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80년 ~ 238년, 사건 122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80년 ~ 238년 |
| 사건 수 | 사건 122건 · 지도에 놓은 120건 |
| 저자 | Herodian of Antioch |
| 원제 | Ἡρωδιανοῦ τῆς μετὰ Μάρκον βασιλείας ἱστορία (1749 영역본으로 추출) |
지역 분포: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70 · 서아시아 28 ·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15 · 이집트·북아프리카 7 · 동유럽·러시아 2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80년 | Pannonia (Danube frontier)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도나우 전선에서 병으로 죽음. 아들 콤모두스에게 신하들을 잘 대하라고 당부하고 한 밤낮 만에 숨을 거둠 | 1.4 |
| 180년 | Pannonia (Danube frontier) | 콤모두스가 군대 앞 연단에서 연설하고 하사금을 나눠 군의 충성을 얻음 | 1.5 |
| 180년 | Pannonia (Danube frontier) | 아첨꾼들이 도나우의 추위를 헐뜯고 로마의 즐거움을 늘어놓아 콤모두스가 귀환을 바람 | 1.6 |
| 180년 | Pannonia (Danube frontier) | 폼페이아누스가 「황제가 있는 곳이 로마」라며 전쟁을 끝내고 가라고 간함. 콤모두스는 시간을 달라고 함 | 1.6 |
| 180년 | Danube frontier | 콤모두스가 변경 방비를 맡기고 야만족과 돈으로 사는 평화를 맺은 뒤 로마로 떠남 | 1.6 |
| 180년 | Rome | 콤모두스가 로마에 들어서자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와 꽃을 들고 맞음. 유피테르 신전에 들른 뒤 궁으로 감 | 1.7 |
| 182년 | Rome | 콤모두스가 부왕의 친구들을 물리고 이탈리아 출신 페렌니스를 근위대장으로 앉혀 정무를 맡김 | 1.8 |
| 182년 | Rome | 누이 루킬라가 퀸티아누스를 꼬드겨 콤모두스 암살을 꾀함. 퀸티아누스가 극장 통로에서 단검을 뽑고 소리치다 붙잡힘 | 1.8 |
| 182년 | Rome | 퀸티아누스의 외침이 콤모두스의 가슴에 박혀 이후 원로원 전체를 적으로 봄 | 1.8 |
| 185년 | Rome | 카피톨리움 경기장에 철학자 차림의 사나이가 뛰어들어 「페렌니스의 칼이 목에 닿았다」고 외침. 페렌니스가 그를 잡아 죽임 | 1.9 |
| 185년 | Rome | 브리타니아 군이 보낸 1500명의 창병이 페렌니스를 반역죄로 고발. 콤모두스가 그와 아들을 처형함 | 1.9 |
| 186년 ~ 187년 | Gallia | 탈영병 마테르누스가 무리를 모아 마을을 약탈하고 감옥을 열어 세력을 키움. 속주 총독들이 막지 못함 | 1.10 |
| 187년 | Rome | 마테르누스가 군을 흩어 이탈리아로 숨어들어 대모신(키벨레) 축제 때 콤모두스를 노렸으나 동료의 밀고로 로마에서 붙잡혀 참수됨 | 1.10 |
| 189년 | Laurentum | 로마에 역병이 돌아 콤모두스가 월계수 숲이 있는 서늘한 곳(로렌툼)으로 피함. 역병은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퍼짐 | 1.12 |
| 190년 | Rome | 근위대장 클레안데르가 곡물을 사재기하고 값을 올려 굶주림을 키움(곡물 관리 파피리우스는 그의 아래) | 1.12 |
| 190년 | Rome | 군중이 클레안데르를 내놓으라고 교외 별궁으로 몰려가자 기병대가 베어 가르고, 시민은 지붕에서 돌과 기와를 던져 맞섬. 로마 시내 시가전 | 1.12 |
| 190년 | Rome | 누이 파딜라가 콤모두스에게 달려가 재난의 원인을 넘기라고 호소. 클레안데르가 목이 잘려 창에 꽂혀 돌려지고 소요가 가라앉음 | 1.13 |
