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앗딘 「집사」: 정사 사료. 다루는 해 1213년 ~ 1307년, 사건 86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1213년 ~ 1307년 |
| 사건 수 | 사건 86건 · 지도에 놓은 30건 |
| 저자 | Rashid al-Din Fadl Allah Hamadani |
| 원제 | جامع التواریخ — تاریخ مبارک غازانی (Blochet 편 2권) |
지역 분포: 서아시아 65 · 중국 5 · 동유럽·러시아 4 · 몽골·초원 4 · 중앙아시아 3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1213년 | Zhuozhou (涿州) | 칭기스칸이 톨루를 옹기라트의 치코 구르칸과 함께 보내 성벽을 타고 올라 점령케 하고, 이어 「چوچیوه」 시를 포위해 함락. 좌·우익 군을 아들·아미르와 함께 보내고 자신은 톨루칸과 함께 있었음 | 87460_djvu.txt 줄 13105–13109 |
| 1219년 | 키타이에서 돌아온 뒤 타지크(이란) 땅 원정을 결심, 오트라르에 이르러 조치·차가타이·우구데이를 호라즘 방면에 두었음 | 87460_djvu.txt 줄 13213–13215 | |
| 1221년 | Gurganj (Konye-Urgench) | 칭기스칸이 조치를 형제 차가타이·우구데이와 함께 호라즘 공략에 보냄. 포위했으나 조치·차가타이 사이 일(「سب نا … او و چفتای」, 판독 불가) 때문에 함락이 이뤄지지 않음. 뒤 줄에 「خوارزم … بستدند」(결국 점령) | 87460_djvu.txt 줄 9504–9508 |
| 1221년 | Bamiyan | 칭기스칸이 아끼던 손자(차가타이의 아들 무투겐)가 바미얀 성에서 쏜 화살에 맞고, 칭기스칸이 이 일로 크게 상심해 성을 함락시킴 | 87460_djvu.txt 줄 10758–10762 |
| 1221년 | Taloqan | 탈로칸(طالقان)에서 칭기스칸에게 이르렀을 때 성(قلعه)을 (돌려 맡기던/포위하던) 중이라는 대목(동사 「گردانیدند」 뜻 불확실) | 87460_djvu.txt 줄 13222–13224 |
| 1225년 ~ 1227년 | Tabriz | 술탄(잘랄 앗딘)이 「기란」 성채 수비를 맡길 사람을 세우고 후궁(حرم)을 그에게 맡긴 뒤 자신은 타브리즈로 감 | 87460_djvu.txt 줄 5196–5198 |
| 1227년 | 칭기스칸이 죽은 해에 그의 오르도에 있던 왕자들과 아미르들이 모임(이어지는 문장 OCR 파손) | 87460_djvu.txt 줄 4746–4748 | |
| 1227년 | Isfahan | 술탄의 동생이 이스파한 성문 앞에서 몽골과 싸우던 중, 좌익(میسره)을 맡았음에도 이를 버리고 루리스탄 길로 후제스탄을 향해 떠남 | 87460_djvu.txt 줄 5294–5297 |
| 1227년 | 칭기스칸이 죽고, 그의 관을 오르도들로 옮겨 오자 조문 의례(مراسم)를 치름 | 87460_djvu.txt 줄 13282–13284 | |
| 1229년 | 우구데이 카안이 옥좌에 오르자 가장 먼저 칭기스칸이 앞서 정한 야사(법령)를 그대로 시행하라고 명함 | 87460_djvu.txt 줄 4740–4742 | |
| 1229년 ~ 1241년 | 이 재위 기간 동안 왕자들의 큰 쿠릴타이가 두 차례 열렸고, 키타이·마친 등으로 사신을 보냄(OCR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5535–5537 | |
| 1230년 | 우구데이가 알탄칸(금나라) 원정에 나서며 형제·조카·아들들을 데려가고, 톨루는 2투만(약 2만)을 이끌고 따로 출정 | 87460_djvu.txt 줄 4779–4781 | |
