년 4월)에 코무니노스 군이 콘스탄티노플로 진입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팔라이올로고스가 함대로 도착해 환호를 시작하자 성벽 위 코무니노스 측이 조용히 하라고 함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알렉시오스가 총대주교 코스마스의 오른손으로 황후 없이 대관됨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알렉시오스가 4번째 인딕티오 8월에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이삭에게 도성 행정을 맡김
1081년조나라스 역사 요약보타네이아테스가 궁을 떠나 페리블렙토스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복을 입음, 코므노이가 무저항으로 입성
1082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황제가 블라케르나 궁에서 교회 대회를 소집해 피고로서 교회 재산 정발을 변명함
1096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황제가 백작들과 고드프루아를 불러 신하의 서약을 하게 하려 함
1096년티레의 윌리엄베드로가 흩어진 군세의 잔병을 모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1096년티레의 윌리엄고드프루아가 황제에 사절을 보내 억류된 위그를 풀게 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1097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라틴군과 황제 측 사이에 양쪽에 사상자가 난 교전이 벌어짐
1097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백작들이 도성에 닿아 코스미디온 수도원 근처에서 히에론까지 군을 배치함
1097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보에몬드가 해명하자 황제가 디라키온에서의 옛 적대를 농담으로 상기시킴
1097년티레의 윌리엄콘스탄티노폴리스 성 앞에서 큰 전투 — 그리스군 대량 희생
1097년티레의 윌리엄노르망디 공 로베르와 외스타슈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황제의 큰 선물과 영접을 받음
1100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보고밀 교주 바실리오스의 제자들을 위해 궁 폴로장 치키스테리온에 화형대를 쌓음
1101년티레의 윌리엄황제가 튀르크를 부추겨 순례자를 매복 공격, 남은 자만 예루살렘에 이름
1102년조나라스 역사 요약안나(어머니) 사망 뒤 세바스토크라토르 이사키오스가 1년 안에 수도복 입고 사망
1118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황제가 숨을 거두기 직전 황후가 머리맡에 몸을 던짐 — 알렉시오스 서거
111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황제 알렉시오스가 병이 깊어 마지막에 궁에서 숨짐(AM 6626). 황제의 아들과 현 황제에게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있다고 전해짐
1118년조나라스 역사 요약황궁에 들어간 뒤 어머니·형제·자매를 어떻게 다룰지 카이사르 브리엔니오스가 측근과 숙의 — 새 일을 꾸밀까 두려워함
1148년티레의 윌리엄콘라트 황제가 귀국하고 프랑스 왕은 시리아에 머무름
1157년티레의 윌리엄플랑드르 백작 티에리가 도착;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왕의 혼인 사절을 보냄
1161년티레의 윌리엄왕이 트리폴리 백작 누이 밀리센트를 천거하나 황제가 1년 뒤 물리고 레몽의 딸 마리아를 아내로 맞음
1171년티레의 윌리엄왕이 일부 제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감, 황제가 맞음
1171년티레의 윌리엄황제 앞에 인도되어 정중히 대접받고 필요한 일을 협의
1180년티레의 윌리엄왕이 여동생을 세 번째 남편 온프루아에게 줌; 콘스탄티노폴리스 황제가 사망
1182년티레의 윌리엄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소요가 일어나 안드로니코스가 득세하며 라틴인에 대한 박해
1203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제4차 원정 군대가 이사키오스의 아들 알렉시오스를 데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십자군 함대가 해협을 거슬러 올라 콘스탄티노폴리스 맞은편 생 스테파노 수도원 앞에 닻을 내림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콘스탄티노폴리스 항구의 갈라타 탑을 공격해 점령 — 항구 사슬을 끊고 함대를 항구 안으로 들임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1203년 7월 17일 목요일 아침, 열흘 가까이 끈 준비 끝에 십자군이 성벽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함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도제가 눈먼 채 성 마르코 깃발을 들고 상륙을 밀어붙임 — 베네치아군이 성벽 탑 25개를 점령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알렉시오스 3세가 금은을 챙겨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도망하고, 시력을 잃은 이사키오스 2세를 다시 황제로 세움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젊은 알렉시오스가 8월 1일 성 베드로 축일에 그리스 황제식으로 대관됨 — 밀린 돈을 나눠 줌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그리스인과 라틴인 주민이 충돌하고 불이 나 도시가 이틀 밤낮 탐 — 라틴인 약 1만5천 명이 해협 건너 십자군 진영으로 옮김