| 191년 | Rome | 한밤의 불로 평화의 신전과 주변 건물이 타고 베스타 신전까지 번짐. 사람들은 전쟁이 올 징조라고 풀이함 | 1.14 |
| 192년 | Rome | 콤모두스가 「헤라클레스, 유피테르의 아들」을 자칭하고 사자 가죽에 곤봉을 들고 다님. 달 이름도 바꿈 | 1.14 |
| 192년 | Rome | 원형경기장에서 콤모두스가 높은 단 위에서 창과 화살로 짐승을 쓰러뜨림. 사자 100마리를 창 100개로 잡는 쇼도 함 | 1.15 |
| 192년 | Rome | 콤모두스가 검투사 학교에서 검투사 차림으로 새해를 맞으러 나서려 하고, 마르키아·라이투스·에렉투스 등의 이름을 적은 사형 명단을 침상에 둠 | 1.16 |
| 192년 | Rome | 어린 소년이 명단을 가져가 마르키아가 읽고 포도주에 독을 탐. 콤모두스가 토하자 나르키소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함. 13년 재위 끝 | 1.17 |
| 192년 | Rome | 라이투스와 에렉투스 일행이 한밤에 페르티낙스의 집을 찾아가 황제 자리를 권함 | 2.1 |
| 193년 | Rome | 근위대 진영에서 라이투스가 콤모두스가 죽었다고 알리자 군중이 페르티낙스를 아우구스투스로 환호하고 병사들도 따름 | 2.2 |
| 193년 | Rome | 페르티낙스가 개간지를 개간자에게 주고 10년 면세를 약속하며 관세·밀고자를 없애는 개혁을 시작 | 2.4 |
| 193년 | Rome | 근위병들이 정오에 궁으로 난입. 페르티낙스가 연설로 달랬으나 일부가 덤벼 그를 죽임 | 2.5 |
| 193년 | Rome | 근위병들이 진영 성벽 위에서 제국을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겠다고 외침. 율리아누스가 올라가 병사당 큰 돈을 약속해 낙찰 | 2.6 |
| 193년 | Rome | 병사들이 율리아누스를 호위해 궁으로 갔으나 시민은 돈으로 제국을 산 그를 욕하며 멀리서 따름 | 2.6 |
| 193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시리아 총독 니게르가 안티오크에서 시민의 요청으로 제위를 받아들이고 자주색 옷과 불을 앞세워 신전을 도는 즉위 의식을 치름 | 2.8 |
| 193년 | Carnuntum | 판노니아 총독 세베루스가 페르티낙스의 복수를 내걸자 군대가 그를 황제로 선언함 | 2.9 |
| 193년 | Pannonia (Danube frontier) | 세베루스가 군에 최소한의 휴대품만 주고 로마를 향해 서둘러 출발 | 2.11 |
| 193년 | Rome | 이탈리아 도시들이 월계수를 들고 문을 열어 세베루스를 맞음. 율리아누스는 지키지 못함 | 2.11 |
| 193년 | Rome | 원로원이 세베루스를 단독 황제로 선포하고 보낸 호민관이 홀로 남은 율리아누스를 죽임 | 2.12 |
| 193년 | Rome | 세베루스가 근위병들을 무기 없이 월계수만 들고 나오게 해 창으로 에워싸 가두고 꾸짖은 뒤 무장과 허리띠를 벗겨 쫓아냄 | 2.13 |
| 193년 | Rome | 세베루스가 싸움 한 번 없이 로마에 입성.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로 맞음 | 2.14 |
| 193년 | Britannia (province) | 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의 알비누스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줘 후계자로 삼겠다고 달램 | 2.15 |
| 193년 | Rome | 세베루스가 하사금을 나눠주고 새 근위대를 뽑은 뒤 이탈리아에서 신병을 모아 동방 원정을 준비. 일리리아 군은 트라키아로 내려와 합류시킴 | 2.15 |
| 193년 ~ 194년 | Cyzicus | 니게르가 보낸 소아시아 총독 아이밀리아누스와 세베루스군이 키지코스에서 맞붙어 여러 번 격전. 세베루스군이 이김 | 3.2 |