| 1230년 | Ahlat (Akhlat) | 술탄(잘랄 앗딘)의 아흘라트 포위를 두고 에르주룸(ارزن الروم) 쪽 군대가 얽힌 대목(줄 일부 파손; 앞선 5148행에 「술탄이 두 달 포위」) | 87460_djvu.txt 줄 5157–5159 |
| 1231년 | 몽골군이 모란(황허) 강변의 도시(이름 판독 불가 「…ینقین」)에 이르러 포위, 40일 뒤 주민이 (…)를 청함(OCR 파손) | 87460_djvu.txt 줄 4803–4805 | |
| 1231년 | Nishapur | 초르마칸이 카라차를 니샤푸르·투스 방면으로 보냄. 카라차는 패한 뒤 돌아왔고, 호라산 동요 소식에 (조치가 이어짐) | 87460_djvu.txt 줄 5442–5444 |
| 1231년 | 톨루가 티베트(تبت)로 가서 「훌란」(붉은 사람이라는 뜻)이 사는 키타이 지방을 지나, 알탄칸의 대군 앞에 이름 | 87460_djvu.txt 줄 13312–13318 | |
| 1232년 | 금군(키타이)이 후위 정찰대를 이끌던 토콜쿠를 불시에 덮침. 앞에 개울과 진창이 있어 몽골 병사 마흔 명이 그곳에 빠짐 | 87460_djvu.txt 줄 4854–4856 | |
| 1232년 | 톨루칸이 앞서 말한 전투를 마치고 형 우구데이에게 돌아왔고, 원정이 오래 되어 카안이 토콜루를 (보냈다)는 대목(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3369–13371 | |
| 1233년 | 우구데이가 토콜쿠에게 지원군을 보내고, 금(키타이)·송(마친) 쪽 성을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림(OCR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4977–4979 | |
| 1235년 | Karakorum | 도읍을 「قراقروم」(카라코룸)이라 이름 짓고, 키타이 지방에서 그 도시까지 역참(얌)을 설치함. 거리 표기「…فرسنگ」(OCR 파손) | 87460_djvu.txt 줄 5847–5849 |
| 1236년 | (서정군이) 「폴로」(پولو)와 바슈키르(باشغرد)를 겨냥해 출정, 「폴로」를 점령하고 살육·약탈 | 87460_djvu.txt 줄 5652–5654 | |
| 1236년 | Bolgar | 수베데이를 군과 함께 불가르 변경으로 보냄. 그들은 「…نک」 시 등지까지 가서 그곳 군대를 깸 | 87460_djvu.txt 줄 5682–5684 |
| 1237년 | Ryazan | 왕자들이 힘을 합쳐 랴잔(ریازان)을 포위, 사흘 만에 함락하고 이어 다른 도시도 점령. 쿨칸이 부상을 입음(다음 낱말 「وفا…」에서 줄이 끊김) | 87460_djvu.txt 줄 5748–5750 |
| 1237년 | Erbil | 몽골군이 바그다드와 아르빌을 공격하며 도시에서 성채로 전투를 벌임(문장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5012–15014 |
| 1237년 | Baghdad | 칼리프가 아르슬란 테긴을 기병 3천과 함께 지원군으로 보냄. 몽골은 도착 소식을 듣고 갑자기 (…) 도망(문장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5048–15050 |
| 1237년 | Baghdad | 칼리프가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시민들이 활·무기에 몰두하게 했으며, 바그다드의 해자와 성벽을 수리하라고 명함 | 87460_djvu.txt 줄 15051–15053 |
| 1237년 | Baghdad | 무스탄시르 칼리프가 도시 밖으로 나와 시민들을 모아 연설. 몽골군이 쫓겨 많은 수가 죽고 포로·말을 되찾았으며, 사건은 금요일에 있었음 | 87460_djvu.txt 줄 15084–15090 |
