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반도 · 좌표: 37.971, 126.554 · 사건 988건
| 해 | 사료 | 내용 |
|---|---|---|
| 1392년 | 조선왕조실록 | 도당에 한양 천도를 명하다 |
| 1392년 | 조선왕조실록 | 유구국 사신과 오량합의 사람이 조회에 참여하다 |
| 1393년 | 조선왕조실록 | 도순문사 조온이 왜구를 공격하다가 명나라 사람을 포로로 바치니 요동으로 호송하다 |
| 1394년 | 조선왕조실록 | 임금이 직접 천도할 무악 땅을 돌아보다 |
| 1395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살마수 총주와 중이집원 태수가 잡혀 있던 사람들을 보내오다 |
| 1395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에 잡혀 있던 포로 570여명이 돌아오다. 구주절도사가 보낸 글 |
| 1396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좌경 권대부 다다량 의홍이 사신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구하다 |
| 1396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동래 만호와 석포 천호가 왜선 1척을 잡아 바치다 |
| 1396년 | 조선왕조실록 | 섬라곡국에 사신갔다 오던 일행 중 왜구에게 잡혀 모두 죽고 이자영 만이 돌아오다 |
| 1396년 | 조선왕조실록 | 왜선 120척이 경상도에 들어와 수군 만호를 죽였으며 동래·기장·동평성을 함락하다 |
| 1396년 | 조선왕조실록 | 왜선 60척이 영해 축산도에서 투항해 오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왜구의 괴수 상전과 어중 등이 울주의 지주사 이은과 반인 등을 잡아 도망가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나가온이 80인을 거느리고 밀양부에 이르니 관찰사 이지가 술을 대접하였으나 기습하려 함을 눈치채고 도망가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왜괴가 관찰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먼저 양식을 줄 것을 청하니 쌀 2백석을 주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왜적에 포위된 선주성을 이성도의 부만호 김원계가 구원하다가 전사하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관찰사가 수군 만호 최원충이 왜선 1척을 잡았음을 보고하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진을서·신극공·신유현·장사정을 보내어 풍해도와 서북 연해의 왜적을 잡게 하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순녕군 지·상의중추원사 이천우 등을 해로로 보내어 왜구를 잡게 하다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육주목의 사자가 돌아가니 박돈지를 회례사로 보내며 도당에서 회답하는 글 |
| 1397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관서도 구주의 탐제 원도진이 사람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구하다 |
| 1398년 | 조선왕조실록 | 동북 쪽 변방을 침략하려는 육청 우지개를 정벌케 하다 |
| 1398년 | 조선왕조실록 | 제1차 왕자의 난.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숙청되다 |
| 1398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의 육주목 다다량 의홍이 사람을 보내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구하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도총관 종정무가 사신을 보내 방물 등을 바치며 왜구의 근절을 맹서하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바닷물이 나흘 동안 피같이 붉고 물고기가 죽어 통도사에 기양 도량을 열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등지에 바닷물이 검붉어지고 물고기들이 썩어 죽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이달에 일본국의 절 주지가 사람을 시켜 예물을 바치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왜선 7척이 서북면에 이르러 항복하니, 안마와 의관을 하사하다 |
| 1399년 | 조선왕조실록 | 구륙이 항복한 왜인 14명을 데리고 오다 |
| 1400년 | 조선왕조실록 | 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을 토산에 추방하다 |
| 1400년 | 조선왕조실록 | 세자가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사면령을 반포하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안변 부사 조사의가 군사를 일으키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상호군 박순이 함주에 갔다가 조사의의 반란군에 의해 피살되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전 전서 이화영이 동북면에서 처자를 데리고 도망해 오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호군 김옥겸이 안변 부사 조사의에게 잡혔다가 도망해 오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호군 송유가 명령을 받고 함주에 갔다가 반란군에게 피살되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상호군 김계지가 안변에서 돌아와 동북면의 상황을 전하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이천우가 옛 맹주로 보낸 기마유격대 백여 인이 조사의에게 잡히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이천우가 맹주의 애전에서 조사의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다 |
| 1402년 | 조선왕조실록 | 조사의의 군사가 안주에 이르러 스스로 궤멸하다 |
| 1404년 | 조선왕조실록 | 요동 천호 왕가인이 동북면 여진족에 보내는 칙서를 가지고 오다 |
| 1404년 | 조선왕조실록 | 계품사 김첨이 여진 지역을 조선에서 관할하기를 청하는 주본과 지도를 가지고 명에 가다 |
| 1405년 | 조선왕조실록 | 명사신 고시라 등이 오도리 방면에 도착했다는 길주 안무사의 보고 |
| 1407년 | 조선왕조실록 | 천추사 노한이 의주에 도착, 황제가 세자의 조현을 허락했다는 급보를 올리다 |
| 1407년 | 조선왕조실록 | 세자 이제를 하정사로 경사에 보내다. 사신 일행의 명단 |
| 1408년 | 조선왕조실록 |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하시다 |
| 1409년 | 조선왕조실록 | 내사 해수의 오만함에 대해 탄식하다 |
| 1410년 | 조선왕조실록 | 길주도 찰리사 조연 등이 모련위 지휘 파아손 등을 섬멸하였다는 승전 보고 |
| 1410년 | 조선왕조실록 | 올량합의 두칭개 등에게 공격을 받아 도망친 명의 나인보 등을 공궤하다 |
| 1410년 | 조선왕조실록 | 곽승우가 경원부에 침구한 올적합과 싸우다가 패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다 |
| 1410년 | 조선왕조실록 | 전 공안부 윤 박돈지를 경사에 보내어 야인들이 동북면에 침구한 내용에 대해 알리다 |
| 1413년 | 조선왕조실록 | 길천군 권규·지의정부사 여칭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
| 1413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와 경상도의 여러 곳에 바다물이 붉어져 해괴제를 지내다 |
| 1414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인들이 범종을 늦게 구해 주었다고 105명이 울산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 |
| 1417년 | 조선왕조실록 | 강회중이 다시 백두산 일대에 들어온 중국인의 동태를 보고하다 |
| 1418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자가 내선을 받고 근정전에서 즉위하다 |
| 1418년 | 조선왕조실록 | 오랑캐가 잡아간 평안도 여연군 남녀 10명을 지군사 박자검이 빼앗아 오다 |
| 141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여연군에 침입한 야인을 지군사 박자검이 잘 막아내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관찰사 정진이 왜구와의 접전 상황을 보고하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윤득홍·평도전 등이 백령도에서 왜구를 협공하여 공을 세우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삼군 도체찰사 이종무가 거제도에서 바다로 나갔다가 바람 때문에 다시 들어오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에 도착하여 성과를 올리다. 이에 앞서 상왕이 행군이 늦음을 문책한 선지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유정현의 종사관이 대마도 승전을 고하다. 이에 앞서 상왕이 내린 선지 2통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이로군의 접전에서 박실이 많은 군사를 잃었으나 마침내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구량량에 정박해 있던 대마도 토벌 병선들이 바람에 부서지고 없어지다 |
| 1419년 | 조선왕조실록 | 송관동이 대마도에서 본 바를 아뢰니, 그 처리를 의논하다 |
| 1420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국 회례사 통사 윤인보의 선행 귀환 보고 |
| 142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우도 수군 도안무사가 올린 왜적의 폐해와 그 대비책 |
| 142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도안무사가 왜적의 침입에 대해 보고하다 |
| 1422년 | 조선왕조실록 | 지여연군사 이안길이 야인의 침략에 대해 보고하다 |
| 1423년 | 조선왕조실록 | 왜적의 선박 공격한 이귀생에게 옷 등을 하사하다 |
| 1424년 | 조선왕조실록 | 올량합 심지휘가 달단군의 침입으로 양식을 구하다 |
| 142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감사가 강계부의 남녀 16명이 나라를 등지고 도망친 일을 보고하다 |
| 1425년 | 조선왕조실록 | 야인 이만주 등이 강계에, 동수보답 등이 여연에서 식량을 핑계로 머물다 |
| 1425년 | 조선왕조실록 | 갈이도에 왜적이 출연하여 김시도와 전만호등이 무찌름을 옷으로 상을 주다 |
| 1425년 | 조선왕조실록 | 선위사 상호군 김시우가 아목하에서 돌아와 보고한 내용 |
| 1425년 | 조선왕조실록 | 도망친 분이를 찾기 위해서 온 야인 하로통사 이도거 등이 소란을 피우다 |
| 1425년 | 조선왕조실록 | 무릉도에 들어갈 때 표류했던 수군 평해인 장을부 등이 일본국으로부터 돌아오다 |
| 1426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에 다녀온 석견주의 사물 관압사 대호군 이예가 복명하며 올린 계문 |
| 142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감사가 양식을 구하러 압록강을 건너온 올량합의 행적을 보고하다 |
| 1428년 | 조선왕조실록 | 경원에 목책을 설치하고 군졸을 정하여 방호하게 하며 진의 대장·대부 등을 더 설치하게 하다 |
| 1434년 | 조선왕조실록 | 올적합의 침입에 대비하다 |
| 1435년 | 조선왕조실록 | 13일 오량합 2천 7백여 기병들이 와서 평안도 여연성을 포위하여 이를 물리친 사실을 보고하다 |
| 1435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순검사가 야인이 침입했음을 치보하다 |
| 1436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와 왜인의 침략에 대비하여 남쪽의 방어를 강화시키다 |
| 1437년 | 조선왕조실록 | 5월 초1일에 조명간에 침입한 올량합 무리를 물리쳤음을 알려 오다 |
| 1437년 | 조선왕조실록 | 이천이 이끄는 야인 토벌군이 승전했음을 알려오다 |
| 1437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초도에 나타났다는 왜선에 대해 조사하게 하다 |
| 1437년 | 조선왕조실록 | 적을 쫓아간 신진보 등이 패전하여 돌아오다 |
| 1439년 | 조선왕조실록 | 도둑질하는 야인을 쫓아 내다 |
| 144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관찰사가 야인이 도적질하려고 군마를 모집하는 첩보를 알리다 |
| 1440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처치사가 왜적 체포를 보고하다 |
| 1441년 | 조선왕조실록 | 각도에 땅이 타고 흙과 돌이 타는 상태를 보고하게 하다 |
| 1441년 | 조선왕조실록 | 오량합이 여연을 침략하다 |
| 144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좌도 처치사 김효성이 일본 국왕의 변고에 관해 치보하다 |
| 1442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처치사 이징석이 대마도 왜인이 중국에서 도적질함을 치계하다 |
| 1442년 | 조선왕조실록 | 김정부가 왜인 9인을, 최완이 왜인 38인을 체포하다 |
| 1443년 | 조선왕조실록 | 왜선이 제주도 공선을 침범하다 |
| 1443년 | 조선왕조실록 | 왜선 한 척을 잡다 |
| 1443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절제사 한서룡이 도적질하는 거을가개자 등을 무찌르다 |
| 1443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변효문이 돌아와 일본에서의 일을 치계하다 |
| 1443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체찰사 이예가 적왜를 잡아 돌아오다 |
| 1444년 | 조선왕조실록 | 국경을 넘어 전라도까지 내려온 오합랑 동이소토를 서울로 송치하다 |
| 1449년 | 조선왕조실록 | 요동 변란에 대한 통사 이유덕의 보고로 양계의 방비에 대한 일을 의논케 하다 |
| 1449년 | 조선왕조실록 | 요동 평정 소식을 통사가 보고, 각색군 등 가정에 대해 하연 등이 사목을 올리다 |
| 145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관찰사 조극관이 홍흥조·장의 등을 파직할 것을 치계하다 |
| 145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에서 이만주의 관하 2백여 인이 약탈하였다는 보고에 의해 엄중히 방어하도록 유시하다 |
| 1452년 | 조선왕조실록 | 주문사 이축이 북경으로 출발하였다 |
| 1452년 | 조선왕조실록 |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반포하다 |
| 1453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가 이징옥과 그 아들들을 죽였음을 알리다 |
| 1454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가 야인과의 싸움을 아뢰다 |
| 1455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경차관 원효연이 대마도의 일을 치계하다 |
| 1455년 | 조선왕조실록 | 혜빈 양씨·상궁 박씨 등을 귀양보내다. 노산군이 세조에게 선위하다 |
| 1455년 | 조선왕조실록 | 예조 판서 김하 등을 명에 보내어 왕위 계승의 윤허를 청하고 사은하는 주문 |
| 1458년 | 조선왕조실록 | 야인 이만주의 아들 이징거가 상경하려 하자 가을에 내조하라고 타이르도록 하다 |
| 1459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경차관 강효문이 낭발아한 등이 통사에게 활을 쏜 사건에 대해 보고하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절제사 양정이 치계하여 아비거가 회령에 침입한 것을 무찔렀다고 알리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절제사 양정이 경중의 군사와 화포의 보급을 청하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절제사 양정이 야인을 격퇴한 사정을 알리니 방비에 힘쓸 것을 명하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절제사 양정이 야인의 상태와 아비거의 죽음을 알리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이극배가 치계하여 마감과 접견한 정황과 내용을 알리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주문사 윤자운·부사 윤길생 등이 명으로 가다 |
