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국 · 좌표: 34.780, 113.350 · 사건 22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249년 | 자치통감 | 진 몽오가 한을 쳐 성고·형양을 취하고 처음으로 삼천군을 둠 |
| 기원전 205년 | 한서(漢書) 제기 | 한왕이 형양에 주둔, 한신이 군을 모아 합류 — 경·삭 사이에서 초군을 깨고 용도를 쌓아 오창의 곡식을 가져옴 |
| 기원전 204년 | 한서(漢書) 제기 | 항우가 형양을 포위, 한왕이 화친을 청해 형양 서쪽을 한에 떼어 줌 — 진평의 반간으로 범증이 의심받아 떠나 병사 |
| 기원전 204년 | 한서(漢書) 제기 | 장군 기신이 한왕의 수레를 타고 거짓 항복, 그 틈에 한왕이 수십 기로 서문으로 탈출 |
| 기원전 204년 | 한서(漢書) 제기 | 항우가 형양성을 함락해 주가를 사로잡고 삶아 죽임, 이어 성고를 포위 |
| 기원전 204년 | 한서(漢書) 제기 | 한왕이 성고 옥문으로 빠져나와 북으로 하수를 건너 소수무에서 숙박, 새벽에 장이·한신의 진영에 들어가 군을 빼앗음 |
| 기원전 204년 | 한서(漢書) 제기 | 한이 성고에서 거듭 도전하자 초 대사마 조구가 사수를 건너다 반쯤 건넜을 때 한군이 공격해 대파 — 조구 자살, 한왕이 성고를 되찾고 광무에 군을 둠 |
| 기원전 204년 | 사기(史記) 본기 | 滎陽이 포위되자 紀信이 漢王 행세로 楚軍을 속이고 漢王은 서문으로 빠져나가 成皋로 달아남, 紀信은 불에 타 죽음 |
| 기원전 204년 | 사기(史記) 본기 | 陳平의 이간으로 項羽가 范增을 의심하자 范增이 사직하고 彭城에 닿기 전 등창으로 죽음 |
| 기원전 203년 | 사기(史記) 본기 | 廣武에서 대치하며 項羽가 太公을 높은 도마에 올려 삶겠다고 위협하자 漢王이 '국 한 그릇 나눠 달라'고 응수, 項羽가 쏜 쇠뇌에 漢王이 가슴에 부상 |
| 기원전 180년 | 한서(漢書) 제기 | 여씨 일족의 변란 — 관영이 제왕을 치러 갔다가 형양에서 제와 연합해 여씨 주살을 기다림 |
| 기원전 180년 | 사기(史記) 본기 | 相國 呂產이 보낸 灌嬰이 滎陽에 이르러 諸呂를 치려는 뜻을 알고 진군을 멈추고 齊와 연합함 |
| 기원전 177년 | 사기(史記) 본기 | 濟北王 興居가 文帝가 代에 갔다는 말에 반란, 滎陽을 습격하려 했으나 8월 격파되어 사로잡힘 |
| 69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왕오를 보내 형양에서 천승 해구까지 변거를 수리하게 함 |
| 190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曹操가 서쪽으로 진군해 熒陽 汴水에서 동탁 장수 徐榮과 싸워 패하고 유시에 맞음 |
| 317년 | 자치통감 | 2월 漢主 聰이 사촌동생 暢에게 보기 3만으로 滎陽을 공격하게 하자 太守 李矩가 韓王故壘에 주둔해 7리를 사이에 두고 사자를 보내 회유 |
| 363년 | 자치통감 | 여름 4월 燕 寧東將軍 慕容忠이 滎陽太守 劉遠을 공격해 劉遠이 魯陽으로 달아남 |
| 383년 | 자치통감 | 平南將軍 慕容□이 鄖城에 주둔하다 苻堅이 패했다는 말을 듣고 군을 버리고 달아나 滎陽에 이르렀으나 慕容德이 연나라 복원을 권해도 따르지 않음 |
| 389년 | 자치통감 | 여름 4월 翟遼가 滎陽을 침범해 太守 張卓을 사로잡음 |
| 558년 | 주서(周書) 제기 | 齊 北豫州刺史 司馬消難이 주를 들어 귀부, 達奚武·楊忠이 맞이하러 감 |
| 580년 | 주서(周書) 제기 | 滎州刺史 宇文冑가 거병했으나 楊素가 토벌해 8월 石濟에서 벰 |
| 937년 | 자치통감 | 杜重威·侯益이 汜水에서 張從賓을 격파, 張從賓은 황하를 건너다 익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