| 1238년 | Moscow | 모스크바(مسکو)를 며칠 만에 점령하고 「울라이 테무르」라는 이를 죽임. 이어 큰 도시 하나를 8일 포위해 함락(도시 이름 「بوری」 판독 불확실) | 87460_djvu.txt 줄 5751–5753 |
| 1238년 | 바투가 「مانشکه」라는 도시에 이르러 두 달 포위했으나 함락하지 못함 | 87460_djvu.txt 줄 5757–5759 | |
| 1240년 | Kyiv | 「큰 루스」의 도시 「منکرقان」을 아흐레 만에 함락, 그 뒤 「اولادمور」(블라디미르 방면) 일대 모든 도시를 투만 단위로 돌며 점령 | 87460_djvu.txt 줄 6042–6044 |
| 1241년 | 재위 13년째, 술시중을 들던 아들이 우구데이에게 잔을 올렸고, 우구데이는 밤에 지나친 음주로 잠든 채 사망함 | 87460_djvu.txt 줄 5919–5921 | |
| 1241년 | 왕자들이 바슈키르·마자르(헝가리)·사산 등 지방 전체를 돌아 진군(이어 「여름」 언급, 문장 파손) | 87460_djvu.txt 줄 6069–6071 | |
| 1242년 ~ 1243년 | 640년 표기. 한동안 옥좌가 임금 없이 비어 있었고, 투레게네 카툰과 소르칵타니 이름이 나오며 「자기 아들」을 언급(문장 파손) | 87460_djvu.txt 줄 9615–9617 | |
| 1242년 ~ 1246년 | 귀위크 즉위 전, 약 3년 동안 투레게네 카툰의 명령·금지(امر و نهی) 아래에 있었음 | 87460_djvu.txt 줄 14130–14132 | |
| 1243년 | (룸 셀주크 술탄이) 바이주 노얀이 이끈 몽골군에게 쾨세 다그에서 깨졌고, 형제 룩큰 앗딘과 권력을 나눠 통치함 | 87460_djvu.txt 줄 28357–28359 | |
| 1246년 | 귀위크가 옥좌에 앉자 가장 먼저 파티마 카툰에 대한 재판(야르구)을 열었고, 매질을 한 뒤 몸을 꿰매어 물에 던짐 | 87460_djvu.txt 줄 14184–14188 | |
| 1250년 ~ 1251년 | 바투가 동생 베르케와 아들 사르탁을 3투만과 함께 보내, 칭기스칸의 유르트인 「오난·켈루란」에서 (몽케를 옥좌에) 앉히게 함 | 87460_djvu.txt 줄 9657–9659 | |
| 1250년 | 바투가 잔(کاسه)을 잡고 칸위를 (몽케로) 정하자 참석자 모두가 충성을 맹세했고, 이듬해 큰 쿠릴타이를 열기로 정함 | 87460_djvu.txt 줄 15941–15944 | |
| 1250년 | 칸 자리가 비어 두 해가 지났다며, 우구데이 카안의 아들들이 오지 않자 「네가 그를 옥좌에 앉혀라」고 사람을 보냄 | 87460_djvu.txt 줄 16055–16058 | |
| 1251년 | Karakorum | 돼지해 (…)월에 몽케 카안을 칭기스칸의 어좌가 있던 카라코룸 부근에서 옥좌에 앉힘 | 87460_djvu.txt 줄 16154–16157 |
| 1251년 | 군대를 시라문·나쿠·토토크 왕자들 주변에 배치하고 사람을 보내 「너희…」라고 전함(문장 파손) | 87460_djvu.txt 줄 16511–16514 | |
| 1251년 | 그들을 오르도 안으로 데려가 사흘 동안 잔치를 열고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음 | 87460_djvu.txt 줄 16523–16527 | |
| 1251년 ~ 1252년 | 몽케가 동쪽(키타이) 지역을 얄라바치(صاحب یلواج)에게 맡기고, 위구르·페르가나·호라즘 쪽은 마수드 벡에게 맡기는 행정 분담 대목 | 87460_djvu.txt 줄 17327–17331 | |
| 1251년 | 몽케가 (이란) 나라들과 호라산·마잔다란을 그들에게 맡기고, 아미르 아르군이 황제의 오르도에 이른 뒤 …(문장 파손) | 87460_djvu.txt 줄 18842–18844 | |