| 14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체찰사 신숙주가 거사한 일을 알리다 |
| 1461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주의 기근에 대해 그 대응책을 신하들에게 의논하게 하다 |
| 1461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체찰사 구치관이 온성 싸움에 대해 치계하다. 또 그 건에 대한 회유 |
| 1461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도체찰사 구치관이 야인 30여기가 길주에서 노략질한 것에 대해 치계하다 |
| 146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처치사 이호성이 왜인과 본국인의 싸움에 대해 치계하다. |
| 1461년 | 조선왕조실록 | 한명회가 종사관 김수령을 보내 변방의 방비에 대해 치계하다 |
| 1462년 | 조선왕조실록 | 첨지중추원사 조득잉을 명에 보내 예물과 함께 변방의 상황을 주달(奏達)하다 |
| 1464년 | 조선왕조실록 | 정조사의 통사 박계하가 중국에서 돌아와 황태자가 즉위하였음을 아뢰다 |
| 1466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이 야인의 동정에 관해 치계하니 그 조치를 유시하다 |
| 1467년 | 조선왕조실록 | 함길도 절도사 허종이 이시애 난의 성식을 치계하다 |
| 1467년 | 조선왕조실록 | 정문형이 보고 들은 것을 치계. 윤필상과 이극배에게 그 처신에 대한 사목을 내리다 |
| 1467년 | 조선왕조실록 | 고태필에게 명나라에 가서 첩보를 알리고 잘린 귀을 바치게 하다 |
| 1468년 | 조선왕조실록 | 세자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다 |
| 1468년 | 조선왕조실록 | 세자가 수강궁 중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내리다 |
| 1469년 | 조선왕조실록 | 예종이 돌아가시니 대비의 명에 의해 경복궁에서 즉위하다 |
| 1469년 | 조선왕조실록 | 신시에 임금이 면복을 입고 근정문에서 즉위하고, 교서를 반포하다 |
| 1470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주 선위관 사역원 첨정 전양민이 하직하다 |
| 1472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선형이 구주의 올적합이 침노한 것을 아뢰다 |
| 1472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관찰사 이극돈이 무릉도를 수색한 바를 치계하다 |
| 1474년 | 조선왕조실록 | 왕비가 구현전에서 훙서하다 |
| 1474년 | 조선왕조실록 | 어유소가 올적합의 공격을 보고하고 종성진에 잠입한 자의 목을 베어 바치다 |
| 1474년 | 조선왕조실록 | 종정국이 특송한 종무승 등 9인이 하직을 고하니, 선정전에 나아가 인견하다 |
| 1475년 | 조선왕조실록 | 허계에게 이산에 도적이 침입하여 살륙과 약탈을 자행한 득실을 살펴 아뢰게 하다 |
| 1475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도 절도사 어유소에게 눌량합들을 존무하게 하다 |
| 1475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정문형이 지난달 29일에 적 3천여 기가 쳐들어 온 것을 치계하다 |
| 1475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어유소가 올적합 3백 명이 쳐들어 온 것을 치계하다 |
| 1475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앉도 관찰사 정문형이 적변에 대해 치계하다 |
| 1476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선위사 김자정이 5월 초2일부터 7월 초5일까지의 견문 내용을 치계하다 |
| 1476년 | 조선왕조실록 | 올적합이 올량합을 다수 살상한 일로 영안북도 절도사 여의보에게 조심하게 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순찰사 이극증과 관찰사 안관후의 치계에 의해 삼척부에 성을 쌓게 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통사 최발을 차견하여 중국인 김보궤를 요동에 해송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정난종이 야인 야오태의 일로 치계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정난종이 야인의 일을 치계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이극증·이숙기가 왜선의 약탈에 대하여 치계하다 |
| 1477년 | 조선왕조실록 | 주문사 윤필상이 건주위 야인과 한빈·왕능 등과의 접전에 관해 치계하다 |
| 1478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 권경이 왜적의 변란에 대해 보고하다 |
| 1478년 | 조선왕조실록 | 정난종이 야인들이 쫓겨와 동량북과 무을계 등지에서 살기를 요청한다고 치계하다 |
| 1478년 | 조선왕조실록 | 송연종이 문견 사건을 보고하다 |
| 148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중국 사신의 호송군이 야인의 저지를 당한 일을 치계하다 |
| 148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김교가 정기 3백 명을 거느리고 개주로 갔던 일을 치계하다 |
| 1481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관찰사가 공주·회인·문의 등에서 지진이 있었다고 보고하다 |
| 1481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박성손이 오성 울적합이 온성 근처에 주둔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 148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절도사 이극균이 야인 간혹능의 보고를 치계하다 |
| 1483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병마 절도사 변종인이 왜구의 약탈에 대하여 치계하다 |
| 1484년 | 조선왕조실록 | 정난종의 보고에 따라 기근으로 만포진에 옮겨 온 야인들을 진휼케 하다 |
| 1484년 | 조선왕조실록 | 대신들과 의논하여 기근을 만난 건주위 야인들을 진휼케 하다 |
| 1490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병마 절도사 신주가 왜적의 출호를 치계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윤말손이 구신포 등지에서 올적합과 내응 난을 일으키고 있음을 치계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북도 절도사 성준이 올적합의 동태를 조사.보고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이극균에게 도적떼에 대비하여 변경을 수호할 대책을 강구하도록 전교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유지가 이달 초일에 창성에 도적이 침입했던 일을 치계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이극균이 고산리성에서 적을 물리친 전과를 치계하다 |
| 1491년 | 조선왕조실록 | 북정 도원수의 종사관 이수언이 북정의 상황에 대한 서장을 가져 오다 |
| 1492년 | 조선왕조실록 | 건주의 야인들이 벽동군에 침입하다 |
| 1493년 | 조선왕조실록 | 올적합에게 양인이 사로잡히다 |
| 1493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절도사 조익정이 제포의 왜인이 관찰을 구타한 일로 치계하다 |
| 1493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경차관 정석견이 동도를 점유하고 고기잡이한 왜인들의 처치에 대해 치계하다 |
| 1494년 | 조선왕조실록 | 왜적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에 대해 조관을 보내 그 진위를 분변하게 하다 |
| 1494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경차관 권주가 대마도에서 출발하여 동래에 도착할 때까지 보고 들은 사건에 관한 계문 |
| 1496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안도 관찰사가 종성부의 야인 문제를 치계하다 |
| 1497년 | 조선왕조실록 | 순천부 돌산도에 침입한 왜적의 일로 정승 등에게 의논하게 하다 |
| 1497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 이거인 등이 제포의 왜인 마을의 일에 대해 보고하다 |
| 1498년 | 조선왕조실록 | 인혜 왕대비가 승하하다 |
| 1499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남도에서 야인들이 노략질한 일에 대하여 그 처리 방도를 의논하게 하다 |
| 1499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경변사 이극균이 적변을 아뢰니 조치하지 못한 죄를 문책하여 아뢰게 하다 |
| 1499년 | 조선왕조실록 | 야인이 산양회 권관 김언겸을 쇄환하려 하니 이를 정승에게 의논하게 하다 |
| 1500년 | 조선왕조실록 | 추파동에 적변이 있자 경차관을 보내어 접전한 상황을 묻고 군사를 위로하게 하다 |
| 1500년 | 조선왕조실록 | 강계 이평에 침입한 야인이 우리 군관 소기파를 베다 |
| 150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운두리보에 야인이 침범하였으나 군관 이명손과 갑사 문귀가 물리치다 |
| 1502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변오천이 왜적의 입구를 막아내었다고 치계하다 |
| 1502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국 거추가 사신을 보내와 구리 등을 바치니 수의하게 하다 |
| 1504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고을에 지진이 일다 |
| 1506년 | 조선왕조실록 |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 |
| 1506년 | 조선왕조실록 | 중종 반정을 일으키다 |
| 1508년 | 조선왕조실록 | 야인이 경흥에 들어와 평사의 영봉군 10여 명을 끌어 가다 |
| 1508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고형산이 보을하보의 복립·무산보의 이설에 관한 일로 장계하다 |
| 1509년 | 조선왕조실록 | 가덕도 왜변으로 인해 제포의 두왜와 만난 일을 아뢰는 경차관 김근사의 장계 |
| 1509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이종인이 적왜 17급을 베어 치계하다 |
| 1509년 | 조선왕조실록 | 재변과 가뭄으로 어떻게 공구 수성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정원에 전교하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김석철이 조라포에서 상주 왜인의 일을 치계하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김석철 등이 웅천과 영등포 등의 왜적 동정을 아뢰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김석철이 웅천의 사정을 아뢰고 서울의 군관을 내려보내 줄 것을 청하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경차관 강중진이 왜병과 웅천성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음을 알리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좌도 수사 김현손이 왜적의 행패와 우리 군사와의 결전을 알리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김석철의 서장를 가져온 사람이 웅천의 함몰과 왜적의 횡포를 아뢰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왜적이 영등포를 향하고 우리 군사와 싸우며 내지로 향한다는 김석철의 치계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김석철이 왜적과의 접전을 알리고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을 청하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안윤덕이 최임을 보내어 승전을 아뢰니 최임에게 싸운 절차를 묻다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다시 왜선이 안골포의 성을 공격하여 그들과 접전했음을 알리는 유담년의 치계 |
| 1510년 | 조선왕조실록 | 유담년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배가 힘을 합쳐 적을 방어할 것을 아뢰다 |
| 151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관찰사가 칠원 장교 저자 등이 왜인에게 붙잡혔다가 돌아온 일로 장계하다 |
| 1511년 | 조선왕조실록 | 선위사 허굉이 일본 사신 붕중에 대해 치계하다 |
| 151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병마 절도사 유담년이 왜선 토벌을 치계하다 |
| 151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북도 절도사 유미가 노략질한 적 임호징을 잡고 상황을 보고하다 |
| 151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순변사 황형이 망합 등이 속고내와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
| 151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순변사 황형의 서장 |
| 151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병사 윤희평이 일본 국왕의 사신이 왔음을 치계하다 |
| 1515년 | 조선왕조실록 | 삼경 오점에 중궁이 승하하다 |
| 1516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안윤덕이 탕참 구원에 대한 장계를 올리다 |
| 1516년 | 조선왕조실록 | 성절사 윤희평이 건주위 야인이 노략질하였다고 장계하다 |
| 151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절도사 이장생이 오랑캐가 탕참 지방에 침입한 실상을 치계하다 |
| 1517년 | 조선왕조실록 | 재변으로 인한 양계의 식량 부족과 야인의 침입에 대해 삼공에게 전교하다 |
| 151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신상이 탕참지휘가 조선의 용군으로 위장하여 달자와 싸운 것을 치계하다 |
| 1518년 | 조선왕조실록 | 지진으로 인하여 의논하고, 인재 등용 방법에 대해 논란하다 |
| 1518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손중돈이 주장합의 변란을 보고하여 삼공 및 대신들이 의논하여 의계하다 |
| 1519년 | 조선왕조실록 | 성절사 호송군이 돌아오는 길에 달자에게 군사·말을 잃었음을 평안도 관찰사 허굉이 치계하다 |
| 1519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김극핍이 황제가 강서에서 군사를 일으킨 영왕을 칠 것이라고 치계하다 |
| 1522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사신의 배가 정박함에 최한홍이 치계하다 |
| 1522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관찰사 신상·절도사 오보가 왜선이 신달량에 침범했다고 치계하다 |
| 1523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의 사신과 대마도 특송인 성중을 같이 상경하도록 하다 |
| 1523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에서 생포한 왜인을 압송토록 하다 |
