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80년 ~ 238년, 사건 122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등급정사
시점내부 시점
다루는 해180년 ~ 238년
사건 수사건 122건 · 지도에 놓은 120건
저자Herodian of Antioch
원제Ἡρωδιανοῦ τῆς μετὰ Μάρκον βασιλείας ἱστορία (1749 영역본으로 추출)

지역 분포: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70 · 서아시아 28 ·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5 · 이집트·북아프리카 7 · 동유럽·러시아 2

사건 목록

해장소사건원문 위치
180년Pannonia (Danube frontier)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도나우 전선에서 병으로 죽음. 아들 콤모두스에게 신하들을 잘 대하라고 당부하고 한 밤낮 만에 숨을 거둠1.4
180년Pannonia (Danube frontier)콤모두스가 군대 앞 연단에서 연설하고 하사금을 나눠 군의 충성을 얻음1.5
180년Pannonia (Danube frontier)아첨꾼들이 도나우의 추위를 헐뜯고 로마의 즐거움을 늘어놓아 콤모두스가 귀환을 바람1.6
180년Pannonia (Danube frontier)폼페이아누스가 「황제가 있는 곳이 로마」라며 전쟁을 끝내고 가라고 간함. 콤모두스는 시간을 달라고 함1.6
180년Danube frontier콤모두스가 변경 방비를 맡기고 야만족과 돈으로 사는 평화를 맺은 뒤 로마로 떠남1.6
180년Rome콤모두스가 로마에 들어서자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와 꽃을 들고 맞음. 유피테르 신전에 들른 뒤 궁으로 감1.7
182년Rome콤모두스가 부왕의 친구들을 물리고 이탈리아 출신 페렌니스를 근위대장으로 앉혀 정무를 맡김1.8
182년Rome누이 루킬라가 퀸티아누스를 꼬드겨 콤모두스 암살을 꾀함. 퀸티아누스가 극장 통로에서 단검을 뽑고 소리치다 붙잡힘1.8
182년Rome퀸티아누스의 외침이 콤모두스의 가슴에 박혀 이후 원로원 전체를 적으로 봄1.8
185년Rome카피톨리움 경기장에 철학자 차림의 사나이가 뛰어들어 「페렌니스의 칼이 목에 닿았다」고 외침. 페렌니스가 그를 잡아 죽임1.9
185년Rome브리타니아 군이 보낸 1500명의 창병이 페렌니스를 반역죄로 고발. 콤모두스가 그와 아들을 처형함1.9
186년 ~ 187년Gallia탈영병 마테르누스가 무리를 모아 마을을 약탈하고 감옥을 열어 세력을 키움. 속주 총독들이 막지 못함1.10
187년Rome마테르누스가 군을 흩어 이탈리아로 숨어들어 대모신(키벨레) 축제 때 콤모두스를 노렸으나 동료의 밀고로 로마에서 붙잡혀 참수됨1.10
189년Laurentum로마에 역병이 돌아 콤모두스가 월계수 숲이 있는 서늘한 곳(로렌툼)으로 피함. 역병은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퍼짐1.12
190년Rome근위대장 클레안데르가 곡물을 사재기하고 값을 올려 굶주림을 키움(곡물 관리 파피리우스는 그의 아래)1.12
190년Rome군중이 클레안데르를 내놓으라고 교외 별궁으로 몰려가자 기병대가 베어 가르고, 시민은 지붕에서 돌과 기와를 던져 맞섬. 로마 시내 시가전1.12
190년Rome누이 파딜라가 콤모두스에게 달려가 재난의 원인을 넘기라고 호소. 클레안데르가 목이 잘려 창에 꽂혀 돌려지고 소요가 가라앉음1.13
191년Rome한밤의 불로 평화의 신전과 주변 건물이 타고 베스타 신전까지 번짐. 사람들은 전쟁이 올 징조라고 풀이함1.14
192년Rome콤모두스가 「헤라클레스, 유피테르의 아들」을 자칭하고 사자 가죽에 곤봉을 들고 다님. 달 이름도 바꿈1.14
192년Rome원형경기장에서 콤모두스가 높은 단 위에서 창과 화살로 짐승을 쓰러뜨림. 사자 100마리를 창 100개로 잡는 쇼도 함1.15
192년Rome콤모두스가 검투사 학교에서 검투사 차림으로 새해를 맞으러 나서려 하고, 마르키아·라이투스·에렉투스 등의 이름을 적은 사형 명단을 침상에 둠1.16