1203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그리스인이 불붙인 배 일곱 척을 해협 바람에 실어 십자군 함대로 보냄 — 베네치아 배들이 밤새 불배를 끌어내 바다로 흘려보냄
1204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십자군이 40일 포위 끝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고 약탈 (4월)
1204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알렉시오스 5세 두카스가 알렉시오스 4세를 죽이고 그 딸 에우도키아와 혼인
1204년노브고로드 제1연대기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서사 도입부: 알렉시오스가 형 이삭을 눈멀게 하고 제위에 오르고 그 아들 알렉시오스를 가둠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그리스 귀족 무르추플로스가 밤에 알렉시오스 4세를 침상에서 끌어내 감옥에 가두고 스스로 황제가 됨 — 이사키오스 2세도 곧 죽고, 알렉시오스 4세는 목졸려 죽음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4월 8일 목요일 배에 올라 이튿날 금요일 아침부터 성벽 백여 곳에 공격 — 십자군이 밀려 배로 되돌아감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4월 12일 월요일 십자군이 성벽 탑들을 넘어 도시를 점령 — 무르추플로스는 황금문으로 달아남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13일 아침 부코레온 궁이 보니파키우스에게, 블라케르나이 궁이 헨리에게 항복 — 궁 안 금은과 궁중 귀부인들이 잡힘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약탈품을 세 교회에 모아 나눔 — 베네치아에 5만 마르크, 병력이 10만 마르크 이상을 나눠 가짐(보병 둘을 기마 한 명으로 셈)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볼드윈 대관식, 성 소피아 성당 — 1204년 5월 16일
1204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무르주플레스(눈 뽑힌 뒤 살해자) — 콘스탄티노폴리스 기둥 위에서 떨어뜨려 처형
1206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헨리 황제 대관식, 성 소피아 성당 — 1206년 8월 20일
1207년빌라르두앵 「콘스탄티노플 정복」헨리 황제가 보니파시오의 딸 아그네스와 성 소피아에서 혼인 — 1207년 2월 4일 무렵
1231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예루살렘 왕 요하네스 드 브리엔이 바다로 들어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1244년매슈 패리스 대연대기콘스탄티노폴리스 황제 발두인이 그리스인의 박해를 피해 달아나 황제 프리드리히에게 도움을 청함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점령하려 꾀함 — 성공하면 거기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게 한다는 계획 (주체는 이 줄 문맥에서 못 확인)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라틴인이 지키던 도시를 공격하자는 제안에 병사들이 흔들리지 않음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미카엘의 아들 요안니스가 볼모로 넘겨짐 — 그 어머니가 협정을 맺으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감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가 제노바인 교역(염료·양모 관련 거래)을 칙령으로 금지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제노바 배들이 황제 몰래 콘스탄티노폴리스 앞을 지나가자 황제가 분노해 제노바인을 굴복시킬 방도를 찾음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제노바 선원이 시비 끝에 사람을 죽이자 황제가 제노바인에게 그 사람(노 젓는 자)을 넘기라고 함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가 무스잘론에게 제노바인 전원을 지체 없이 몰살하라고 명령, 군이 집집마다 수색 준비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가 블라케르나이 궁 높은 자리에 서서 포로들이 한 명씩 줄지어 끌려가는 개선 행렬을 봄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라조이(Lazi) 사절들이 요안네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가서 황제의 딸과 혼인하기로 맹세함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라조이 군주 이오안니스 사망 — 아내 에우도키아가 아들을 데리고 수도로 감
1255년파키메레스 역사안드로니코스가 베네치아 함대의 수도 도발을 막지 않고 반격을 미룸
1261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스트라테고풀로스 부대가 밤에 성벽의 틈으로 15명 이상을 들여보냄