| 1523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관찰사 소세양이 풍천의 왜선 사건으로 치계하다 |
| 1523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수군 절도사 정윤겸이 왜선의 출현을 치계하다 |
| 1523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관찰사 윤희인이 장계하다 |
| 152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병사의 12월 20일 이후의 야인 쫓는 일에 대한 장계 |
| 1524년 | 조선왕조실록 | 조윤손과 김극성이 여연에서 싸운 일에 대한 이장길의 첩보를 치계하다 |
| 1525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남도 절도사 최한홍이 야인들 문제로 치계하다 |
| 1528년 | 조선왕조실록 | 만포 첨사 이형순이 야인을 꾀어 잡을 계략을 낸 것에 대한 평안도 관찰사 허굉의 장계 |
| 1529년 | 조선왕조실록 | 야인들을 소탕한 일에 대한 평안도 병사 조윤손의 장계 |
| 1530년 | 조선왕조실록 | 조윤손이 20일 새벽에 산양회 보에서 있었던 적변을 치계하다 |
| 1533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신공제가 금동도의 중국인 월경 문제를 아뢰니 의논케 하다 |
| 1533년 | 조선왕조실록 | 철산지역에 출몰하는 배를 조치하다 |
| 1535년 | 조선왕조실록 | 선위사 호조 참의 정사룡 등이 변경 지역의 상황을 장계를 올려 보고하다 |
| 1536년 | 조선왕조실록 | 병조에서 심언광의 서장을 보고하다 |
| 1536년 | 조선왕조실록 | 경변사 심언광이 여연·무창 등지에 대한 보고하다 |
| 1539년 | 조선왕조실록 | 수재를 제대로 막지 못한 만경 현령 이옥권을 추고하다 |
| 1541년 | 조선왕조실록 | 왜노들이 복병 3인을 찔러 죽인 것에 대한 경상우도 병사의 계 |
| 1541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 도주가 작폐한 왜인들을 모두 적발해서 압송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하다 |
| 1542년 | 조선왕조실록 | 승문원 제조 윤은보 등이 문견 사건에 부표하여 입계하다 |
| 1542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사 안현과 진향사 조사수가 중국의 오랑캐 침입에 대하여 서장을 올리다 |
| 1542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도 표류인을 요동 진무 이시·강진 등이 거느리고 서울로 오다 |
| 1543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의 서장에 달자의 변을 아뢰니 대비하라고 이르다 |
| 1544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인 왕창의 아내 이어려의 송환 처리를 요구하는 평안도 병사 이광식의 계본 |
| 1544년 | 조선왕조실록 | 창경궁에서 즉위하여 명정전 첨하에서 신하들의 하례를 받다 |
| 1544년 | 조선왕조실록 | 천추사 이임의 서장을 대신들에게 보이도록 전교하다 |
| 1545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청연루 아래 소침에서 훙서하다 |
| 1545년 | 조선왕조실록 | 미시에 사왕이 근정전에서 즉위하다 |
| 1545년 | 조선왕조실록 | 경기 관찰사 김명윤이 계림군 이유 등의 불궤를 고변하다 |
| 1545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인 유학 한성원이 고변하다 |
| 1546년 | 조선왕조실록 | 주도에 정박한 배가 중국배이면 양식과 식수를 주어 보내도록 하다 |
| 154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관찰사 구수담이 영암 월출산이 무너진 일을 보고하다 |
| 154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병사 양윤의가 만포진에서 6월 13일 야인과 교전한 것을 보고하다 |
| 154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병사 양윤의가 올린 변방의 야인 상황에 대한 보고 |
| 155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병사 김순고가 경흥 땅에 오랑캐가 침략했음을 치계하다 |
| 1553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관찰사 정응두가 도내의 지진 상황을 장계하다 |
| 1554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북도 병사 이사증이 호인 토벌의 사실을 알리다 |
| 1554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적을 물리친 것을 치계하여 알리다 |
| 1554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 김빈의 포왜 계본으로 정원에 전교하다 |
| 1554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인 12급을 참하였다고 장계하니 비변사에게 회계하게 하다 |
| 1554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고 밤에 유성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다 |
| 1555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김광진이 북방의 일을 장계한 것을 비변사에 계하하다 |
| 1555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관찰사 김주가 달량포에 왜선 70여 척이 침략해왔다고 치계하다 |
| 1555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관찰사가 왜적이 달량을 포위하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치계하다 |
| 1555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방어사 김경석이 군관 남정을 보내 장계를 올리니 사정전에세 인견하다 |
| 1555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김수문이 왜적이 침공한 것에 대해 장계하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가 봉화현의 큰 개울이 갑자기 마른 것에 대해 치계하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 도주가 하인 조구를 보내어 적왜가 우리 나라에서 도둑질하려함을 알려오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좌도 병사가 왜적을 잡고 계본을 올리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좌도 수사가 왜선을 나포한 데 대한 계본에 대해 전교하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김수문의 왜선 2척을 나포하고 머리 75급을 벤 계본을 가지고 전교하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56년 | 조선왕조실록 | 정원에 대동강가의 큰 길이 함몰된 것을 알고 있으라고 전교하다 |
| 155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전주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58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의 정세가 소란하니 대비해야 한다는 평안도 관찰사 정응두의 장계 |
| 1559년 | 조선왕조실록 | 남포현에 왜인이 나타난 사건을 의논하게 하다 |
| 1560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홍주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정응두가 흉년의 피해에 대해 치계하다 |
| 1561년 | 조선왕조실록 | 수안·은율·평양 등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1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청안·진천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1년 | 조선왕조실록 | 전주·함열·용안·김제 등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숙천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2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가 진천현과 제천현에서 여역이 발생하여 사망자가 많음을 치계하다 |
| 1562년 | 조선왕조실록 | 거창·초계·합천 등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3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강진에서 지진이 일어나다 |
| 1563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고,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영광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강계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단양·경상도 영천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경주 등지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전교하여 약탈질한 왜 대선의 포획을 치하하고, 봉수의 해이함을 조사하게 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은산에 지진이 발생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덕천에 지진이 발생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진천에 천둥이 치며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음성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웅천 등지에 천둥이 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대왕 대비가 승하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서울 등지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서해평 체탐과 관련 호인과의 싸움에서 패한 일에 관하여 전교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고, 평안도 상원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유성이 나타나다. 평안도 상원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고, 유성이 나타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유성이 나타나고, 평안도 상원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태백이 나타나고, 경기 장단 등지에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해에 양이가 나타나고, 평안도 상원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다 |
| 1565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평양 등지에 지진이 일어나고, 숙천 등지에 천둥이 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국 소이전 정충이 사신을 보내 문덕전에 진향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청홍도 대흥·이산, 전라도 만경·용안 등지에서 지진이 일어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영광과 함평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비안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안악·문화, 평안도 삼화·용강 등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황주, 평안도 상원 등지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곡산에 지진이 일어나고 경상도 함안 등지에 천둥이 치다 |
| 1566년 | 조선왕조실록 | 햇무리가 지고 사방이 안개에 잠기다. 강원도 삼척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567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영천 등에 지진이 일어나다. 초계에서 암소가 기형의 송아지를 낳다 |
| 156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평양에 지진이 일어나고 삼화에 천둥이 치다 |
| 1567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즉위하고 모든 것을 법제에 따르다 |
| 1567년 | 조선왕조실록 | 허국과 위시량이 등극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도성에 들어오다 |
| 156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절도사 김수문이 서해평에서 호인을 습격하여 그들 취락을 불태우다 |
| 156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호인 기병과 보병이 상토에 와서 싸운 일을 계본하다 |
| 1569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가 양남에 수해가 난 일을 치계하니 해조에 구황하라고 전교하다 |
| 1570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사 김귀영이 연경에서 돌아오다 |
| 1570년 | 조선왕조실록 | 영남 13고을, 경기 일원에 폭풍우로 피해를 입다 |
| 157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에서 해적의 변을 보고하다 |
| 157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여산에 지진이 발생하다 |
| 1571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국 사신을 접견하다 |
| 1573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가 예천군의 첩정에 의해, 낙동강 상류에 물이 멈춘 일을 보고하다 |
| 1573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사 이후백·윤근수 등이 연경으로 떠나다 |
| 1573년 | 조선왕조실록 | 금오도 수토장이 왜선과 싸웠다는 전라 감사의 장계 |
| 1573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소이전의 사신이 오다 |
| 1574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이 강상에 관전보를 설치하다 |
| 1574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감사가 한재를 보고하다 |
| 1574년 | 조선왕조실록 | 달자 기병 20만이 중국을 침범하다 |
| 1575년 | 조선왕조실록 | 인순 왕후가 승하하다 |
| 1575년 | 조선왕조실록 | 의성 왕대비가 승하하다 |
| 1576년 | 조선왕조실록 | 방답 첨사 이종원이 왜선을 포획하여 귀를 베었다고 수사가 보고하자 상을 주다 |
| 1576년 | 조선왕조실록 | 가뭄으로 숙정문을 열다 |
| 1576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에 표류한 제주 사람 22명을 예부에서 요동을 통해 본국에 송환하다 |
| 1576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가 도내에 여역 때문에 죽은 사람을 알리고 아직 여역이 심하다고 보고하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치성하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천안에 여역이 번져 의원을 보내 구원하다. 양계와 서울에도 생겼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여역이 성하자 허봉 등을 보내 단을 쌓고 기도하게 하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청천강과 대음강이 한 달이 넘도록 물줄기가 끊어지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가 여역으로 6천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하다 |