192년Rome어린 소년이 명단을 가져가 마르키아가 읽고 포도주에 독을 탐. 콤모두스가 토하자 나르키소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함. 13년 재위 끝1.17
192년Rome라이투스와 에렉투스 일행이 한밤에 페르티낙스의 집을 찾아가 황제 자리를 권함2.1
193년Rome근위대 진영에서 라이투스가 콤모두스가 죽었다고 알리자 군중이 페르티낙스를 아우구스투스로 환호하고 병사들도 따름2.2
193년Rome페르티낙스가 개간지를 개간자에게 주고 10년 면세를 약속하며 관세·밀고자를 없애는 개혁을 시작2.4
193년Rome근위병들이 정오에 궁으로 난입. 페르티낙스가 연설로 달랬으나 일부가 덤벼 그를 죽임2.5
193년Rome근위병들이 진영 성벽 위에서 제국을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겠다고 외침. 율리아누스가 올라가 병사당 큰 돈을 약속해 낙찰2.6
193년Rome병사들이 율리아누스를 호위해 궁으로 갔으나 시민은 돈으로 제국을 산 그를 욕하며 멀리서 따름2.6
193년Antioch on the Orontes시리아 총독 니게르가 안티오크에서 시민의 요청으로 제위를 받아들이고 자주색 옷과 불을 앞세워 신전을 도는 즉위 의식을 치름2.8
193년Carnuntum판노니아 총독 세베루스가 페르티낙스의 복수를 내걸자 군대가 그를 황제로 선언함2.9
193년Pannonia (Danube frontier)세베루스가 군에 최소한의 휴대품만 주고 로마를 향해 서둘러 출발2.11
193년Rome이탈리아 도시들이 월계수를 들고 문을 열어 세베루스를 맞음. 율리아누스는 지키지 못함2.11
193년Rome원로원이 세베루스를 단독 황제로 선포하고 보낸 호민관이 홀로 남은 율리아누스를 죽임2.12
193년Rome세베루스가 근위병들을 무기 없이 월계수만 들고 나오게 해 창으로 에워싸 가두고 꾸짖은 뒤 무장과 허리띠를 벗겨 쫓아냄2.13
193년Rome세베루스가 싸움 한 번 없이 로마에 입성.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로 맞음2.14
193년Britannia (province)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의 알비누스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줘 후계자로 삼겠다고 달램2.15
193년Rome세베루스가 하사금을 나눠주고 새 근위대를 뽑은 뒤 이탈리아에서 신병을 모아 동방 원정을 준비. 일리리아 군은 트라키아로 내려와 합류시킴2.15
193년 ~ 194년Cyzicus니게르가 보낸 소아시아 총독 아이밀리아누스와 세베루스군이 키지코스에서 맞붙어 여러 번 격전. 세베루스군이 이김3.2
193년 ~ 194년Nicaea (Bithynia)비티니아에서 니코메디아는 세베루스 편, 니케아는 니게르 편에 서서 각각 도시에서 나와 싸움. 세베루스군이 다시 이김3.2
193년 ~ 196년Byzantium니게르 편에 섰던 비잔티움이 긴 포위 끝에 항복. 성벽과 장식이 허물어져 열린 마을로 줄고 주민은 페린토스에 예속됨3.6
194년Laodicea (Syria)니게르가 세베루스로 돌아선 라오디케이아와 티루스를 치려 모로인 병력을 보내 주민을 학살하고 도시를 불사름3.3
194년Cilician Gates (Taurus pass)타우로스 고개 방벽을 공격하던 세베루스군이 밤새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성벽이 무너져 길이 열려 킬리키아로 내려감3.3
194년Issus니게르가 신병 위주 대군으로 이소스 평원에서 싸웠으나 크게 져 도망함3.4
194년Antioch on the Orontes안티오크 방면으로 달아난 니게르가 추격에 붙잡혀 죽음3.4
195년 ~ 196년Rome세베루스가 알비누스를 공개 전쟁으로 칠 구실이 없자 은밀히 제거하려 함3.5
196년Rome세베루스가 군 앞에서 니게르를 친 이유를 설명하며 알비누스의 배신을 같은 방식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선동3.6
197년Lugdunum (Lyon)세베루스군과 알비누스군이 갈리아에서 결전. 세베루스군이 위기에서 되살아나 이기고 알비누스가 죽음3.7