1261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스트라테고풀로스와 로마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 라틴인들은 도주하고 도시가 로마 측으로 돌아옴 (7월 25일)
1261년게오르기오스 아크로폴리테스 「역사」미카엘 황제가 8월 14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블라케르나이 근처 코스미디온 수도원에 진영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로마인이 도시(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음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콘스탄티노폴리스에 온 이탈리아인 대사단에게 황제가 휴전을 허락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도시가 황제 권력으로 돌아온 뒤, 상대 측이 아내와 아들을 보내 평화를 논의하게 함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미카엘이 힘으로 되찾은 도시의 전리품을 황제 몫으로 돌리고 평민 몫은 미룸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미카엘이 제노바·베네치아·피사 사람을 회유해 붙잡으려 하고, 안 따르면 무장 해제하려 함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미카엘이 노(老) 총대주교를 설득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오게 하고 거기서 다시 대관받으려 함
1261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가 도성 방어를 위해 밖의 병력을 도성 안에 들이고 가벼운 무장 병사를 많이 배치, 황제 본진의 기병은 출격 대비 대기
1267년파키메레스 역사1267년 5월 25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거의 개기에 가까운 일식이 보임(12분 가림)
1273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 쪽이 라틴인과 성찬 예식에서 교통하고 교황 이름을 언급하기로 합의하는 조건을 적음 — 라틴인이 도시를 쥐고 있는 동안 그들을 돕지 않는다는 단서 달림
1273년파키메레스 역사샤를 위협이 치워져 황제가 라틴 원정을 미뤄도 된다고 여김 — 교회 분열을 말하는 쪽의 구실이 없어졌다는 대목
1274년파키메레스 역사사절이 화해를 전해 오자 총대주교 면직과 교황 이름의 공개 낭송이 이어짐
1274년파키메레스 역사교회에서 부제가 교황을 공식 호명 — 그레고리오를 사도좌 수석 주교이자 보편 교황으로 선포
1275년파키메레스 역사베쿠스가 성령강림일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서품됨
1276년파키메레스 역사황제가 교황에게 사절을 보내 샤를의 계획을 몰래 캐물음
1282년파키메레스 역사콘스탄티노폴리스 황제에 맞서 카를로를 없애려는 음모 — 사람들을 선동, 카를로 생존 중
1282년파키메레스 역사미카엘 황제 유골을 셀림브리아에서 옮겨 불가리아 살해자(바실리우스 2세) 무덤 맞은편에 안치
1283년파키메레스 역사요셉 총대주교가 3월에 죽어 성 바실리오스 수도원에 묻힘
1283년파키메레스 역사전 총대주교 아타나시오스가 1월 15일 저녁 황제를 알현하러 감
1289년파키메레스 역사수도사 아타나시오스를 사르디스 주교로 정하고 황제 고해 신부로 발표함
1289년파키메레스 역사아타나시오스가 주교·수도사와 함께 나와 황제를 맞이함 — 총대주교 복귀 장면
1294년파키메레스 역사안드로니코스의 맏아들 미카엘과 샤를의 손녀 카테리나의 혼담 — 이탈리아 사절 세르 피에트로가 대표로 옴, 전날 저녁부터 혼례 의식 시작
1294년파키메레스 역사제노바와 베네치아의 불화가 최고조 — 서로 증오가 격렬
1296년파키메레스 역사베네치아 장선 75척이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기습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 일요일
1296년파키메레스 역사제노바 배들과 베네치아 배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해상 추격 — 베네치아 배가 가까이 다가옴
1296년파키메레스 역사12월 말 말다툼이 무력 충돌로 번짐 — 제노바인들이 흥분해 무장하고 도시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려 함
1324년조반니 빌라니 「신연대기」타타르 기병 30만이 2월 그리스로 들어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근처까지 약탈, 4월까지 머묾, 15만여 명이 죽거나 노예로 잡힘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안드로니코스 3세(젊은 황제) 이야기를 끝내고, 아홉 살 된 아들 요하네스가 남은 자리를 말함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남편 장례 뒤 사흘 만에 황후 안나가 궁정으로 돌아옴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총대주교와 주교들이 선황의 유언서(코디칠로스)를 내놓음 — 아내와 자식을 위한 지시가 적혀 있다고 함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아포카우코스와 총대주교가 황후를 따로 찾아가 칸타쿠제노스의 권한을 거두라고 설득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가 황후와 측근 