| 1577년 | 조선왕조실록 | 해주의 삼탄수에 3일 동안 물줄기가 끊기다 |
| 1578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가 비인의 바닷가에 생어와 조개가 무더기로 쌓였다고 치계하다 |
| 1578년 | 조선왕조실록 | 개성부의 김몽 등이 소금사러 갔다가 표류하여 요동에 도착, 부송하다 |
| 1579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가 홍수가 나서 피해가 크다고 장계하다 |
| 1580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양희가 십삼산역에 이르자 달자 10여 만이 약탈하다 |
| 1580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사신이 우리 나라를 통해 중국에 조공하길 청했는데 언사가 불손하여 거절하다 |
| 1581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근정전에서 일본 사신을 접견하다 |
| 158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가 지진과 천둥을 보고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북쪽 국경의 번호가 난을 일으켜 경원부를 함락하니, 김수·양사의를 효수하도록 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가 훈융진을 포위 공격하매 신립·이박이 구원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 이제신이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보내 배반한 오랑캐를 토벌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가 다시 경원부를 포위하니, 온성 부사 신입이 물리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가 다시 훈융진을 포위하니, 첨사 신상절이 격파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 5천여 기병이 방원보에 또 침범하니 최호 등이 물리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 율보리와 이탕개가 종성에 들어오니 온성 부사 신립이 구원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 율보리가 동관진을 포위했는데, 첨사 정곤 등이 물리치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가 보고에 따라 회령 오랑캐의 침입에 공을 세운 효정에게 상을 주다 |
| 1583년 | 조선왕조실록 | 순찰사가 종성 등의 번호가 자주 도발한다고 보고하자 병력과 무기를 보강하라고 전교하다 |
| 1585년 | 조선왕조실록 | 어사 유근이 경기의 기근, 부역 과중을 아뢰고 수령들의 행정을 보고하다 |
| 1585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가 도내 벽동에서 큰 우박이 내렸다고 보고하다 |
| 1585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만호 김인수가 오랑캐를 정탐한 일로 계본을 올리다 |
| 1585년 | 조선왕조실록 | 오랑캐가 풍산보 수호소, 회령 경계 등에 침입하다 |
| 1586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우수사가 정의 현감 김대이 등이 적을 놓친 일과 방비책 등을 치계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가 왜적 18척이 흥양에 침범하였는데 녹도 권관 이대원이 전사했다고 보고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우수사가 왜적이 가리포에 침범했음을 보고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한 제주 사람을 대마도주가 호송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적호가 녹둔도를 함락시켜 둔전이 폐지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국사 귤강광이 내빙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남병사가 첨사 이하 등이 오랑캐를 물리쳤다고 치계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목사가 중국에 건너가 관목을 훔친 군민이 있었음을 치계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가 적호가 침입했을 때 군기를 그르친 경흥 부사 이경록 등을 가두었다고 보고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의 새로운 국왕이 보낸 사신이 대마도에 도착했다고 도주가 서계하다 |
| 1587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 이일이 녹둔도가 함락되었다고 치계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 이일이 녹도를 침입한 죄를 물어 추도를 습격하여 호인을 베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윤두수가 용담현에 지진이 났다고 보고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목사가 중국에 전입한 김영번이란 자를 압송했다고 보고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가 녹둔도에서 변을 일으킨 오랑캐를 분탕했다고 보고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남병사가 오랑캐가 혜산에 침입하여 첨사 이하가 전사했다고 입계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남병사 신입이 오랑캐 부락을 정벌하였다고 보고하다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가 오랑캐 배가 침입했다고 보고하자 정병을 미리 선발하라는 전교 |
| 1588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국 사신 평의지·현소가 내빙하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선위사 이덕형이 대마 도주가 공작 1쌍을 보냈다고 보고하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한준·박충간·이축·한응인 등이 정여립의 모반에 대한 변서를 올리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 감사가 안악·재령 등에 역모 사건을 보고하였는데 전라도에는 정여립이 관련되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기영의 서장에 서북 오랑캐가 일행을 노략질하여 군마를 생포해 갔다고 보고하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의금부 도사가 정여립이 도주했다고 보고하다 |
| 1589년 | 조선왕조실록 | 선전관 이용준 등이 정여립이 숨은 죽도를 포위하자 정여립이 자결하다 |
| 1592년 | 조선왕조실록 | 14일 왜적이 군사를 일으켜 부산진을 함락시켜 부사 정발과 송상현이 전사하다 |
| 1592년 | 조선왕조실록 | 적병이 충주에 침입하여 신입이 전사하다 |
| 1592년 | 조선왕조실록 | 삼도의 군사가 용인에서 패하다 |
| 1592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관찰사 김성일이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한 장계 |
| 1592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군의 동향과 출병 시기 등에 대해 이산보가 올린 보고문 |
| 1593년 | 조선왕조실록 | 경략 접반사 윤근수가 경략이 병부에 올린 게첩을 보고하다 |
| 1593년 | 조선왕조실록 | 경략 등에게 심유경과 동행한 왜적의 통과를 허락하지 말라고 이자하다 |
| 1594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윤탁연이 적호의 침입으로 감파보의 함락을 아뢰다 |
| 159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우수사 원균의 전황에 대한 장계 |
| 1594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북도 병마 절도사 정현룡이 올린 육진 오랑캐의 반란에 대한 치계 |
| 1595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관찰사 서성이 왜적의 약탈에 대해 치계하다 |
| 1595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우도 절도사 김응서가 왜적의 동향에 대해 치계하다 |
| 1595년 | 조선왕조실록 | 황신이 왜인의 도해에 대해 유격의 부하와 문답한 내용을 치계하다 |
| 1597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권율의 치계 |
| 1597년 | 조선왕조실록 | 3월 19일에 성첩한 도원수 권율의 서장 |
| 1597년 | 조선왕조실록 | 제독 접반사 장운익이 중국군의 동정을 보고하다 |
| 1598년 | 조선왕조실록 | 접반사 이덕형·권율이 울산에서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
| 1598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절도사 이광악이 적과의 전투 상황을 아뢰다 |
| 1598년 | 조선왕조실록 | 이용순이 왜적의 소굴에서 나온 2인을 조사하고 이를 보고하다 |
| 1598년 | 조선왕조실록 | 좌의정 이덕형이 수군의 활약상에 관한 치계를 올리다 |
| 1600년 | 조선왕조실록 | 호인 노토 등이 부령을 침략해왔으나 우리 군사의 전진으로 물러가다 |
| 1601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안무 어사 김상헌이 치계하다 |
| 1602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 이용순이 충청도의 역적 사건을 치계하다 |
| 1603년 | 조선왕조실록 | 이영이 일본에 포로로 갔다 도망해 온 한찬의 초사 내용을 보고하다 |
| 1603년 | 조선왕조실록 | 오랑캐 침입에 대한 함경북도 병사 이용순의 치계 |
| 1603년 | 조선왕조실록 | 북방 정세에 대한 함경북도 병사 이용순의 치계 |
| 1605년 | 조선왕조실록 | 홀라온 야인이 동궐보를 함락시킨 뒤 첨사 전백옥을 죽이고 물러가다 |
| 1605년 | 조선왕조실록 | 북방에서 벌어진 오랑캐와의 교전 소식을 이정험이 치계하다 |
| 1605년 | 조선왕조실록 | 왜가 조선과 통호하고 천조에 조공 바치기를 원한다고 이시언이 치계하다 |
| 1606년 | 조선왕조실록 | 홀적이 현성에서 재물과 가축을 약탈한 내용을 북병사 이시언이 치계하다 |
| 1607년 | 조선왕조실록 | 오랑캐가 국경을 넘나들며 노략질하는 등 북방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
| 1607년 | 조선왕조실록 | 왜관 영건과 왜관 무역에 관해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가 치계하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이날 미시에 정릉동 행궁의 정전에서 훙하니 세자가 즉위하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선조가 승하하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동궁이 선조가 승하하셨다고 대신들에게 하령하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선조가 승하하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대신들이 여러번 청하여 정릉동 행궁의 서청에서 즉위하고 하례를 받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대신들이 여러번 청하여 정릉동 행궁의 서청에서 즉위하고 하례를 받다 |
| 1608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윤안성이 만경 등지에서의 해적선과의 조우 상황을 치계하다 |
| 1609년 | 조선왕조실록 | 북방 오랑캐의 방비에 대한 함경 감사 장만의 치계와 비변사의 회계 |
| 1609년 | 조선왕조실록 | 북방 오랑캐의 방비에 대한 함경 감사 장만의 치계와 비변사의 회계 |
| 1610년 | 조선왕조실록 | 달적이 요양을 침범했다는 서목을 평안감사가 보내다 |
| 1610년 | 조선왕조실록 | 대로달자의 노략질에 대한 평안 감사의 서목이다 |
| 1610년 | 조선왕조실록 | 포로가 되었던 승려 육혜가 일본인과 함께 부산에 도착하다 |
| 1614년 | 조선왕조실록 | 북병사가 호인 아량아 등이 경흥 후라도에 들어와 공격하여 내쫓다고 장계하다 |
| 1616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감사가 노추 군병의 정세에 대해 아뢰다 |
| 1616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극신이 장계를 올려 달자가 노략질한 일을 전하다 |
| 1616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극신이 장계를 올려 달자가 노략질한 일을 전하다 |
| 1618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이, 누루하치가 청하보를 함락시켰다고 치계하다 |
| 1618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이, 누루하치가 청하보를 함락시켰다고 치계하다 |
| 1620년 | 조선왕조실록 | 찬획사의 보고를 받다 |
| 1620년 | 조선왕조실록 | 찬획사의 보고를 받다 |
| 1621년 | 조선왕조실록 | 묵산 전투에 대하여 평안 감사가 장계를 올리다 |
| 1621년 | 조선왕조실록 | 여진이 진강을 향해 들어갔다는 의주 부윤의 장계 |
| 162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달병이 관전에 당도하였다고 보고하다 |
| 1622년 | 조선왕조실록 | 찬획사가 노병이 삼분산의 패배한 후에 노추가 이끌고 들어가 승패를 알 수가 없다고 보고하다 |
| 1622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정준이 달적의 패배와 진강의 적병의 형세는 없다고 보고하다 |
| 1622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한준겸이 노병이 광녕을 향해 나아가다 패배한 것을 전하다 |
| 162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변방의 정세에 관해 치계하다 |
| 1623년 | 조선왕조실록 | 반정이 일어나자 도망하여 의관 안국신의 집에 숨다 |
| 1623년 | 조선왕조실록 | 의병을 일으켜 즉위하다 |
| 1623년 | 조선왕조실록 | 폐세자 이지가 땅굴을 파고 도망치다 붙잡히고, 폐빈은 자결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장만이 역적의 괴수가 자산으로 후퇴하였음을 알리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장만이 적병이 자산에 주둔하였다고 보고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가 적병의 형세와 그 대응책을 보고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원수가 황해 감사로 하여금 수안·새장 등을 지키게 하였다고 보고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적병이 삼등·기현으로 향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가 상원을 치고 중화로 향하였다고 보고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체찰 부사 이시발, 황해 감사 임서 등이 산산으로 진격한다고 보고하다 |
| 1624년 | 조선왕조실록 | 금부에서 강원도에 지시하여 이방필·이노를 효시하게 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금나라가 침입하자 대책을 논의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정주 목사 김진 등이 능한 산성에서 금나라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능한 산성이 함락되자 분조할 준비를 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김기종이 안주성 함락 때 김준의 아들 유성·개천 군수 장돈 등이 전사했다고 아뢰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김기종이 선천·검산과 정주 자성봉의 의병이 무기·양식이 떨어졌다고 치계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양·삼등 등지에서 포로된 자·피살된 자·도망온 자 등의 수를 조사하여 치계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김기종 등이 용골성이 무너진 사유를 치계하다 |