| 193년 ~ 194년 | Nicaea (Bithynia) | 비티니아에서 니코메디아는 세베루스 편, 니케아는 니게르 편에 서서 각각 도시에서 나와 싸움. 세베루스군이 다시 이김 | 3.2 |
| 193년 ~ 196년 | Byzantium | 니게르 편에 섰던 비잔티움이 긴 포위 끝에 항복. 성벽과 장식이 허물어져 열린 마을로 줄고 주민은 페린토스에 예속됨 | 3.6 |
| 194년 | Laodicea (Syria) | 니게르가 세베루스로 돌아선 라오디케이아와 티루스를 치려 모로인 병력을 보내 주민을 학살하고 도시를 불사름 | 3.3 |
| 194년 | Cilician Gates (Taurus pass) | 타우로스 고개 방벽을 공격하던 세베루스군이 밤새 폭우로 불어난 급류에 성벽이 무너져 길이 열려 킬리키아로 내려감 | 3.3 |
| 194년 | Issus | 니게르가 신병 위주 대군으로 이소스 평원에서 싸웠으나 크게 져 도망함 | 3.4 |
| 194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안티오크 방면으로 달아난 니게르가 추격에 붙잡혀 죽음 | 3.4 |
| 195년 ~ 196년 | Rome | 세베루스가 알비누스를 공개 전쟁으로 칠 구실이 없자 은밀히 제거하려 함 | 3.5 |
| 196년 | Rome | 세베루스가 군 앞에서 니게르를 친 이유를 설명하며 알비누스의 배신을 같은 방식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선동 | 3.6 |
| 197년 | Lugdunum (Lyon) | 세베루스군과 알비누스군이 갈리아에서 결전. 세베루스군이 위기에서 되살아나 이기고 알비누스가 죽음 | 3.7 |
| 197년 | Gallia | 세베루스가 브리타니아에 총독 둘을 두고 갈리아를 정리하며 알비누스를 도운 자들을 죽이고 재산을 몰수 | 3.8 |
| 197년 | Rome | 세베루스가 말을 타고 로마에 들어서자 시민은 월계수로 맞고 원로원은 호칭을 바침 | 3.8 |
| 198년 | Rome | 세베루스가 병사들에게 곡물 배급·금반지·아내와 동거를 허락해 군 기강을 풀어 놓았다고 헤로디아노스가 비판 | 3.8 |
| 198년 ~ 199년 | Hatra | 세베루스가 메소포타미아의 하트라를 포위하나 성이 튼튼해 손해만 입고 물러남 | 3.9 |
| 204년 | Rome | 세베루스가 세속경기를 열고 수백 마리 맹수를 잡는 큰 구경거리와 잦은 하사금으로 시민을 달램 | 3.8 |
| 205년 | Rome | 플라우티아누스가 황제 부자를 죽일 음모로 호민관을 보냈다 들통나 황궁으로 불려가 살해됨. 시신은 거리에 버려짐 | 3.11 |
| 208년 | Britannia (province) | 브리타니아 야만족 반란 소식에 노쇠한 세베루스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배로 건너감 | 3.14 |
| 208년 | Britannia (province) | 세베루스가 어린 아들 게타를 로마령에 남겨 행정을 맡기고, 늪과 덤불로 숨는 브리타니아인을 치러 진군 | 3.14 |
| 211년 | Eboracum (York) | 병든 세베루스가 아들에게 군 통솔을 넘기고 죽음. 두 아들에게 재물과 막강한 군대를 남김 | 3.15 |
| 211년 | Rome | 로마에서 세베루스의 장례와 신격화. 불탄 화장대에서 독수리가 날아올라 영혼을 하늘로 옮긴다고 믿음 | 4.2 |
| 211년 | Rome | 두 형제가 궁을 갈라 쓰고 서로 독을 의심해 식탁도 따로 함. 군과 관리들이 두 파로 갈림 | 4.3 |
| 211년 | Byzantium | 제국을 나누자는 안: 안토니누스는 유럽 쪽 비잔티움에, 게타는 아시아 쪽 칼케돈에 진영을 둠. 어머니 반대로 무산 | 4.3 |
| 211년 | Rome | 게타 살해 뒤 카라칼라가 근위대에 「동생이 무장한 자들과 나를 덮쳤다」고 변명함 | 4.4 |
| 212년 | Rome | 카라칼라가 게타의 측근 수많은 사람을 죽임. 근위대장이자 법학자 파피니아누스도 포함 | 4.6 |
| 213년 | Danube frontier | 카라칼라가 도나우 방면으로 떠나 병사처럼 소박하게 먹고 대개 걸어서 행군함 | 4.7 |
