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년의 세계 — 그해 일어난 일
이 해에 사료가 적은 사건 19건을 지역별로 모았습니다.
그해 일어난 일
중국 (10)
- 조조가 한중을 깨뜨리자 장로가 항복함 (후한서(後漢書) 본기 後漢書卷9 孝獻帝紀 建安20年)
- 曹操가 陳倉에서 散關을 나와 河池에 이르러 氐王 竇茂를 도륙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20년)
- 曹操가 陽平關의 張魯軍을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고 물러났다가 야습으로 크게 격파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20년)
- 曹操군이 南鄭에 들어가 張魯의 부고를 차지하고 巴·漢이 항복함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20년)
- 孫權이 合肥를 포위했으나 張遼·李典이 격파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20년)
- 孫權과 荊州를 나눠 江夏·長沙·桂陽 동쪽은 吳, 南郡·零陵·武陵 서쪽은 蜀으로 하고 江州로 돌아옴 (삼국지(三國志) 정사 蜀書 先主傳 (卷32) 建安20년)
- 孫權이 合肥를 치다 철군하는 津 북쪽에서 張遼의 습격을 받아 淩統 등이 죽기로 막아 겨우 津橋를 넘어 탈출 (삼국지(三國志) 정사 吳書 吳主傳 (卷47) 建安20년)
- 7월 조조가 양평에 이르자 장로가 한중을 바치려 했으나 아우 장위가 관을 지키며 산에 성을 10여 리 쌓음 — 조조는 양평성 아래 남북 산이 멀어 방어 못한다는 말을 믿었다가 현지에서 아님을 알게 됨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7 (원문 단락 #5398, 215년))
- 8월 손권이 10만으로 합비를 포위 — 조조가 장로 정벌 때 남긴 봉함 지침대로 장료·이전은 출전, 악진은 수성, 호군 설제는 대기하게 하여 장료·이전·악진 7천여 명이 대응함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7 (원문 단락 #5400, 215년))
- 11월 장로가 가솔을 데리고 나와 항복 — 조조가 진남장군으로 예우하고 낭중후에 봉해 만호를 주며 다섯 아들과 염포 등도 열후에 봉함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7 (원문 단락 #5403, 215년))
서아시아 (2)
- 안토니누스가 안티오키아에서 호사를 누리며 원로원이 무기력하다고 꾸짖는 편지 — 「내게는 무기와 병사가 있다」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20.1)
- 파르티아 왕이 두려워 티리다테스·안티오코스를 넘기자 원정을 해산 — 아르메니아에 보낸 해방노예 장군 테오크리토스가 크게 패배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21.1)
이집트·북아프리카 (6)
- 안토니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와 교외에서 영접한 유력 시민을 환대하는 척 연회를 열고 죽인 뒤 전군을 도시에 풀어 학살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22.2)
- 학살이 밤낮 도시 전역에서 이어져 사망자 수를 원로원에 숨김 — 외지인과 수행자도 희생, 신전도 약탈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22.3)
- 안토니누스가 세라피스 신전에서 학살을 지휘하고 형 살해에 쓴 칼을 신에게 바침 — 알렉산드리아의 구경거리와 공동 식사를 폐지하고 도시를 가로벽으로 나눔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23.3)
-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꽃과 향으로 성대히 맞음. 황제는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알렉산드로스 묘에 옷과 반지를 바침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4.8)
- 카라칼라가 젊은이를 사열한다며 모아 군으로 에워싸고 학살. 구덩이에 쌓아 묻었고 피가 나일 하구를 물들임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4.9)
- 병사들에게 숙주인을 죽이라 명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학살이 일어남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Carac. 6.3)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1)
- 파르티아 원정 구실 — 볼로가이소스가 티리다테스와 안티오코스(키니크 철학자 행세 킬리키아인)의 인도를 거절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78(77).19.1)
판도 변화 ◆
세계 판도 자료에서 이 해에 나라의 영역이 바뀐 곳입니다.
- ◆ 사산 제국 등장
- ◆ 조조가 한나라 옛 땅 약 46.5만 km² 차지
- ◆ 한나라가 조조에 땅 약 46.5만 km² 넘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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