| 1627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 감사가 청의 침입 때 절개를 지켜 죽은 부녀자에 대해 치계하다 |
| 1629년 | 조선왕조실록 | 김시양이 원숭환이 모문룡을 목을 벤 일로 치계하다 |
| 1629년 | 조선왕조실록 | 재자사 최유해가 자문과 게첩을 가지고 요동으로 떠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진 부총의 접반사 이석달이 오랑캐와 함께 싸울 것을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춘신사 박난영이 심양에 있으면서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진 부총의 접반사 이석달이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 유비가 중국 군사들의 행패를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사 이흘이 북경에서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사 이흘이 변방의 상황으로서 치계하다 |
| 163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김시양과 총융사 이서가 치계하다 |
| 1631년 | 조선왕조실록 | 노병이 철수하여 돌아가다 |
| 1632년 | 조선왕조실록 | 정묘 호란 때 절조를 지킨 김인의 처 우씨와 오창남의 처 이씨를 감사가 보고하다 |
| 1632년 | 조선왕조실록 | 후금 사신 낭혁이 와서 도망한 본국인 소환과 회령 개시 등에 관한 한의 글을 전하다 |
| 1633년 | 조선왕조실록 | 심양으로 간 사신 신득연이 예물은 전하지 못하고 호서만 받아가지고 오다 |
| 1633년 | 조선왕조실록 | 명의 반란군 경중명 등이 금과 내통하려 한다고 도원수 김자점 등이 치계하다 |
| 1635년 | 조선왕조실록 | 중전이 산실청에서 승하하니, 대신들과 상례를 의논하다 |
| 163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신이 와서 한이 송경에 도착했다고 하다. 납서를 도원수 등에게 보내다 |
| 1636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원병이 헌릉안에 도착하다 |
| 1636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영장 권정길이 검단산에 도착했으나 적의 습격으로 패하다 |
| 1636년 | 조선왕조실록 | 공청 감사 정세규가 험천에 진을 쳤으나 전군이 패몰하다 |
| 1636년 | 조선왕조실록 | 강도의 서리 한여종이 장계를 가지고 들어오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하도 관찰사 이배원 등의 장계가 들어오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병사 김준룡이 치계하여 승전 소식을 전하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 감사 조정호가 장계하여 전투 상황을 전하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감사 민성휘의 군사가 강원도 금화현에 도착했다는 장계가 오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도원수 심기원이 장계를 보내, 구원병들이 대부분 패했다고 하다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강도 함락 시, 전 의정부 우의정 김상용과 전 우승지 홍명형 등의 졸기 |
| 1637년 | 조선왕조실록 |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나아가다 |
| 1638년 | 조선왕조실록 | 심양에 도착한 우의정 신경진이 치계하다 |
| 1638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임경업이 중국배의 출현과 편지에 대해 치계하다 |
| 1641년 | 조선왕조실록 | 금주성의 전황 |
| 1641년 | 조선왕조실록 | 빈객 최혜길이 청인이 송산에 진을 친 상황에 대해 치계하다 |
| 1641년 | 조선왕조실록 | 명·청의 전투 상황과 아군의 피해 상황 |
| 1641년 | 조선왕조실록 | 영병 대장 유정익이 송산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
| 1643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의 한이 죽어 염습에 쓸 물자를 요구하다 |
| 1643년 | 조선왕조실록 | 빈객 임광이 상토·외괴·이동에서 월경하여 인삼을 캐다가 잡혔다고 치계하다 |
| 1643년 | 조선왕조실록 | 빈객 임광과 이소한이 소현 세자와 빈궁이 12월 15일에 심양을 출발할 것이라고 치계하다 |
| 1644년 | 조선왕조실록 | 문학 이래가 세자의 행차 중의 일을 치계하다 |
| 1644년 | 조선왕조실록 | 세자가 금군 홍계립을 보내어 자신의 주변 상황을 수서로 치계하다 |
| 1644년 | 조선왕조실록 | 빈객 임광이 북경으로 가는 세자 일행의 주변 상황을 치계하다 |
| 1644년 | 조선왕조실록 | 서상리 등이 황제의 등극과 세자의 귀국 소식을 재치계하다 |
| 1645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홍전이 한사립의 말을 인용하여 치계하다 |
| 164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유정량 등이 금주위에 되돌아와서 치계하다 |
| 1648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부사 임담이 북경에 도착하여 오래 체류하여 노자와 식량이 모자라다 |
| 1649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창덕궁 대조전 동침에서 승하하다 |
| 1649년 | 조선왕조실록 | 왕이 즉위하고 대사령을 내리고 교서를 반포하다 |
| 1650년 | 조선왕조실록 | 청의 사신이 압록강을 건넜다고 평안 감사 심지원이 치계하다 |
| 1650년 | 조선왕조실록 | 우의정 이시백과 우참찬 이기조, 서장관 정지화가 청국으로 가다 |
| 165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소동도가 청의 섭정왕이 죽어 사신이 나온다고 치계하다 |
| 1651년 | 조선왕조실록 | 진향사 유정량 등이 우가장에 도착하여 섭정왕의 모역 사건을 알리다 |
| 1651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인평 대군 이요, 부사 황감, 서장관 권우가 청으로 떠나다 |
| 1652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윤문거가 왜의 모반 사건을 치계하다 |
| 1652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지기도에 표류하였던 통영 토병 서일립 등이 돌아와 일본의 사정을 알리다 |
| 1652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조 겸 성절사 이해·부사 정유·서장관 심유행 등이 청국으로 가다 |
| 165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이시백이 국경을 넘어가 삼을 캐다 잡힌 백성의 일로 객사가 파견된다고 치계하다 |
| 165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이시백·부사 신유·서장관 권령이 귀국하다 |
| 1653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인평 대군, 부사 유철, 서장관 이광재 등이 청국으로 가다 |
| 1653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인평 대군, 부사 유철, 서장관 이광재가 돌아오다 |
| 1653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임의백과 접위관인 경상 도사 안후직이 차왜 둥성방의 방문을 치계하다 |
| 1654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 호광 전투에 대하여 동지사 심지원이 치계하다 |
| 1654년 | 조선왕조실록 | 문안사 인평 대군과 서장관 심세정이 심양에 가다 |
| 1654년 | 조선왕조실록 | 문안사와 서장관이 청 황제가 심양 행차를 중지했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다 |
| 1654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사가 청국으로 가다 |
| 1655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수사 김한문이 굴업도 근처에서 당선 세 척과 싸워 승리한 일을 치계하다 |
| 1655년 | 조선왕조실록 | 재자관 황연이 연경에서 돌아와 의주에 이르러 청국과 명의 전쟁 상황을 치계하다 |
| 1655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겸 사은사 금림군 이개윤, 부사 이행진 등이 청나라에 가다 |
| 165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동지사 금림군 이개윤, 부사 이행진, 서장관 이지무가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5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인평 대군 등이 청나라로 떠나다 |
| 1657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윤강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57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겸 사은사 심지원 등이 청나라로 떠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효종 대왕이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효종 선문장무 대왕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자가 즉위하고 팔방에 교시를 반포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자가 인정전에서 즉위하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정유성·유심·정익이 청국에 가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영양군 이환, 부사 남로성, 서장관 목겸선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채유후·정지호·권상구가 청나라로 가다 |
| 1659년 | 조선왕조실록 | 금산군에 지진이 일다 |
| 1660년 | 조선왕조실록 | 홍득기·정지화·이원정이 청나라로 가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 임금이 죽어서 전부사가 파견오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이 청국의 새 임금이 등극하여 칙서를 반포한 사신이 온다고 치계하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 겸 진향 정사인 영안위 홍주원, 부사인 호조 참판 이정영 등이 연경을 향해 출발하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 정사 우의정 원두표 등이 청국으로 가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 정사 우의정 원두표, 부사 홍전 등이 연경을 향해 출발하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 겸 진향 정사 홍주원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 겸 진향 정사 영안위 홍주원, 부사 이정영 등이 연경에서 돌아오다 |
| 1661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이원정이 치계하다 |
| 1662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가 도내에 큰비가 내려 피해가 많음을 치계하다 |
| 1662년 | 조선왕조실록 | 정태화·허적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며 명나라 영력 황제와 주씨의 일을 듣다 |
| 1662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 정사 정태화 등이 돌아 오다 |
| 1663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여이재, 부사 홍처대, 서장관 이단석이 청에서 돌아와 보고하다 |
| 1663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일행이 돌아와 청나라 사정을 알리는 문견록을 올리다 |
| 1663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 겸 진향 정사 낭선군 이우 일행이 청나라에 가다 |
| 1664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사 홍명하 등이 청나라로부터 돌아오다 |
| 1664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 정사 홍명하, 부사 임의백, 서장관 이정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65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정치화, 부사 이상일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6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청평위 심익현 등이 청나라에 가다 |
| 1666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김좌명 등이 청에서 돌아오다 |
| 1667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겸 진주정사 회원군 이윤이 청나라에 가다 |
| 1667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진주 정사 회원군 이륜 일행이 연경에 가다 |
| 1667년 | 조선왕조실록 | 임인관 등 명나라 상인 95명이 표류해 오다 |
| 1667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정치화 등이 청나라로 가다 |
| 1668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 정사 복창군 이정 등이 청나라로 가다 |
| 1668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사 일행이 연경으로 가다 |
| 1669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이경억ㆍ정윤ㆍ박세당이 돌아와 청국의 정세를 보고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민정중 등이 돌아와 청나라 사정을 보고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사를 청나라에 파견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사 정재륜 등이 청나라로 가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청국 사신이 온다고 평안 감사 민유중이 치계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민유중이 청국 사신이 강을 건넜다고 치계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노정이 한인의 표류를 비밀히 치계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노정이 표류한 한인의 일을 비밀히 치계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가 지진이 일어났음을 치계하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정재륜 등이 청나라에게 돌아오다 |
| 1670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복선군 이남 등이 청나라에 가다 |
| 1671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가 돌아오다 |
| 1671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정사 복선군 이남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71년 | 조선왕조실록 | 차왜 평성태가 관문을 함부로 나와 동래에 오다 |
| 1671년 | 조선왕조실록 | 차왜가 동래로 온 뒤 왜인이 거리낌 없이 오가다 |