앞에 나서서 연설을 시작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후 안나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칸타쿠제노스가 듣고, 아포카우코스가 다시 음모를 꾸밈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가 비잔티온을 떠나 트라키아 도시들로 향함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풀려난 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으로 돌아옴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총대주교가 교회 자리를 떠나 궁정에 머물며 황후 곁에서 아포카우코스와 함께 움직임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의 친지와 측근들이 모여 총대주교와 아포카우코스에게 사절을 보내 해를 가하지 말라고 요청 — 이어 군중과 충돌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의 어머니가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그 집이 헐림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총대주교 쪽이 지방과 도시마다 칸타쿠제노스 지지자들에 대한 파문·금지 서신 다발을 보냄
134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의 병사 일부가 비잔티온 시민의 초대를 받고 비잔티온 쪽으로 넘어감
1343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비잔티움과 트라키아의 로마 도시들이 곡식 부족으로 굶주림
1345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아포카우코스가 비잔티온 옛 궁 안에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살해됨
1345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어린 황제 앞 공개 논쟁 —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신적 본질·효능 구분을 조목조목 반박
1345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어린 황제가 그레고라스 편으로 판정했으나 판결을 공개하지 않음 — 칸타쿠제노스가 팔라마스 쪽이라 미룸
1345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스를 두고 종무회의(synodus)가 열림 — 편자 주 기록 (본문에는 회의 명시 없음)
1347년둑카스 「역사」칸타쿠제노스 군이 도시에 들어서고 궁에 갇힌 안나 황후와 어린 황제가 항복함. 칸타쿠제노스는 투르크 군에 선물을 주어 돌려보내고 사위 오르한에게 감사함
1347년둑카스 「역사」요한 5세와 칸타쿠제노스의 딸 헬레나의 혼례, 블라케르나이 성모 성당에서 대관. 칸타쿠제노스도 공동황제로 즉위, 아들 마태오스는 전제군주로 선포됨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 황제가 안나 쪽 사절을 돌려보냄 — 성채를 힘으로 차지할 수 있으나 그 뜻을 버렸다고 말함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다음 날 칸타쿠제노스 쪽 병사·지휘관들이 몰래 성채를 갑자기 공격 — 낮 무렵 투척 무기와 불로 블라헤르나이 신전 쪽 성문에 불을 지름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무장한 무리가 뚫고 들어가 성채의 바다 쪽 부분을 차지하고 주민 재산을 약탈 — 황제가 사람을 보내 공격을 말림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안나 황후가 밤을 지새운 뒤 아침 회의에서 사절을 보내 화해를 청함 — 용서는 빌지 않고 권한을 요구하다가, 칸타쿠제노스를 공동황제로 받아들이되 자신이 앞선다는 조건으로 물러섬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가 총대주교 요하네스를 쫓아내고, 비잔티움 궁에 가둬 감시하게 함.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베네치아 함대 지휘관이 에우보이아를 떠나 비잔티온으로 돛을 올림, 황제가 그곳에 오기를 기다림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비잔티온에 베네치아 해군 1만8천 명 이상이 모여 식량 값이 두 배로 뛰고, 베네치아 지휘부가 물자 부족에 몰림
1347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저자 그레고라스가 감금 중 극심한 억압 속에 놓임 (회고 대목)
1348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스가 디디모테이콘에서 불려와 비잔티움으로 달려와, 교리 논쟁이 시작됨.
1348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라틴 갈라타이인이 비잔티움에 전쟁을 걺. 뚜렷한 명분은 없었고, 비잔티움의 해운과 세입이 커질 것을 두려워한 것으로 본문이 풀이함.
1348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라틴인이 나흘 동안 비잔티움 해안 전체에 불을 지르고, 바다에 있던 배와 끌어 올린 배, 새로 짓던 삼단노선까지 태움.
1348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라틴인이 큰 배 여러 척에 발판과 장대를 세워 콘스탄티노폴리스 바다 쪽 성벽 위로 올리려 함 — 수비 측이 돌과 화살로 막아 냄