| 214년 | Ilium/Troia | 카라칼라가 일리움의 아킬레우스 무덤에서 화환을 얹고 아킬레우스를 흉내냄. 친구를 파트로클로스로 삼으려 독살했다는 전언 | 4.8 |
| 214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소아시아·비티니아를 거쳐 안티오크에 이르러 성대한 환영을 받고 한동안 머묾 | 4.8 |
| 215년 | Alexandria |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꽃과 향으로 성대히 맞음. 황제는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알렉산드로스 묘에 옷과 반지를 바침 | 4.8 |
| 215년 | Alexandria | 카라칼라가 젊은이를 사열한다며 모아 군으로 에워싸고 학살. 구덩이에 쌓아 묻었고 피가 나일 하구를 물들임 | 4.9 |
| 216년 | Ctesiphon | 카라칼라가 파르티아 왕 아르타바누스의 딸에게 청혼. 왕은 두 나라 문화가 다르다고 거절했으나 선물과 맹세에 흔들려 승낙 | 4.10 |
| 216년 | Mesopotamia | 강을 건너 파르티아 영토로 들어서자 파르티아인이 화환과 음악으로 신랑을 맞음. 카라칼라는 신호를 주어 무장하지 않은 군중을 학살하고 약탈함 | 4.11 |
| 217년 | Carrhae (Harran) | 카라칼라가 카라이의 달 신전을 참배하러 소수 기병만 데리고 나섬 | 4.13 |
| 217년 | Carrhae (Harran) | 볼일을 보려고 홀로 떨어진 카라칼라를 마르티알리스가 뒤에서 찔러 죽임. 근위대장 마크리누스가 꾸민 일 | 4.13 |
| 217년 | Antioch on the Orontes | 군이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올림(처음에 연장자를 추대했으나 사양) | 4.14 |
| 217년 | Nisibis | 마크리누스군이 파르티아와 맞서 쇠못(칼트로프)을 뿌려 낙타·기병을 상하게 함. 시체가 산처럼 쌓여 양쪽이 물러남 | 4.15 |
| 218년 | Nisibis | 아르타바누스가 포로와 재물을 돌려받기로 하고 마크리누스와 조약을 맺고 돌아감 | 4.15 |
| 218년 | Emesa | 에메사의 태양신 엘라가발의 대사제로 소년 바시아누스가 화려한 동방 의상으로 제의를 올림. 근처에 주둔한 로마군이 모여 구경함 | 5.3 |
| 218년 | Emesa | 마이사가 손자를 카라칼라의 아들이라 하고 재물을 약속하자 병사들이 밤에 문을 열어 맞아 「안토니누스」라 부르고 자주색 옷을 입힘 | 5.3 |
| 218년 | Emesa | 마크리누스가 보낸 대장이 진영을 에워싸자 성 위에서 소년을 내보이고 돈자루를 보이며 병사들을 회유. 병사들이 넘어옴 | 5.4 |
| 218년 | Antioch on the Orontes | 패한 마크리누스가 수염을 깎고 나그네 차림으로 안티오크를 빠져나가 낮밤으로 달림 | 5.4 |
| 218년 | Antioch on the Orontes | 동방 군 전체가 안토니누스(엘라가발루스)에게 넘어가 그를 황제로 선포. 할머니의 후견 아래 동방을 정리하고 로마 원정을 채비함 | 5.5 |
| 219년 | Rome | 엘라가발루스가 마이사의 재촉으로 로마를 향해 떠남 | 5.5 |
| 220년 | Rome | 엘라가발루스가 흑석 신상을 황금 모래 깐 길로 옮기는 행렬을 하고 시민이 횃불과 꽃으로 따름 | 5.6 |
| 220년 | Rome | 엘라가발루스가 베스타 여사제와 혼인하며 사제와 여사제의 혼인이 알맞다고 둘러댐 | 5.6 |
| 220년 | Carthage | 엘라가발루스가 카르타고 여신(우라니아)의 신상과 신전 금을 로마로 옮겨 오게 함 | 5.6 |
| 221년 | Rome | 병사들이 엘라가발루스의 여장과 춤을 경멸해 신중한 알렉산데르에게 마음을 옮기고 그를 지킴. 모후 맘마이아가 음식도 직접 살핌 | 5.7 |