197년Gallia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에 총독 둘을 두고 갈리아를 정리하며 알비누스를 도운 자들을 죽이고 재산을 몰수3.8
197년Rome세베루스가 말을 타고 로마에 들어서자 시민은 월계수로 맞고 원로원은 호칭을 바침3.8
198년Rome세베루스가 병사들에게 곡물 배급·금반지·아내와 동거를 허락해 군 기강을 풀어 놓았다고 헤로디아노스가 비판3.8
198년 ~ 199년Hatra세베루스가 메소포타미아의 하트라를 포위하나 성이 튼튼해 손해만 입고 물러남3.9
204년Rome세베루스가 세속경기를 열고 수백 마리 맹수를 잡는 큰 구경거리와 잦은 하사금으로 시민을 달램3.8
205년Rome플라우티아누스가 황제 부자를 죽일 음모로 호민관을 보냈다 들통나 황궁으로 불려가 살해됨. 시신은 거리에 버려짐3.11
208년Britannia (province)브리타니아 야만족 반란 소식에 노쇠한 세베루스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배로 건너감3.14
208년Britannia (province)세베루스가 어린 아들 게타를 로마령에 남겨 행정을 맡기고, 늪과 덤불로 숨는 브리타니아인을 치러 진군3.14
211년Eboracum (York)병든 세베루스가 아들에게 군 통솔을 넘기고 죽음. 두 아들에게 재물과 막강한 군대를 남김3.15
211년Rome로마에서 세베루스의 장례와 신격화. 불탄 화장대에서 독수리가 날아올라 영혼을 하늘로 옮긴다고 믿음4.2
211년Rome두 형제가 궁을 갈라 쓰고 서로 독을 의심해 식탁도 따로 함. 군과 관리들이 두 파로 갈림4.3
211년Byzantium제국을 나누자는 안: 안토니누스는 유럽 쪽 비잔티움에, 게타는 아시아 쪽 칼케돈에 진영을 둠. 어머니 반대로 무산4.3
211년Rome게타 살해 뒤 카라칼라가 근위대에 「동생이 무장한 자들과 나를 덮쳤다」고 변명함4.4
212년Rome카라칼라가 게타의 측근 수많은 사람을 죽임. 근위대장이자 법학자 파피니아누스도 포함4.6
213년Danube frontier카라칼라가 도나우 방면으로 떠나 병사처럼 소박하게 먹고 대개 걸어서 행군함4.7
214년Ilium/Troia카라칼라가 일리움의 아킬레우스 무덤에서 화환을 얹고 아킬레우스를 흉내냄. 친구를 파트로클로스로 삼으려 독살했다는 전언4.8
214년Antioch on the Orontes소아시아·비티니아를 거쳐 안티오크에 이르러 성대한 환영을 받고 한동안 머묾4.8
215년Alexandria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꽃과 향으로 성대히 맞음. 황제는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알렉산드로스 묘에 옷과 반지를 바침4.8
215년Alexandria카라칼라가 젊은이를 사열한다며 모아 군으로 에워싸고 학살. 구덩이에 쌓아 묻었고 피가 나일 하구를 물들임4.9
216년Ctesiphon카라칼라가 파르티아 왕 아르타바누스의 딸에게 청혼. 왕은 두 나라 문화가 다르다고 거절했으나 선물과 맹세에 흔들려 승낙4.10
216년Mesopotamia강을 건너 파르티아 영토로 들어서자 파르티아인이 화환과 음악으로 신랑을 맞음. 카라칼라는 신호를 주어 무장하지 않은 군중을 학살하고 약탈함4.11
217년Carrhae (Harran)카라칼라가 카라이의 달 신전을 참배하러 소수 기병만 데리고 나섬4.13
217년Carrhae (Harran)볼일을 보려고 홀로 떨어진 카라칼라를 마르티알리스가 뒤에서 찔러 죽임. 근위대장 마크리누스가 꾸민 일4.13
217년Antioch on the Orontes군이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올림(처음에 연장자를 추대했으나 사양)4.14
217년Nisibis마크리누스군이 파르티아와 맞서 쇠못(칼트로프)을 뿌려 낙타·기병을 상하게 함. 시체가 산처럼 쌓여 양쪽이 물러남4.15
218년Nisibis아르타바누스가 포로와 재물을 돌려받기로 하고 마크리누스와 조약을 맺고 돌아감4.15
218년Emesa에메사의 태양신 엘라가발의 대사제로 소년 바시아누스가 화려한 동방 의상으로 제의를 올림. 근처에 주둔한 로마군이 모여 구경함5.3
218년Emesa마이사가 손자를 카라칼라의 아들이라 하고 재물을 약속하자 병사들이 밤에 문을 열어 맞아 「안토니누스」라 부르고 자주색 옷을 입힘5.3