1348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가 시민을 모아 재정 부족과 전 시기 약속 불이행을 질책 — 시민들은 함대 비용을 내기로 약속
1349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비잔티움 수병들이 라틴 대형 수송선을 공격해 불태움 — 불길이 밤새 바다 위로 치솟음
1349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라틴 함대가 비잔티움 함대를 에워싸 공격 — 배가 뒤집혀 수많은 병사가 바다에 빠짐
1350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총대주교 이시도로스가 오랜 설사병 끝에 사망
1350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 측이 후임 총대주교 자리에 아토스산 수도자 칼리스토스를 불러와 세움
1350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와 황후가 그레고라스를 재물·직위로 회유했으나 그레고라스가 거절하며 반대 입장을 밝힘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봄, 베네치아 삼단노선 14척이 비잔티움 항구에 도착 — 베네치아·카탈루냐·비잔티움 연합이 흑해 입구에서 제노바 상선을 나포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가 트라키아 주교 22명만 소집해 공의회를 열려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가 공의회 전에 수도복을 받아 입고 궁정 출입을 끊기로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공의회 날 정교회 쪽 인사들이 궁에 들어갔으나 궁정 입구에서 기다리게 함 — 팔라마파는 궁 안에서 식사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가 모호한 맹세를 하고, 그레고라스 쪽 발언이 이어지자 말을 막으며 입을 다물라고 위협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 칸타쿠지노스가 칙령으로 그레고라스를 공의회에 소집한 날(5월 27일)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와 팔라마스가 논쟁을 하루에 끝내려 하자, 그레고라스가 공의회에서 연설하고 황제가 말을 끊음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주교 모임에서 황제·총대주교·주교들의 공동 표결로 팔라마스의 본질과 작용 구분 교리가 공표됨. 그레고라스는 신성모독이라 비난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주교들과 총대주교가 그레고라스 편 사람들에게 일어나 손을 대기 시작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 칸타쿠제노스 임석 궁중 공의회 첫 회의: 그레고라스가 팔라마스의 타보르 빛 교리를 반박하고, 황제 쪽에서는 궁중에서 황제 뜻에 맞서지 말라는 경고가 나옴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첫 회의를 해산하면서 사흘 뒤 다시 모이기로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회의 뒤 군중이 팔라마스를 찾아 해치려 하자 팔라마스가 몸을 숨김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이튿날 아침 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 쪽이 도시에서 소동을 부추겼다고 분노를 쏟음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사흘째 회의 전 팔라마스 쪽이 그레고라스를 돈과 약속으로 회유하려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가 회의 중 침실 밖으로 나가 팔라마스·주교들과 몰래 대책을 의논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가 재산 몰수를 위협하고, 다음 회의에 오는 자가 잡히면 감옥으로 보낸다고 선포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가 일어나 회의장을 나오고, 일행도 따라 나감(황제는 나가지 못하게 막으라 명령)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스가 황제에게 그들을 풀어 주라고 권해, 그레고라스 일행이 물러나게 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공의회 세 번째 회의 끝 — 열 개 항목 중 셋만 검토됐고 그 셋에서 팔라마스가 공개적으로 졌으나 회의는 끝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밤사이 고위 인사들이 다음 회의를 모의하고 대중 회의를 열어 판결 — 그레고라스 쪽은 말을 봉쇄당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네 번째 회의 — 그레고라스가 장 4를 읽기 시작하자 팔라마스가 격분해 주교들 사이에 소란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총대주교·주교들이 공동 칙령으로 신적 활동(operatio)은 본질과 구분된다고 선포 — 그레고라스는 이를 신성 모독으로 비판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밤 깊어 횃불을 켠 뒤 총대주교와 주교들이 그레고라스 쪽에 달려들어 손을 댐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주교 두 명이 습격당해 옷이 찢기고 주교 신분 표장을 빼앗김, 수염이 