| 1671년 | 조선왕조실록 | 왜차 평성태의 졸기 |
| 167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동지 상사 정치화, 부사 이만영 등이 청나라로부터 환국하다 |
| 167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동지사인 창성군 이필·부사인 판윤 이정영이 청나라에 가다 |
| 1673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동지사 창성군 필 등이 청나라에서 돌아오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축시에 왕대비 장씨가 승하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김수항 등이 청국으로부터 돌아오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이 청사가 황후 부음을 전할 일로 온다고 치계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이 청사신이 온 이유에 대해 치계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사 영신군 이영이 청국에 가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사 유창, 서장관 권해가 북경에서 돌아오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사 유창, 서장관 권해가 청국에서 돌아오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청국 사신이 나온다고 패문이 의주에 오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창덕궁 재려에서 승하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현종 대왕이 승하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상이 승하하다 |
| 1674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사 겸 진향사 영신군 이형의 치계 |
| 1675년 | 조선왕조실록 | 청국에서 돌아온 사신을 인견하고 중국의 사정을 하문하다 |
| 1675년 | 조선왕조실록 | 임금이 모화관에서 칙사를 맞이하다 |
| 1676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관찰사 정중휘가 왜에 다녀온 역관 한시열의 수본을 치계하다 |
| 1677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의 왜관이 불에 탔으므로 공미 150석을 주게 하다 |
| 1677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사 이정·권대재·박순 등이 연경에서 돌아와 오삼계 사건 등을 아뢰다 |
| 1679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낭원군 이간 등이 연경에서 돌아와 소식을 전하다 |
| 1680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겸진주사일행이 연경에서 돌아와 복선군의 반역 사건에 관한 별단을 바치다 |
| 1680년 | 조선왕조실록 | 2경에 중궁(인경 왕후)이 경덕궁에서 승하하다 |
| 168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원부 북변의 사정에 관해 북병사 이필이 장계하다 |
| 1681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여러 고을에서 지진이 일어나다 |
| 168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에서 광풍과 폭우가 있었고, 지진도 발생하다 |
| 1681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한 청나라 사람을 호송하던 역관 이경화 등이 청의 사정을 탐문하여 비국에 보고하다 |
| 1681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에서 돌아온 역관이 탐지한 청나라 사정에 관한 장계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창성군 이필의 치계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원접사 이관징의 장계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심양 문안사 좌의정 민정중의 청국 사정에 관한 장문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겸 사은사 동원군 이집 등을 인견하고 청의 사정을 묻다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문안사 좌의정 민정중 등을 인견하고, 그 곳 소식을 묻다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통신사 윤지완 등이 치계하다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윤지완 등이 왜국에서 돌아와 견문과 약조를 밝힌 일들을 치계하다 |
| 1682년 | 조선왕조실록 | 영창군 이침 등이 청국에서 돌아오다 |
| 1683년 | 조선왕조실록 | 왕대비 김씨가 저승전에서 훙서하다 |
| 1684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의 세견이 왔는데, 문위 역관 박재흥 등이 같이 돌아오다 |
| 1684년 | 조선왕조실록 | 하지정사 조사석·부사 윤반 등이 청국에서 돌아오다 |
| 1684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사 이유 등이 연경에서 돌아오다 |
| 1685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남구만이 연경에서 돌아 오자 그에게서 청의 정세를 듣다 |
| 1688년 | 조선왕조실록 | 대왕 대비가 승하하다 |
| 1689년 | 조선왕조실록 | 하지사 홍만용·부사 박태손·서장관 이삼석 등이 청에서 돌아오니 인견하다 |
| 1690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전성군 이준 등이 청국에서 돌아오다 |
| 1691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사를 맞고, 원접사 윤이제를 인견하다 |
| 1691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민암·강석빈 등을 인견하여 선온하다 |
| 1695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이세벽·부사 홍수주·서장관 최계옹이 청나라에 가다 |
| 1695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이혼과 이언강에게 청국과 아로득의 사정을 물어보다 |
| 1696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일행이 청나라로 가다 |
| 1698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 이부 시랑 도대가 중강에 도착하니 우의정 최석정이 기다리다 |
| 1698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 이부 시랑 도대가 철수해 돌아가다 |
| 1698년 | 조선왕조실록 | 통판이 돌아갔다고 접반사 김구가 보고하다 |
| 1698년 | 조선왕조실록 | 서장관·윤홍리 등이 심양에 가다 |
| 1701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 이사영이 불법으로 국경 넘어 삼을 캔 자들에 관해 치계하다 |
| 1701년 | 조선왕조실록 | 왕비 민씨가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승하하다 |
| 1702년 | 조선왕조실록 | 조위 차왜 평유정이 서계 및 별폭으로 부친 은장촉 등의 물건을 진향하다 |
| 1703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사의 회환하는 소식에 북방의 소란함을 보고하니, 해방을 더욱 신칙하게 하다 |
| 1703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금성현 장항리 민전이 27일부터 땅이 갑자기 벌어졌다 |
| 1703년 | 조선왕조실록 | 책봉 칙사 명규서 등이 오니, 모화관에 거둥하여 맞이하다 |
| 1703년 | 조선왕조실록 | 소강 첨사 이훈이 황당선을 장연 백령도 등에서 덮쳐 잡았다 |
| 1704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민진원이 교룡 산성의 수치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다 |
| 1704년 | 조선왕조실록 | 영의정 신완과 이조 판서 이유가 북도인의 월경에 관한 일로 입대하다 |
| 1704년 | 조선왕조실록 | 호서의 석성현 서쪽의 방죽에서 쇠뼈를 태우는 것과 같은 악취가 풍기다 |
| 1704년 | 조선왕조실록 | 표착한 중국 사람을 북경에 압송하게 하다 |
| 1705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대마 도주 의진이 죽고 아들 의방이 작위를 이으니 역관을 보내 위문하다 |
| 1705년 | 조선왕조실록 | 영흥군 산창 앞 강물이 진시부터 유시까지 흐름이 끊어졌었다 |
| 1707년 | 조선왕조실록 | 청국에 잡혀간 백성의 방면 문제 등을 대신들이 말하다 |
| 1709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에서 바닷물이 지난 섣달 초승부터 얼음이 얼다 |
| 1709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덕산 등 11고을에 해일이 일다 |
| 1709년 | 조선왕조실록 | 청주 청천강 물이 끊어지다 |
| 171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권성이 해적의 성식에 대해 장계하다 |
| 171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권성과 의주 부윤 심수현이 청나라에 침구한 해적의 일을 장계하다 |
| 1710년 | 조선왕조실록 | 위원 사람들이 범월하여 청나라 사람을 살해하다 |
| 1711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관찰사 이선부가 호인이 범월해 왔음을 치계하다 |
| 1711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조태억·임수간 등이 대마도에서 치계하다 |
| 171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이제가 청나라 차관 일행의 동정에 대해 치계하다 |
| 1712년 | 조선왕조실록 |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에 대해 치계하다 |
| 1712년 | 조선왕조실록 | 접반사 박권이 백두산 정계의 일과 청나라 총관의 호의에 대해 치계하다 |
| 1712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이명준이 왜국의 정세에 대해 장계하다 |
| 1713년 | 조선왕조실록 | 반송사 윤덕준 등이 평양에 머물고 있는 청 칙사 일행의 동정에 대해 보고하다 |
| 1713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일행이 청국에 가다 |
| 1714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조태채 등이 산해관에서 해적에 대해 탐문한 내용 |
| 1716년 | 조선왕조실록 | 유구국에 표류하였다가 청국을 거쳐 돌아온 진도군의 백성 9인에게 그 사정을 문초하다 |
| 1717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유명웅 등이 청국으로 가다 |
| 1717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박필성 등이 청국에 가다 |
| 1719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조도빈 등이 청나라에 들어가다 |
| 1720년 | 조선왕조실록 | 임금이 승하하다 |
| 1720년 | 조선왕조실록 | 숙종 대왕이 승하하고, 왕세자가 즉위하다 |
| 1720년 | 조선왕조실록 | 숙종 대왕이 경덕궁 융복전에서 승하하다 |
| 1720년 | 조선왕조실록 | 경덕궁에서 즉위하다 |
| 1720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사 이이명 등이 심양에 다다라 연로의 소문을 치계하다 |
| 1721년 | 조선왕조실록 | 지진이 나다 |
| 1721년 | 조선왕조실록 | 환관 박상검과 문유도·궁인 석렬과 필정이 왕세제를 살해하려 하다 |
| 1722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하원 등이 호황의 붕서를 치계하다 |
| 172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사 전성군 이혼이 호황의 붕서와 발상, 새 왕의 즉위 등을 치계하다 |
| 1723년 | 조선왕조실록 | 진위 정사 여산군 이방 등이 심양에 이르러 중국의 상황을 치계하다 |
| 1724년 | 조선왕조실록 | 환취정에서 승하하다 |
| 1724년 | 조선왕조실록 | 환취정에서 승하하다 |
| 1724년 | 조선왕조실록 | 대왕이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 1724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제가 인정문에 나아가 즉위하다 |
| 1728년 | 조선왕조실록 | 오명항을 사도 도순무사로 차출하다 |
| 1728년 | 조선왕조실록 | 군사를 보내 용인을 지키게 하다 |
| 1728년 | 조선왕조실록 | 충주 목사 김재로가 죽령을 방비할 것을 장계하다 |
| 1728년 | 조선왕조실록 | 송인명이 적병에 대해 장계하니 신하들과 의논하고 유순이 싸움터로 가다 |
| 173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순 왕대비가 승하하자 복제를 의논케 하고 궁궐문의 파수를 신칙하다 |
| 1732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진하 정사 이의현·부사 조최수·서장관 한덕후가 청국에서 돌아오다 |
| 1733년 | 조선왕조실록 | 좌의정 서명균이 남원에서 무신년의 흉격을 모방한 괘서가 나타났다 하다 |
| 1733년 | 조선왕조실록 | 위원군의 잠상 죄인 김상중은 일이 발각되어 효시하였다 |
| 1734년 | 조선왕조실록 | 청에서 자문을 보내와 월경한 범죄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다 |
| 1740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 백령진에 청인이 표류하여 오니, 육로로 봉황성에 압류하다 |
| 1740년 | 조선왕조실록 | 훈련 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을 개수할 것을 청하니 허락하다 |
| 1741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의 비인·평택·직산·서천 등 고을에 해일이 발생하다 |
| 1741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의 평해 등 아홉 고을에 해일이 발생하다 |
| 174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창원·김해 등의 고을에 해일이 발생하다 |
| 1742년 | 조선왕조실록 | 삼수·갑산에 무명을 더 줄 것과 수재 지역에 진휼과 환곡 등을 견감하다 |
| 1742년 | 조선왕조실록 | 강화성을 벽돌을 구워 개축하게 하다 |
| 174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경성의 바다물이 얼어 배가 다니지 못하다 |
| 1743년 | 조선왕조실록 | 영남과 호서 등에 지진이 발생하다 |
| 1743년 | 조선왕조실록 | 폐사군의 건너편에 청인들이 많이 와서 강을 왕래하므로 통문을 보내 묻게 하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유수 김시혁이 벽돌을 구워 강화도의 옛 토성을 증축하는 공사를 끝내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속칭 서소문인 소덕문에 성루가 완성되자 소의문이라고 이름을 고치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공홍도 연해의 고을에서 해일이 일고 이산 등의 고을에서는 지진이 일어나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해남의 연해 고을에서 해일이 일고, 또 충재가 나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공홍도 이산현에 지진이 일어나서 가옥이 뒤흔들리다 |
| 1744년 | 조선왕조실록 | 공홍도 청산현에 지진이 일어나다 |
| 1745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김상로의 장계로 도내에 익사자 등 1백 80명에 휼전을 시행하다 |