| 222년 | Rome | 근위대 진영에서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만 환호하자 격분한 엘라가발루스가 소란꾼을 벌하려 하자 병사들이 그와 어머니를 죽임. 시신은 시궁에 던져짐 | 5.8 |
| 222년 | Rome |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를 황제로 선포해 궁에 들임. 아직 어린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지도 아래 있음 | 5.8 |
| 222년 | Rome | 알렉산데르가 학식 있는 법관과 전쟁 경험 있는 장교로 관직을 채움. 모후가 유혹하는 자를 궁에서 멀리함 | 6.1 |
| 230년 | Mesopotamia |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위협하며 아시아 전체를 옛 페르시아 영토라 주장한다는 소식이 로마에 닿음 | 6.2 |
| 231년 | Antioch on the Orontes | 알렉산데르가 편지로 「제 땅에 머물라」고 달래 보았으나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400명의 호화 사절을 보내 강요하는 투로 답함 | 6.4 |
| 232년 | Mesopotamia | 알렉산데르가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눠 출정. 어머니가 위험에서 아들을 멀리 두려 해 황제는 몸을 아낌 | 6.5 |
| 232년 | Mesopotamia | 한 갈래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전멸. 알렉산데르가 병들고 병영에 질병이 번지며 양쪽 손실은 비슷했으나 로마는 승리하지 못함 | 6.6 |
| 234년 | Mogontiacum (Mainz) | 게르만이 라인을 넘볼 위협에 알렉산데르가 마지못해 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쪽에서 라인 강변으로 서둘러 진군 | 6.7 |
| 234년 | Mogontiacum (Mainz) | 라인 강에 배다리를 놓아 군을 건너게 하려 하고, 동방에서 데려온 모로인·오스로에네 궁수를 투입하려 함 | 6.7 |
| 235년 | Mogontiacum (Mainz) | 알렉산데르가 사절로 평화를 사려 하며 전차 경주 등으로 시간을 보내자 병사들이 분노함 | 6.7 |
| 235년 | Mogontiacum (Mainz) | 병사들이 사열 중 막시미누스에게 자주색 옷을 입혀 황제로 환호하게 함. 그는 처음 거부하다 칼 앞에 받아들임 | 7.1 |
| 235년 | Mogontiacum (Mainz) | 막시미누스가 보낸 호민관과 백인대장들이 알렉산데르 막사를 덮쳐 모자를 죽임. 14년 재위 끝 | 7.1 |
| 235년 | Mogontiacum (Mainz) | 마그누스 등 백인대장이 라인 다리를 끊고 막시미누스를 치려 했으나 들통남. 쿠아르티누스는 의사에 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가 배신당함 | 7.1 |
| 235년 ~ 236년 | Germania | 막시미누스가 라인을 건너 숲과 늪에 숨은 게르만을 쫓음. 호수에 말을 몰아 들어가 싸우고 늪이 시체로 메워짐 | 7.2 |
| 236년 | Sirmium | 막시미누스가 겨울을 시르미움에서 보내며 이듬해 원정 채비 | 7.2 |
| 236년 ~ 238년 | 막시미누스가 밀고를 부추겨 부자를 거지로 만들고 도시 곡물 비축과 극장·신전 재원까지 약탈함 | 7.3 | |
| 238년 | Thysdrus | 아프리카(리비아)에서 총독이 청년들의 재산을 뺏으려 들자 이들이 소작인을 모아 새벽에 광장에 와서 그를 찔러 죽임. 반란이 시작됨 | 7.4 |
| 238년 | Thysdrus | 반란 청년들이 총독 고르디아누스를 침실에서 일으켜 황제로 환호. 그는 사양하는 시늉 뒤 받아들임 | 7.5 |
| 238년 | Carthage | 고르디아누스가 티스드루스에서 카르타고로 옮겨 황제 위엄을 갖추고 로마의 유력자와 원로원에 편지를 보냄 | 7.6 |