| 1252년 ~ 1255년 | 「…52년」 표기 줄에서 죽음이 있었고, 오르키나 카툰이 카라 훌레구의 아들 무바라크샤를 군주로 앉힘 | 87460_djvu.txt 줄 11987–11989 | |
| 1252년 | 심문 끝에 모두 한목소리로 시인하고 「내가 저질렀다」고 자백함(정확한 죄목은 앞줄 파손) | 87460_djvu.txt 줄 16703–16705 | |
| 1252년 | 아미르들을 구금함. 아버지 때 아미르들 중 일부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는 대목(OCR 파손) | 87460_djvu.txt 줄 16811–16814 | |
| 1252년 | 한 사람을 잡아 두 손을 생가죽에 꿰매어 데려오게 했고, 시라문의 어머니 카툰과 함께 소르칵타니의 오르도로 보냄(이름 판독 불가) | 87460_djvu.txt 줄 17099–17102 | |
| 1253년 | 651년에 일행이 길을 떠났고, 아르군(아카)이 호라산에 이르러 야사 등을 (백성에게 시행/알림) | 87460_djvu.txt 줄 18773–18775 | |
| 1257년 | 사르탁 뒤 울라치가 잠시 칸이 되었다가 곧 죽고, 이어 베르케 칸이 군주가 됨 — 650년대 표기 | 87460_djvu.txt 줄 8289–8291 | |
| 1258년 | 온 부족이 출병하고 「차오쿠트」(키타이·탕구트·주르체·솔랑가의 군) 군이 몽케 뒤를 따라 감. 줄에 「60투만」 | 87460_djvu.txt 줄 17939–17944 | |
| 1259년 | 여름 주둔지가 칭기스칸이 키타이 원정 도중 이르러 병들어 죽은 곳이며, 가을에는 「بیسون قبلقه」로 향함(OCR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8047–18050 | |
| 1259년 | Diaoyucheng (Hezhou 合州) | 「یاو چو」 시에 이르러 포위를 시작함. 줄 끝에 「열 투만 중 두 투만」이라는 수치(맥락 파손) | 87460_djvu.txt 줄 18443–18446 |
| 1259년 | Diaoyucheng (Hezhou 合州) | 몽케 카안이 앞서 말한 성채를 포위하던 여름, 물과 기후 탓에 병이 나고 군중에 역병(وبا)이 돌았다 | 87460_djvu.txt 줄 18485–18488 |
| 1259년 | 「قوروق」(금역)이라 부르는 곳에 칭기스칸·톨루칸 곁에 묻음(몽케 편 마지막 대목이라 몽케로 짐작) | 87460_djvu.txt 줄 18587–18589 | |
| 1260년 ~ 1261년 | Karakorum | 키르기스가 아리크 부카에게로 간 뒤, 쿠빌라이가 카라코룸에 이르러 칭기스칸의 네 오르도와 쿨칸의 오르도들을 (처리/접수)함(문장 끝 파손) | 87460_djvu.txt 줄 21371–21373 |
| 1260년 | Aleppo | 칸(훌레구)이 알레포를 점령하고 돌아감 — 줄 끝에 키트부카(کدپوقا). 칸=훌레구는 문맥 추정 | 87460_djvu.txt 줄 28474–28477 |
| 1260년 | Damascus | 칸(훌레구)이 알레포에 이어 다마스쿠스(دمشق)를 점령하고 돌아감 | 87460_djvu.txt 줄 28474–28477 |
| 1261년 | 아리크 부카 쪽 군이 깨지고 초무쿠르·카라차르 등 소수만 빠져나가자, 아리크와 그 군이 겁에 질려 패주함 | 87460_djvu.txt 줄 21245–21248 | |
| 1264년 | 쥐해(66x년)에 (아리크 부카가) 카안 앞에 이르자 「순회(سیار) 군대」에 대한 명이 내려짐(문장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22535–22538 | |