뽑힘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의 제자들을 힘으로 떼어 놓고 감옥에 넣음 — 남은 제자는 협박으로 관계를 끊게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안티오키아 관할 주교(티레) 한 명이 회의에서 무례하게 쫓겨나 이후 회의와 절연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며칠 뒤 그레고라스를 집에 가둬 말하기·쓰기·듣기를 모두 금함 (무기한 침묵령)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총대주교·주교·사제 전원이 긴 문서(톰스)에 자필 서명 — 찬성은 서명, 반대하던 이들은 말로만 반대하거나 서명만 함, 서명 않으면 처벌 위협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가 직접 톰스를 제단 위에 올려 바치는 의식 — 팔라마 쪽이 황제에게 권해 이루어짐 (점쟁이들의 꿈 풀이가 황제를 움직였다고 그레고라스가 주장)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톰스 서명 뒤 며칠 만에 제노바인(갈라타 거주)이 비잔티온 성벽 밖의 저택들을 불질러 전소시킴 — 시민들이 항구 문을 막고 성벽 밖 해안에 해자를 파는 계기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 칸타쿠젠노스가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해자를 파서 비잔티온 바다 쪽 성벽을 둘러싸게 함 — 제노바 공격 대비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황제와 총대주교가 보낸 사신(원로·귀족, 주교·학자들)이 그레고라스 집에 옴 — 새 톰스·새 칙령에 동의하고 팔라마의 글을 함께 제출하라고 요구, 그레고라스는 거부하고 사신들은 빈손으로 돌아감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사신들이 팔라마에게 글(libelli)을 내라 하자 모두 함께 거부 — 팔라마는 어떤 글로도 참회를 적어 주지 않겠다고 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가 분노해 황제에게 가서, 그레고라스에게 글을 넘기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새 칙령과 판결문을 몰래 여러 곳으로 보내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레고라스와의 접촉은 귀나 눈으로도 금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의 집 문에 빗장을 더 달고, 앞·뒤·좌우에 감시인을 세우고 이웃을 감시자로 씀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의 축일 설교가 팔라마스 파를 격분시킴 — 그들이 설교 전체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음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팔라마스 파가 그레고라스에게 황제의 칙령을 거스르지 말라고 경고함
1351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그레고라스를 다시 더 엄하게 가둠 — 문에 빗장을 걸고 간수를 더 엄한 자로 바꿈
1353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가 오레스티아스에 있는 사이 팔라이올로고스가 배 18척(단노선·이중노선)과 삼단노선 1척으로 비잔티온 어귀에 나타나 도성을 위협
1353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칸타쿠제노스의 아들 마타이오스가 방패 위에 올려져 왕으로 선포됨(로마 궁정)
1353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칼리스투스 축출 며칠 뒤 헤라클레이아 페린투스 출신 필로테오스 코키노스가 총대주교좌를 얻음
1354년둑카스 「역사」밤에 호데게트리아 문 앞에서 기름 항아리를 깨뜨려 소음을 내는 꾀로 문지기를 유인, 무장 500이 삼단노선에서 나와 성에 침입. 새벽에 요한 파라이올로고스 만세를 외치며 시민이 모임
1354년둑카스 「역사」칸타쿠제노스가 제위를 내려놓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함 (아토스 산)
1354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밤 지진으로 저자가 갇힌 방이 흔들려 벽 일부와 책들이 무너짐
1354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겨울 한밤 팔라이올로고스가 테네도스에서 사흘 만에 몰래 도성 안으로 들어옴 — 이중노선 2척·단노선 11척으로 해 뜨는 쪽 항구 통과
1354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며칠 뒤 칸타쿠제노스가 궁을 나와 수도사 옷을 입고 아내 에우게니아와 함께 망가나 수도원으로 피함
1354년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왕이 몰래 비잔티온으로 돌아가 왕비를 찾아감
1369년둑카스 「역사」칸타쿠제노스가 정사를 홀로 맡는 가운데, 향락에 빠진 사위 요한 5세를 책망하자 요한이 삼단노선 두 척으로 이탈리아로 떠남
1373년둑카스 「역사」무라드의 아들 쿤투제스와 요한의 아들 안드로니코스가 아버지를 몰아낼 음모를 꾸밈. 무라드가 쿤투제스의 눈을 멀게 하고 안드로니코스도 같게 하라고 요구
1373년둑카스 「역사」요한이 안드로니코스와 어린 손자 요한의 눈을 멀게 하고, 마누엘을 공동황제로, 테오도로스를 라케다이몬 군주로 세움. 안드로니코스는 아네마스 탑에 가둠