| 238년 | Rome | 고르디아누스가 보낸 재무관 일행이 막시미누스의 근위대장 비탈리아누스에게 비밀 서한을 핑계로 다가가 찔러 죽임 | 7.6 |
| 238년 | Rome | 원로원이 속주 총독들에게 사자를 보냄. 대부분 막시미누스 편 관리를 죽이고 로마 편에 섰으나 일부는 사자를 죽이거나 막시미누스에게 보냄 | 7.7 |
| 238년 | Sirmium | 막시미누스가 이탈리아로 행군을 명하고 하사금을 나눠준 뒤 독일인 포함 대군과 공성기를 데리고 출발 | 7.8 |
| 238년 | Carthage | 누미디아 총독 카펠리아누스가 막시미누스 편으로 카르타고를 치자 훈련 없는 카르타고군이 무너지고 소(小) 고르디아누스는 전사해 시신도 못 찾음 | 7.9 |
| 238년 | Rome | 원로원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공동 황제로 뽑음 | 7.10 |
| 238년 | Rome | 시민의 요구에 소년 고르디아누스(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를 데려오게 해 카이사르로 삼음 | 7.10 |
| 238년 | Rome | 시민이 검투사까지 끌어모아 근위대 진영을 공격하나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반격해 검투사와 군중이 쓰러짐 | 7.11 |
| 238년 | Rome | 도시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탐. 약탈은 군중 틈에 섞인 하층민이 함 | 7.11 |
| 238년 | Emona | 막시미누스군이 평원 끝에서 만난 첫 도시 에모나(에마)는 주민이 신전·집에 불을 지르고 식량을 치워 비어 있었음. 병사들은 굶주림을 두려워함 | 8.1 |
| 238년 | Emona | 다음 날 해 뜨자 알프스로 올라 좁은 고개를 매복을 걱정하며 넘음. 이탈리아인이 지키지 않아 병사들은 어리둥절함 | 8.1 |
| 238년 | Aquileia | 아퀼레이아 시민이 성벽을 보수하고 원로원 장군들 지휘 아래 항복 권고 사절을 돌려보내 끝까지 막기로 함 | 8.2 |
| 238년 | Aquileia | 눈 녹은 물로 불어난 강에 아퀼레이아인이 다리를 부수어 막시미누스군이 통나무 대신 빈 술통을 엮어 다리를 만듦 | 8.4 |
| 238년 | Aquileia | 막시미누스군이 도시를 에워싸고 쉬지 않고 공격하나 수비대가 유황·아스팔트·송진 혼합물을 쏟아 부어 철제 무장이 달아올라 군이 크게 상함 | 8.4 |
| 238년 | Aquileia | 알바누스 산 로마 진영 병사들이 처자식을 걱정해 한낮 막사로 몰려가 막시미누스와 아들을 죽이고 시신을 개와 새에게 던짐 | 8.5 |
| 238년 | Aquileia | 막시미누스 부자의 머리를 로마로 보냄. 병사들이 무기를 놓고 성벽 앞에서 화해를 청하자 아퀼레이아인이 열렬히 맞음 | 8.6 |
| 238년 | Ravenna | 푸피에누스가 라벤나에서 이탈리아 정예와 게르만 보조병을 모아 막시미누스를 대비함 | 8.6 |
| 238년 | Rome | 막시미누스 죽음의 소식에 로마 시민이 환희로 뛰쳐나오고 발비누스가 제물을 바침 | 8.6 |
| 238년 | Rome | 근위대는 황제가 곁에 둔 게르만 호위를 의심하다가 카피톨리움 경기 중 소요를 일으킴 | 8.8 |
| 238년 | Rome | 근위병이 궁에 난입해 두 노황제의 옷을 찢고 몸을 훼손한 뒤 죽여 거리에 버림 | 8.8 |
| 238년 | Rome | 근위병이 소년 고르디아누스를 황제로 환호하고 시민에게 「싫은 둘을 없앴을 뿐」이라 외침 | 8.8 |
Herodian, History of the Roman Empire after Marcus, 1749 English translation (archive.org OCR, 긴 s 복원 처리)
PD (1749, archive.org PD Mark)
https://archive.org/details/HerodiansHistoryOfHisOwnTimesOrOfTheRomanEmpireAfterMar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