| 1746년 | 조선왕조실록 | 청주가 병부 상서 반제를 보내어 망우초의 지형을 간심하므로 사람을 보내 위문하다 |
| 1752년 | 조선왕조실록 | 태후의 존호를 올리고 반사하기 위해 청나라 사신이 오다 |
| 1752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손이 통명전에서 훙서하다 |
| 1754년 | 조선왕조실록 | 등주의 어채선 3척이 조니진 앞으로 표류해오다 |
| 1754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도 부안현에 지진이 있다 |
| 1755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조운규가 나주 객사에 걸린 흉서를 보고하자 기찰케 하다 |
| 1755년 | 조선왕조실록 | 송현궁에 머물다가 동조의 하교로 환궁하다 |
| 1756년 | 조선왕조실록 | 청의 복건성 상인 24명이 영광 등지에 표류하자 자문과 함께 송환하다 |
| 1756년 | 조선왕조실록 | 김제·만경·임피에 해일이 일어 곡식이 잠기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신시에 중궁전 서씨가 관리합에서 승하하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사시에 대왕 대비 김씨가 영모당에서 승하하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종성 주민 조자영 등이 월범했다는 자문이 와서 회자하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호서 덕산에 지진이 나서 사람이 죽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해서의 배천 등지에 해일이 일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광주에 해일이 발생하다 |
| 1757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장기현에 땅이 갈라지다 |
| 1758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대마주 태수 평의번이 사자를 보내어 향을 올리다 |
| 1760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거둥하여 호칙을 맞이하고 돌아와 인정전에서 반포한 칙서 |
| 1760년 | 조선왕조실록 | 초엿새날에 지진이 서쪽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울려 나간다고 전라 감사가 장계를 올리다 |
| 1760년 | 조선왕조실록 | 곤전 책봉 칙사를 모화관에서 맞이하고 인정전에서 반교한 교문 |
| 1760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거둥하여 칙사를 전송하고 의소묘에 들르다 |
| 176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비안·선산 등지에 지진이 나고, 금산·선산 등에서 벼락에 맞아 네명이 죽다 |
| 1761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암 등지에 해일, 삼화 등지에 우박의 재해가 발생하다 |
| 1762년 | 조선왕조실록 | 사도 세자가 훙서하다. 왕세자의 호를 회복하다 |
| 1763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의 봉전 칙사가 나오다 |
| 1763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거둥하여 청나라 칙사를 전송하다 |
| 1764년 | 조선왕조실록 | 태풍을 만나 중국까지 표류하다 온 영광의 조졸을 소견하다 |
| 1768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에서 표류해온 사람들을 구제하다 |
| 1768년 | 조선왕조실록 | 남당 좌현성을 쌓게 하고 정조·동지에 중궁전에 진하·표리를 올리게 하다 |
| 1770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하여 임자도에 도착한 청인을 본토로 호송하게 하다 |
| 1770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의 부차길이 중국 국경까지 표류 하였다가 심양에서 돌아오다 |
| 1771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상사 경흥군 이전의 졸기 |
| 1771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거둥하여 진주사를 전송하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묘시에 임금이 경희궁의 집경당에서 승하하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오시에 사왕이 면복을 갖추고 숭정문에서 즉위하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경희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하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낙립군 이연이 연경에서 치계하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에서 칙사가 오다 |
| 1776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서 칙행을 전송하다 |
| 1777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의 칙사가 오다 |
| 1777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를 전송하다 |
| 1777년 | 조선왕조실록 | 궁궐내에 도둑이 들어 사방을 수색하게 하다 |
| 1778년 | 조선왕조실록 | 문안 정사 이은의 보고 편지를 받다 |
| 1779년 | 조선왕조실록 | 청나라에서 돌아온 사은 부사 윤방을 소견하다 |
| 1779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 도주가 승습하고 고경하는 차왜가 오다 |
| 1780년 | 조선왕조실록 | 충주인 이술조가 역적의 명단을 올리자 안핵 어사로 조사케 하다 |
| 1780년 | 조선왕조실록 | 나주의 대흑산도에 외국 선박이 표류하다 |
| 1781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무림군 이당과 부사 이숭호가 연경을 출발한 일로 차분하다 |
| 1781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관찰사의 치계를 듣고 민심을 안정시키고 진구에 힘쓸 것을 이르다 |
| 1782년 | 조선왕조실록 | 상주 사람 윤득성이 급변을 고하다 |
| 1782년 | 조선왕조실록 | 살마주에 표류해온 왜선을 원하는 수로를 따라 환송하게 하다 |
| 1784년 | 조선왕조실록 | 왜국에 표류하여 난동을 부린 손고남 등을 처벌하여 경계로 삼게 하다 |
| 1786년 | 조선왕조실록 | 왕세자가 훙서하다 |
| 1786년 | 조선왕조실록 | 일본 관백의 사망을 동래 부사 홍문영이 보고하다 |
| 1789년 | 조선왕조실록 | 관북 지방에 홍수가 지다 |
| 1790년 | 조선왕조실록 | 경기 관찰사 김사목이 교동·부평·인천 등의 해일 피해에 대해 보고하다 |
| 179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관찰사 심이지가 가산 등의 피해를 본 고을에 구휼미를 준 것을 보고 |
| 1790년 | 조선왕조실록 | 교동 수사 남헌철이 해일의 피해 상황을 보고하다 |
| 1791년 | 조선왕조실록 | 규정에 구애받지 말고 신도를 수색하여 토벌하도록 하다 |
| 1791년 | 조선왕조실록 | 관서 지방의 변방에 관한 금법을 신칙하다 |
| 1791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유강이 치계하여 왜인들이 규정 이외로 의빙사를 보내옴을 알리다 |
| 1791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수군 절도사가 표류한 중국 선원들을 심문한 내용을 장계로 올리다 |
| 1793년 | 조선왕조실록 | 해서 위유 어사 홍대협이 연안부의 구휼 대책에 관한 장계를 올리다 |
| 1793년 | 조선왕조실록 | 해서 위유 어사 홍대협이 해주목 등 해서의 재해 현황과 구휼 대책에 관한 장계를 올리다 |
| 1794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의 태풍으로 진휼 곡식을 더 보내달라고 제주 목사 심낙수가 장계하다 |
| 1795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 목사 이우현이 곡식을 실은 전운선 5척이 파선된 일을 치계하다 |
| 1797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의 위유 어사 여준영을 통해 9개 읍의 재해 상황을 보고받다 |
| 1798년 | 조선왕조실록 | 제주도에 청나라 배가 표류해 오다 |
| 1798년 | 조선왕조실록 | 강원도 낭천현에서 화재로 불탄 민가에 대해 새로 지어주도록 하다 |
| 179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도 개천·희천의 수재가 난 곳을 살피게 하다 |
| 1798년 | 조선왕조실록 | 왜에 표류했던 제주 백성이 돌아오다 |
| 1799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이조원 등이 청나라 황제가 붕어한 일 및 의주 한 통을 치계하다 |
| 1799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 사은 정사 조상진 등이 반사한 조칙과 연경에 간 상황에 대해 치계하다 |
| 1799년 | 조선왕조실록 | 재해·군사 작전·조선 신하에 대한 평가에 관한 진하사 조상진의 문견 별단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김기상이 칙사 행차가 봉성에 도착했다는 일로 치계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정사 김재찬 등이 연경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단자를 올리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유시에 임금이 창경궁의 영춘헌에서 승하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 정사 이병모 등이 연경에서의 출발을 보고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김이영이 장시경 등의 모반을 밀계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안핵사 이서구와 경상 감사 김이영이 장시경의 역모를 보고하다 |
| 1800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 겸 청시 청승습 정사 구민화 등이 연경에서의 출발을 보고하다 |
| 1801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이득신 등이 연경에서의 출발을 보고하다 |
| 1801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김기상이 풍랑을 만난 난민 이동주 사건을 보고하다 |
| 1801년 | 조선왕조실록 | 수역 조명회가 견문한 별단을 올리다 |
| 1801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조상진 등이 연경에서 출발한다고 치계하다 |
| 1801년 | 조선왕조실록 | 강화도에 표착한 중국인과 제주에 표착한 사람을 북경으로 보내라고 하다 |
| 1802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겸진주 정사 조윤대 등이 연경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치계하다 |
| 1803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 서장관 민명혁을 소견하다. 민명혁이 문견 별단을 바치다 |
| 1803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정사 이만수 등이 연경에서 출발하였다고 치계하다 |
| 1803년 | 조선왕조실록 | 서장관 홍석주가 문견 별단을 올리다 |
| 1804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민태혁 등이 연경을 출발하였다고 치계하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오시에 대왕 대비가 경복전에서 승하하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김사목 등이 연경에서 출발하였다고 치계하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성경의 장군·형부 등의 아문에서 장자도 표류건으로 자문을 보내오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사 서장관 강준흠이 산서 사람 유사흥 건에 대한 별단을 올리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문안 정사 이병모가 심양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으로 치계하다 |
| 1805년 | 조선왕조실록 | 해서 옹진부에 표류된 대국의 백성 10명을 북경으로 호송하게 하다 |
| 1806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사은 정사 서용보 등이 연경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으로 치계하다 |
| 1806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이시수 등이 연경에서의 출발을 치계하다 |
| 1806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가 통신사를 청한 차왜 등에 대해 처리한 내용을 장계하다 |
| 1807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오한원이 재판 차왜가 당도했다는 장계 |
| 1808년 | 조선왕조실록 | 사은 겸 동지 정사 남공철 등이 연경에서 출발한다고 치계하다 |
| 1808년 | 조선왕조실록 | 영광군에 표류해온 중국 선원을 호송하게 하다 |
| 1809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 겸사은 정사 한용귀 등이 연경을 출발하였다는 것을 치계하다 |
| 1809년 | 조선왕조실록 | 진하사 서장관 민치재가 올린 별단의 내용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예조의 청에 따라 지진이 일어난 함경지역에 해괴제를 지내기로 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사 박종래 등이 연경 출발 사실을 치계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이만수의 보고에 따라 의주부 수재민들에게 휼전을 베풀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부의 재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유시하여 위로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윤노동이 치계하여 통신사의 호행 대차왜가 나왔다고 보고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부 백성의 재해 상황을 위유 어사에게 듣고 더 구호해 주도록 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감사의 치계에 의거하여 안변·덕원 등지의 재해민들의 휼전을 논하게 하다 |
| 1810년 | 조선왕조실록 | 동래 부사 윤노동이 왜 비선에 관련된 일에 대해 장계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이집두가 연경에서 출발했다고 치계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일행이 12일 출발하여 대마도에 안착하였음를 보고해 오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일행이 대마도 부중에 도착하여 치계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배가 뒤집혀 사망한 금위영과 어영청의 경상도 상번 군사들에 대해 휼전을 베풀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통신사 일행이 치계하여 국서를 강호에 전명한 사실을 보고해 오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이상황의 청에 따라 전주부에 성곽을 증수하게 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적도의 활동 상황에 대해 보고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가 관리들의 토적 대처 상황에 대해 치계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병사가 토적의 활동 상황에 대해 보고하다 |