218년Emesa마크리누스가 보낸 대장이 진영을 에워싸자 성 위에서 소년을 내보이고 돈자루를 보이며 병사들을 회유. 병사들이 넘어옴5.4
218년Antioch on the Orontes패한 마크리누스가 수염을 깎고 나그네 차림으로 안티오크를 빠져나가 낮밤으로 달림5.4
218년Antioch on the Orontes동방 군 전체가 안토니누스(엘라가발루스)에게 넘어가 그를 황제로 선포. 할머니의 후견 아래 동방을 정리하고 로마 원정을 채비함5.5
219년Rome엘라가발루스가 마이사의 재촉으로 로마를 향해 떠남5.5
220년Rome엘라가발루스가 흑석 신상을 황금 모래 깐 길로 옮기는 행렬을 하고 시민이 횃불과 꽃으로 따름5.6
220년Rome엘라가발루스가 베스타 여사제와 혼인하며 사제와 여사제의 혼인이 알맞다고 둘러댐5.6
220년Carthage엘라가발루스가 카르타고 여신(우라니아)의 신상과 신전 금을 로마로 옮겨 오게 함5.6
221년Rome병사들이 엘라가발루스의 여장과 춤을 경멸해 신중한 알렉산데르에게 마음을 옮기고 그를 지킴. 모후 맘마이아가 음식도 직접 살핌5.7
222년Rome근위대 진영에서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만 환호하자 격분한 엘라가발루스가 소란꾼을 벌하려 하자 병사들이 그와 어머니를 죽임. 시신은 시궁에 던져짐5.8
222년Rome병사들이 알렉산데르를 황제로 선포해 궁에 들임. 아직 어린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지도 아래 있음5.8
222년Rome알렉산데르가 학식 있는 법관과 전쟁 경험 있는 장교로 관직을 채움. 모후가 유혹하는 자를 궁에서 멀리함6.1
230년Mesopotamia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위협하며 아시아 전체를 옛 페르시아 영토라 주장한다는 소식이 로마에 닿음6.2
231년Antioch on the Orontes알렉산데르가 편지로 「제 땅에 머물라」고 달래 보았으나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400명의 호화 사절을 보내 강요하는 투로 답함6.4
232년Mesopotamia알렉산데르가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눠 출정. 어머니가 위험에서 아들을 멀리 두려 해 황제는 몸을 아낌6.5
232년Mesopotamia한 갈래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전멸. 알렉산데르가 병들고 병영에 질병이 번지며 양쪽 손실은 비슷했으나 로마는 승리하지 못함6.6
234년Mogontiacum (Mainz)게르만이 라인을 넘볼 위협에 알렉산데르가 마지못해 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쪽에서 라인 강변으로 서둘러 진군6.7
234년Mogontiacum (Mainz)라인 강에 배다리를 놓아 군을 건너게 하려 하고, 동방에서 데려온 모로인·오스로에네 궁수를 투입하려 함6.7
235년Mogontiacum (Mainz)알렉산데르가 사절로 평화를 사려 하며 전차 경주 등으로 시간을 보내자 병사들이 분노함6.7
235년Mogontiacum (Mainz)병사들이 사열 중 막시미누스에게 자주색 옷을 입혀 황제로 환호하게 함. 그는 처음 거부하다 칼 앞에 받아들임7.1
235년Mogontiacum (Mainz)막시미누스가 보낸 호민관과 백인대장들이 알렉산데르 막사를 덮쳐 모자를 죽임. 14년 재위 끝7.1
235년Mogontiacum (Mainz)마그누스 등 백인대장이 라인 다리를 끊고 막시미누스를 치려 했으나 들통남. 쿠아르티누스는 의사에 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가 배신당함7.1
235년 ~ 236년Germania막시미누스가 라인을 건너 숲과 늪에 숨은 게르만을 쫓음. 호수에 말을 몰아 들어가 싸우고 늪이 시체로 메워짐7.2
236년Sirmium막시미누스가 겨울을 시르미움에서 보내며 이듬해 원정 채비7.2
236년 ~ 238년막시미누스가 밀고를 부추겨 부자를 거지로 만들고 도시 곡물 비축과 극장·신전 재원까지 약탈함7.3