1376년둑카스 「역사」탑에서 탈출한 안드로니코스가 갈라타 제노바인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전투를 벌인 끝에 도시에 들어가 황제로 선포되고 아버지와 형제들을 같은 탑에 가둠
1390년둑카스 「역사」바예지드가 조공과 요한의 아들 한 명을 100명 병사와 함께 보내라고 요구. 마누엘이 파견되어 바예지드 밑에서 복무. 바예지드는 곡물 반입을 막고 함대 60척으로 키오스를 불태움
1390년둑카스 「역사」요한이 황금문 방비를 쌓아 올림. 옛 성당(모든 성인·40인 순교자·성 모키오스)의 석재를 헐어 가져다 씀
1391년둑카스 「역사」바예지드가 황금문 방비를 허물라 명하고 어기면 프루사에 있는 마누엘의 눈을 멀게 하겠다고 위협. 통풍으로 누운 요한이 방비를 허물었으나 곧 죽음
1394년둑카스 「역사」바예지드가 도시를 봉쇄: 사방에 군사 1만 이상을 두어 반출입을 막자 도시에 기근이 닥치고, 시민은 땔감이 없어 높은 집을 헐어 불을 땜
1395년둑카스 「역사」마누엘이 교황과 프랑스·헝가리 왕에게 도시가 포위되어 굶주린다고 알리고 도움을 청함. 도움이 없으면 신앙의 적에게 넘어간다고 경고
1399년둑카스 「역사」바예지드가 도시를 요구하고 안드로니코스의 아들 요한(셀림브리아)을 앞세워 마누엘 퇴위를 압박. 시민 소요 속에 마누엘이 요한을 도시에 들이기로 하고 아내·자녀와 삼단노선으로 도시를 떠남
1399년둑카스 「역사」요한 7세가 입성하여 제위에 올라 바예지드의 조건대로 도시에 투르크 재판관을 두고 셀림브리아를 바예지드에게 넘김
1402년둑카스 「역사」봄, 해가 쌍둥이자리를 지날 때 서쪽 하늘에 밝은 혜성이 나타나 가을 분점까지 이어짐. 두카스는 전쟁의 징조로 서술
1403년둑카스 「역사」마누엘이 비잔티온으로 돌아와 조카에게서 정권을 되찾음. 바예지드의 장남 무슬림(술레이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마누엘의 발 앞에 엎드려 아들이 되겠다고 서약
1411년둑카스 「역사」모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 기계를 마련하고 테살로니케를 공격, 마누엘이 옮겨 놓은 주민이 떠난 도시들을 불태움
1414년둑카스 「역사」메흐메트의 아들 무라드는 이후 아마시아로. 한편 마누엘이 아들 요한에게 러시아 공주를 신부로 맞이하고 안나로 개명, 3년 뒤 역병으로 안나 죽음
1417년둑카스 「역사」볼모로 있던 바예지드의 아들이 요한 황제와 함께 공부하다 역병 중 세례를 청해 요한 황제가 대부가 됨. 이튿날 죽어 스투디오스 수도원에 안치
1419년스프란체스 「연대기」요한 8세가 몬페라토 후작의 딸 소피아와 혼례, 성 소피아에서 대관식
1420년둑카스 「역사」메흐메트가 무스타파 인도를 요구하나 마누엘은 거부하고, 두 사람을 감옥에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맹세. 무스타파는 렘노스로 보내져 연 30만 아스프로스 생활비를 메흐메트가 대기로 합의
1421년둑카스 「역사」마누엘이 사절을 이탈리아에 보내 몬페라토 후작의 딸을 요한에, 말라테스타 백작의 딸을 테오도로스에게 맞이함. 요한·테오도로스 혼례 거행
1421년둑카스 「역사」마누엘이 무라드에게 사절을 보내 유언대로 어린 두 왕자를 인도하라 요구하자 파샤는 이슬람 아이를 그리스도교도 손에서 키울 수 없다며 거부. 마누엘은 무스타파를 풀어줄 구상
1422년스프란체스 「연대기」무라트 2세가 군대를 보내 6월 8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6월 15일 본인이 도착해 공격, 9월 6일 성과 없이 철수
1422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오스만 선발군이 6월 10일 콘스탄티노폴리를 에워싸 봉쇄 시작
1422년스프란체스 「연대기」무라트 본대가 도착해 명령으로 성벽 바깥에 흙 제방(agger)을 쌓음
1422년스프란체스 「연대기」8월 24일 오스만 대규모 공격이 격퇴됨 (오스만 측 천여 명 사상, 방어 측 부상 100 미만·사망 30 이하)
1425년스프란체스 「연대기」마누엘 2세 황제 사망 — 7월 21일, 죽기 이틀 전 수도사로 서품, 판토크라토르 수도원에 묻힘
1426년둑카스 「역사」요한이 몬페라토 출신 황후를 외모 탓에 멀리하자 황후가 갈라타의 제노바인과 짜고 탈출, 배로 이탈리아로 떠나 친정에서 수도원 생활
1426년스프란체스 「연대기」소피아 황후가 남편 요한 8세를 떠나 고향(몬페라토)으로 돌아감
1427년스프란체스 「연대기」요한 8세가 트레비존드의 콤니노스 가문 공주와 혼인, 황후(Augusta)로 선포
1436년스프란체스 「연대기」파라스폰델리스 딸 조에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들어와 데메트리오스와 혼인
144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데메트리오스가 군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144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콘스탄티노스 데스포테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펠로폰네소스로 감
1448년둑카스 「역사」[색인] 요한 황제가 죽고 전제군주 콘스탄티노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와 황제 자리에 오름
1448년스프란체스 「연대기」황제 요한 8세 사망(10월 31일)
1452년둑카스 「역사」[색인] 콘스탄티노스가 교황에게 원조를 청하고 교회 합동을 완수. 이시도로스 추기경이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와 성소피아에서 합동 예배
1452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 2세가 대군을 이끌고 도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1453년둑카스 「역사」[색인] 메흐메트가 거대한 청동포를 콘스탄티노폴리스 근처로 옮기게 하고, 투르크군이 흑해 연안 도시를 점령, 셀림브리아를 빼고 프로폰티스 연안 소도시를 차지