| 1811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 병사 조계가 장계하여 본주의 적도들에 대해 체포한 사실을 보고하다 |
| 1812년 | 조선왕조실록 | 주청사 이시수 등이 봉전 칙사의 출발을 계문하다 |
| 1813년 | 조선왕조실록 | 황력 재자관이 청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비변사에 알려 오다 |
| 181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김노응이 곡식 운반선의 침몰에 대해 계문하다 |
| 1814년 | 조선왕조실록 | 서장관 유정양이 기록한 별단 |
| 1814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이존수의 안동 홍수에 대한 장계와 그에 대한 하교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영월부 동창의 실화로 소실된 각종 곡물을 탕감해 주다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김재찬의 청에 따라 원주 사창의 실화로 불에 탄 곡물을 탕감해 주다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고부 차왜의 접견을 허락하는 일에 대하여 전례를 참고하여 시행하다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홍수의 피해를 입은 경상도 함안 등 여러 읍을 돕도록 하다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신시에 혜경궁이 경춘전에서 훙서하다 |
| 1815년 | 조선왕조실록 | 윤구동의 장계에 이종덕이 교대한 뒤 떠난 배가 이역 땅으로 간 것 같다고 하다 |
| 1816년 | 조선왕조실록 | 바람과 눈으로 강원도 여러 고을의 선박과 민가가 입은 피해에 대한 휼전을 베풀다 |
| 1816년 | 조선왕조실록 | 이종덕이 표류하다가 일본의 비전주 오도에 도착하여, 대차왜가 거느리고 오다 |
| 1816년 | 조선왕조실록 | 이면승의 장계를 보고 평산 등의 고을에 유실된 민가와 익사한 사람을 구제하다 |
| 1816년 | 조선왕조실록 | 남이익의 장계를 보고 비바람으로 파괴된 강원도 여러 고을을 구휼해 주다 |
| 1816년 | 조선왕조실록 | 이존수의 장계를 보고 비 피해를 입은 밀양 등의 고을을 구제하라고 분부하다 |
| 1817년 | 조선왕조실록 | 영원군의 떠내려가고 무너진 민가와 익사한 사람들에게 특별히 휼전을 베풀다 |
| 1817년 | 조선왕조실록 | 장마가 여러 달을 지속하여, 삼남이 더욱 많은 피해를 입었다 |
| 1818년 | 조선왕조실록 | 금화현의 불탄 민가를 구휼토록 하다 |
| 1818년 | 조선왕조실록 | 신천군의 홍수 피해를 구휼하다 |
| 1818년 | 조선왕조실록 | 심양에 간 사신 한용귀가 치계하다 |
| 1818년 | 조선왕조실록 | 영암 등 네 고을의 빠져 죽은 사람을 고휼토록 하다 |
| 1819년 | 조선왕조실록 | 나주목에 표류한 중국인을 호송토록 하다 |
| 1820년 | 조선왕조실록 | 영광군에 표류한 중국인을 호송토록 하다 |
| 1820년 | 조선왕조실록 | 개천군의 재해 가구를 구휼하다 |
| 1820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의 행차가 압록강을 건너오다 |
| 1820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가 압록강을 건너 들어 갔다 |
| 1821년 | 조선왕조실록 | 왕대비전이 승하하다 |
| 1821년 | 조선왕조실록 | 원주목의 불이 난 민가를 구호하다 |
| 1821년 | 조선왕조실록 | 장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지역에 진휼의 특전을 베풀다 |
| 1821년 | 조선왕조실록 | 연로에 괴질이 유행한다고 서장관 홍언모가 별단에 이르다 |
| 1823년 | 조선왕조실록 | 대마도의 민가 3천여 호가 불타서 이듬해에 보낼 공작미를 당년에 다 주다 |
| 1824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하여 닿은 대국인들을 육로로 호송토록 하다 |
| 1824년 | 조선왕조실록 | 전주·공주·경주 등에서 큰 수해를 입자 고휼을 시행하다 |
| 1825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도의 화재를 입은 민가에 휼전을 베풀다 |
| 1825년 | 조선왕조실록 | 한산 등 일곱 고을에 해조가 넘쳐 피해가 크다는 공청 감사의 장계 |
| 1826년 | 조선왕조실록 | 흉년으로 궁핍한 백성들을 위해 내탕고의 지물을 진휼에 보태다 |
| 1826년 | 조선왕조실록 | 수해를 입은 보은군에 휼전을 시행함에 항례에 구애받지 말도록 하다 |
| 1826년 | 조선왕조실록 | 예천, 경주 등의 수해로 인해 원래의 휼전 이외에 별도로 더 돌보다 |
| 1826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해 온 중국인을 호송토록 하다 |
| 1827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의 보고에 따라 수재를 당한 백성을 구호할 것을 하령하다 |
| 1827년 | 조선왕조실록 | 표류해 온 중국인을 육로로 호송하라 하다 |
| 1827년 | 조선왕조실록 | 공충도 감사 서준보의 수재 보고에 따라 백성들을 구제하라 하령하다 |
| 1828년 | 조선왕조실록 | 동지 정사 송면재 등이 연경의 일을 치계하다 |
| 1828년 | 조선왕조실록 | 공충과 경상 감사가 도내 수재 피해 상황을 보고하다 |
| 1828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정기선이 도내 수재와 병충해 상황을 보고하다 |
| 1828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감사 김기은이 수재 상황을 보고하다 |
| 1828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서능보가 우박 피해를 보고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 감사 김기은이 여러 고을의 수재 상황을 보고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이면승이 도내 수재 상황을 보고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심양 문안사 이상황이 심양에서 출발하였다고 치계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인 표류자를 본국으로 호송하게 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인 표류자를 본국으로 호송하게 하다 |
| 1829년 | 조선왕조실록 | 중국인 표류자의 본국 호송을 지시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대정현 엄사자들에게 별휼전을 베풀게 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담양부의 화재당한 민가에 별휼전을 시행하게 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부의 수재를 입은 민가에 별휼전을 시행하게 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울산 등의 수재를 입은 민가에 별휼전을 시행하게 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양양부의 화재입은 민가에 별휼전을 시행하게 하다 |
| 1830년 | 조선왕조실록 | 청국 표류자를 본국으로 호송하게 하다 |
| 1831년 | 조선왕조실록 | 차왜의 조위를 비국에서 보고하다 |
| 1831년 | 조선왕조실록 | 정의현에 표류해 도착한 일본국의 살마도 사람 48명을 동래부 왜관에게 보내 주다 |
| 1832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심학순이 안주목의 민가 3백 81호가 불탔다고 보고하다 |
| 1832년 | 조선왕조실록 | 비 피해에 대한 보고와 탕감의 휼전을 지시하다 |
| 1833년 | 조선왕조실록 | 화재를 당한 울산부의 민가에 대하여 별휼전을 베풀다 |
| 1834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김경선이 물에 떠내려가고 무너진 민가, 파수, 사람 등을 보고하다 |
| 1834년 | 조선왕조실록 | 해시에 경희국의 회상전에서 승하하다 |
| 1834년 | 조선왕조실록 | 임금이 숭정문에서 즉위하고 왕대비 수렴 청정의 예를 행하다 |
| 1835년 | 조선왕조실록 | 원주 등의 익사하거나 압사한 사람에게 신역과 환곡과 군포를 탕감하다 |
| 1836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김흥근이 능주 등의 표퇴한 민가와 익사·압사한 인명을 입계하다 |
| 1836년 | 조선왕조실록 | 거제부의 익사한 가호에 휼전을 베풀다 |
| 1836년 | 조선왕조실록 | 평해군의 소실된 가호에 휼전을 베풀다 |
| 1836년 | 조선왕조실록 | 영해읍 등의 소실된 가호에 휼전을 베풀다 |
| 1837년 | 조선왕조실록 | 부안 등 엄몰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8년 | 조선왕조실록 | 무장현의 엄사한 집안에 휼전을 주다 |
| 1838년 | 조선왕조실록 | 남해 등 엄몰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8년 | 조선왕조실록 | 홍천현의 소실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8년 | 조선왕조실록 | 전주부의 소실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8년 | 조선왕조실록 | 경기도와 사도에 흉년이 들다 |
| 1839년 | 조선왕조실록 | 진도군의 엄몰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9년 | 조선왕조실록 | 옹진부의 엄몰한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39년 | 조선왕조실록 | 대왕 대비가 불에 탄 삭녕군 1백 40여호의 사람을 전접(奠接)하게 하다 |
| 1839년 | 조선왕조실록 | 함안 등 고을의 불탄 가호에 휼전을 주다 |
| 1841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이돈영이 지난달 22일의 비 피해를 치계하다 |
| 1841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 김영순이 지난달 20일의 비 피해를 치계하다 |
| 1841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홍재철이 비 피해를 치계하다 |
| 1842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목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에게 휼전을 주다 |
| 1843년 | 조선왕조실록 | 문경현의 불탄 집에 휼전을 주다 |
| 1843년 | 조선왕조실록 | 중궁전이 승하하다 |
| 1845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서 영칙하다 |
| 1845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를 송별하다 |
| 1845년 | 조선왕조실록 | 도내에서 경사하는 돈 중 3만 냥을 떼어 청북 지역 수재에 위유하는 바탕이 되도록 하다 |
| 1845년 | 조선왕조실록 | 청북의 재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격려의 하유를 하다 |
| 1846년 | 조선왕조실록 | 강계 지방에 비류가 와서 사는 문제를 사핵해서 구명하게 하다 |
| 1846년 | 조선왕조실록 | 홍재철이 대국인이 군마를 거느리고 초산 지경에 머무른다고 장계를 올리다 |
| 1847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 등 13고을의 떠내려 가고 무너진 민가에 휼전을 베풀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오시에 창덕궁의 중희당에서 승하하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인정문에서 즉위하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조두순이 칙사의 노문이 나왔다고 치계하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평안 감사 조두순이 칙사가 강을 건넜음을 치계하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나아가 칙사를 맞다 |
| 1849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나아가 칙사를 전송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유원이 황태후가 붕서하였음을 치계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유원이 황제가 붕서하였음을 치계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삼척부에 휼전을 주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의주 부윤 이유원이 황제 등극 칙사의 노문이 나왔음을 치계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나아가 칙서를 맞이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모화관에 나아가 칙사를 전송하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음죽·죽산의 고을에 휼전을 주다 |
| 1850년 | 조선왕조실록 | 수원부에 휼전을 주다 |
| 1851년 | 조선왕조실록 | 수해를 입은 경상도 함창에 휼전을 시행하고 환상을 정지해 주게 하다 |
| 1852년 | 조선왕조실록 | 화재가 난 함경도 민가에 영흥 부사를 위유사로 차하하여 조처를 하게 하다 |
| 1852년 | 조선왕조실록 | 화재가 난 안의현 민가에 회부곡을 나누어 주고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재목을 베어주게 하다 |
| 1852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를 영접하다 |
| 1852년 | 조선왕조실록 | 칙사를 전송하다 |
| 1856년 | 조선왕조실록 | 함흥부에 단목·은을 하사하여 진휼하게 하다 |
| 1856년 | 조선왕조실록 | 황해 감사 김연근에게 수재민을 위유할 내용을 이르다 |
| 1857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도 공주·청주 등의 고을의 민가가 퇴압되고 인명이 익사하다 |
| 1857년 | 조선왕조실록 | 대왕 대비전이 양심합에서 승하하다 |
| 1859년 | 조선왕조실록 | 양덕현 등에 성천 부사 정건조를 위유사로 보내게 하다 |
| 1860년 | 조선왕조실록 | 재난을 입은 공주 등 11읍의 환곡을 탕감하고 집을 지어 안접시킬 방도를 강구하게 하다 |
| 1860년 | 조선왕조실록 | 단천 등의 별휼전을 수령으로 하여금 보는 앞에서 내어 주게 하다 |
| 1861년 | 조선왕조실록 | 비변사에서 곡산 등의 고을을 구휼할 방도를 계언하다 |
| 1861년 | 조선왕조실록 | 비변사에서 단천부를 구휼할 방도를 계언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진주의 난민이 병사를 협박하고 인명을 살상한 일에 대한 조처를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도 안핵사 박규수가 진주 민란의 원인이 전 우병사 백낙신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치계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함평의 난을 구핵하여 작처하는 방안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익산 안핵사 이정현이 올린 난민에 대한 조사를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 유장환이 아뢴 회덕의 민란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충청 감사 유장환이 아뢴 연산현 초군의 난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부안현의 민란으로 현감 정직조 등을 종중 추고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정헌교가 아뢴 장흥부의 전 군수 고제환의 난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경상 감사 이돈영이 아뢴 선산의 민란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전라 감사 정헌교가 아뢴 순천부의 민란을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다 |
| 1862년 | 조선왕조실록 | 함경도 민란의 수종을 엄히 핵실하게 하다 |
| 1863년 | 조선왕조실록 | 곡산 부사 윤태경을 위유사로 차하하여 구휼하게 하다 |
| 1863년 | 조선왕조실록 | 창덕궁의 대조전에서 승하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