238년Thysdrus아프리카(리비아)에서 총독이 청년들의 재산을 뺏으려 들자 이들이 소작인을 모아 새벽에 광장에 와서 그를 찔러 죽임. 반란이 시작됨7.4
238년Thysdrus반란 청년들이 총독 고르디아누스를 침실에서 일으켜 황제로 환호. 그는 사양하는 시늉 뒤 받아들임7.5
238년Carthage고르디아누스가 티스드루스에서 카르타고로 옮겨 황제 위엄을 갖추고 로마의 유력자와 원로원에 편지를 보냄7.6
238년Rome고르디아누스가 보낸 재무관 일행이 막시미누스의 근위대장 비탈리아누스에게 비밀 서한을 핑계로 다가가 찔러 죽임7.6
238년Rome원로원이 속주 총독들에게 사자를 보냄. 대부분 막시미누스 편 관리를 죽이고 로마 편에 섰으나 일부는 사자를 죽이거나 막시미누스에게 보냄7.7
238년Sirmium막시미누스가 이탈리아로 행군을 명하고 하사금을 나눠준 뒤 독일인 포함 대군과 공성기를 데리고 출발7.8
238년Carthage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막시미누스 편으로 카르타고를 치자 훈련 없는 카르타고군이 무너지고 소(小) 고르디아누스는 전사해 시신도 못 찾음7.9
238년Rome원로원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공동 황제로 뽑음7.10
238년Rome시민의 요구에 소년 고르디아누스(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를 데려오게 해 카이사르로 삼음7.10
238년Rome시민이 검투사까지 끌어모아 근위대 진영을 공격하나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반격해 검투사와 군중이 쓰러짐7.11
238년Rome도시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탐. 약탈은 군중 틈에 섞인 하층민이 함7.11
238년Emona막시미누스군이 평원 끝에서 만난 첫 도시 에모나(에마)는 주민이 신전·집에 불을 지르고 식량을 치워 비어 있었음. 병사들은 굶주림을 두려워함8.1
238년Emona다음 날 해 뜨자 알프스로 올라 좁은 고개를 매복을 걱정하며 넘음. 이탈리아인이 지키지 않아 병사들은 어리둥절함8.1
238년Aquileia아퀼레이아 시민이 성벽을 보수하고 원로원 장군들 지휘 아래 항복 권고 사절을 돌려보내 끝까지 막기로 함8.2
238년Aquileia눈 녹은 물로 불어난 강에 아퀼레이아인이 다리를 부수어 막시미누스군이 통나무 대신 빈 술통을 엮어 다리를 만듦8.4
238년Aquileia막시미누스군이 도시를 에워싸고 쉬지 않고 공격하나 수비대가 유황·아스팔트·송진 혼합물을 쏟아 부어 철제 무장이 달아올라 군이 크게 상함8.4
238년Aquileia알바누스 산 로마 진영 병사들이 처자식을 걱정해 한낮 막사로 몰려가 막시미누스와 아들을 죽이고 시신을 개와 새에게 던짐8.5
238년Aquileia막시미누스 부자의 머리를 로마로 보냄. 병사들이 무기를 놓고 성벽 앞에서 화해를 청하자 아퀼레이아인이 열렬히 맞음8.6
238년Ravenna푸피에누스가 라벤나에서 이탈리아 정예와 게르만 보조병을 모아 막시미누스를 대비함8.6
238년Rome막시미누스 죽음의 소식에 로마 시민이 환희로 뛰쳐나오고 발비누스가 제물을 바침8.6
238년Rome근위대는 황제가 곁에 둔 게르만 호위를 의심하다가 카피톨리움 경기 중 소요를 일으킴8.8
238년Rome근위병이 궁에 난입해 두 노황제의 옷을 찢고 몸을 훼손한 뒤 죽여 거리에 버림8.8
238년Rome근위병이 소년 고르디아누스를 황제로 환호하고 시민에게 「싫은 둘을 없앴을 뿐」이라 외침8.8

원문 라이선스·출처

Herodian, History of the Roman Empire after Marcus, 1749 English translation (archive.org OCR, 긴 s 복원 처리)

PD (1749, archive.org PD Mark)

https://archive.org/details/HerodiansHistoryOfHisOwnTimesOrOfTheRomanEmpireAfterMar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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