1453년둑카스 「역사」[색인] 성이 함락: 성이 뚫리자 유스티니아니는 부하를 철수시키고 갈라타 사람과 배 몇 척이 도망. 투르크가 시민을 포로로 끌고 가고, 대공(노타라스)이 사로잡혀 감시당함
1453년둑카스 「역사」[색인] 메흐메트가 도시에 입성해 성소피아로 가서 이맘에게 기도를 올리게 함. 콘스탄티노스 황제의 머리를 알아본 뒤 아우구스테이온 기둥에 매닮
1453년둑카스 「역사」[색인] 메흐메트가 노타라스를 위로하고 귀족 이름을 적게 함. 노타라스 아내를 찾아 위로하나 연회에 막내아들을 보내라 하자 거부, 메흐메트가 아들을 죽이게 하고 노타라스도 참수. 귀족은 몸값을 치른 뒤 모두 살해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오스만군이 길이 100피트·너비 50피트의 다리를 놓고 그 위에 공성탑을 얹은 뒤 배를 대어 항구 쪽 성벽을 치기 시작함.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황제가 회의를 열어 성벽 구역을 지휘관들에게 나눠 맡김. 테오필로스 팔라이올로고스에게는 셀림브리아 문 근처를 맡김.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베네치아인 자코모 코코가 배 세 척(그리스 불 장치)으로 야간 기습을 시도했으나 실패. 청년 40명이 죽고, 오스만 쪽이 다음 날 아침 전원 처형. 이에 황제는 포로 튀르크인 260명을 처형하게 함. 베네치아인과 제노바인 사이에 다툼이 생김.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오스만 쪽 큰 헬레폴리스(공성탑)가 성 테오도로 언덕(갈라타 맞은편)에서 항구 입구의 기독교 쪽 주력선 한 척을 불태워 가라앉힘. 그 전에 배들은 갈라타 쪽으로 물러났음.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가 명령(5월 27일 저녁: 금식·목욕)을 내린 뒤 다음 날 저녁 병사들에게 연설. 도시를 사흘간 병사들 것으로 한다고 약속.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두 번째 닭 울음 무렵 신호 없이 총공격 시작. 헬레폴리스·사다리·배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두 시간 가까이 격전.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제노바 지휘관 유스티니아니가 오른발에 화살을 맞고 자리를 떠나 갈라타로 건너가 그곳에서 죽음. 지휘관 이탈로 병사들이 동요.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예니체리 하산(Chasanes)이 약 30명을 이끌고 성벽을 올라 방어군을 밀어냄. 하산은 돌에 맞아 쓰러짐. 이후 오스만군이 성벽을 차지하고, 바깥 성벽을 버린 방어군이 문으로 몰려 도시 안으로 밀려 들어감.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오스만군이 성 로마노스 문 근처에 큰 헬레폴리스를 세워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틈으로 도시에 처음 들어감.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크레타 선원들이 탑 두 곳에서 버티다가, 배와 짐을 가지고 나가게 해 준다는 약조에 따라 내려옴. 설득에 시간이 걸림.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오스만군이 도시 전체를 장악. 원문은 함락 시각을 셋째 날 두 번째 시 반으로 기록.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함락 뒤 약탈과 포로 잡기. 여성과 성직자를 교회에서 끌어냄, 성물 파괴와 약탈이 이어짐(원문 서술).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황제(원문 imperator·dominus meus)가 전사. 시신은 황제용 장화와 금 독수리 장식으로 확인되어 황제 예법대로 묻힘. 원문은 생애 49년 3개월 20일로 기록.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노타라스 대공이 금·보석 등 재물을 메흐메트에게 바치며 목숨을 빎. 메흐메트는 그 자리에서 감옥에 가둠. 다음 날 다시 불러 캐묻고 질책.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가 노타라스와 아들 둘을 광장('마른 언덕 광장')에서 처형. 아들들을 먼저 죽이고 노타라스 본인도 처형.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가 알리 파샤를 탑에 가둔 뒤 며칠 만에 죽임. 원문상 이유는 도시 공격을 말렸기 때문.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가 승리를 축하하며, 숨었던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자기 관습과 종교대로 살라고 공포. 총대주교도 뽑게 함.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주교·성직자들이 학자 조르지오스 스콜라리오스(당시 평신도)를 뽑아 총대주교로 세움. 이름은 겐나디오스로 바뀜. 메흐메트가 총대주교의 지팡이(pedum)를 줌.
1453년스프란체스 「연대기」메흐메트가 카파·트라페주스·시노페·아스프로카스트로에서 이주민을 데려와 도시를 다시 채움(원문 튀르크 말 'surgunides').

그곳이 든 같은 일

지도에서 보기 — 니케포로스 그레고라스 「로마사」 사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