| 1264년 | 아리크 부카를 잡아 결박하고, 왕자 가운데 몇 명과 아미르 헨툰·두르바타이·폴라드 칭상 등을 (재판에) 세우라 명함 | 87460_djvu.txt 줄 22652–22655 | |
| 1265년 | 알구도 그해 오랜 병에 걸려 쿠릴타이에 갈 수 없었다 | 87460_djvu.txt 줄 23117–23119 | |
| 1267년 | Dadu (Khanbaliq, 元大都) | 쿠빌라이가 자신을 위해 (칸발릭 곁에) 도시를 하나 더 짓고 「다이두」(دایدو)라 이름 붙임 | 87460_djvu.txt 줄 24112–24116 |
| 1270년 | 쿠릴타이를 마친 뒤 카이두에게 「우리 군이 더 많다」며 호라산 문제를 말함(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2023–12025 | |
| 1270년 | 차가타이 후손 하나가 원군 약속을 어기고 카이두에게 사람을 보내 「잘못이 있었다」고 하며, 그 때문에 군대가 깨졌다는 대목(OCR 파손) | 87460_djvu.txt 줄 12116–12118 | |
| 1270년 | 카이두가 그들을 환대하고 바라크의 재물을 자기 군에 나눠 준 뒤 돌아감. 한 사람은 자기 유르트로 감 | 87460_djvu.txt 줄 12128–12130 | |
| 1270년 | 바라크가 강을 건너 아바카 칸과 싸우러 왔을 때, 카이두가 차바트를 기병 천 명과 함께 매복시킴 | 87460_djvu.txt 줄 13818–13821 | |
| 1271년 | (주어 불명) 마와라안나흐르로 간 뒤 중풍(افلاج)에 걸림. 같은 줄에 669년 표기 | 87460_djvu.txt 줄 11084–11086 | |
| 1274년 | Baghdad | 70년대 표기 줄에서 호자 나시르(앗딘 투시)가 바그다드에서 해질 무렵 죽고 자신이 정한 묘에 묻힘 | 87460_djvu.txt 줄 28819–28823 |
| 1282년 | Dadu (Khanbaliq, 元大都) | 밤에 「کاو」(가오)가 손을 들어 쳐 죽였고, 그날 밤 큰 소요(فتنه)가 일어났으며 키타이 사람들이 (…)함. 피살자는 앞줄 26506·26551의 아흐마드(「احد」로 OCR)로 추정 | 87460_djvu.txt 줄 26962–26964 |
| 1287년 | 아리크 부카의 아들 테무르를 군과 함께 나얀 영지 경계로 보냄(이어 나얀 쪽 군대 이야기, 문장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7821–7823 | |
| 1294년 | (사람을) 보내 알렸고, 테무르가 도착할 때까지 카툰이 큰 쿠릴타이를 (열어 두었다) | 87460_djvu.txt 줄 30175–30177 | |
| 1294년 | 사람들이 「테무르가 (야사를) 알고 설명하니 왕관과 옥좌에 합당하다」고 소리 높임 | 87460_djvu.txt 줄 30378–30380 | |
| 1294년 | Karakorum | 재정 관리들에게 명하고 형 카말라(「کلا」)에게 아버지 유산의 몫을 온전히 주었으며, 카라코룸(「قوروم」) 쪽 칸의 오르도 지역으로 (보냄) | 87460_djvu.txt 줄 30423–30425 |
| 1298년 | 잔치와 향락·술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적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취해 의식이 없었음. 행위자는 31017행의 바라크의 아들(두아)로 짐작 | 87460_djvu.txt 줄 31101–31103 | |
| 1298년 | 카안이 그를 죽이지 말고 데리고 있으라 명했고, 패한 군사들은 카안에게 갔다 | 87460_djvu.txt 줄 31158–31160 | |
| 1299년 | 형(맏형) 체케가 군을 모아 큰 천호(هزاره)와 맞붙어 격파, 천호 하나가 그의 손에 떨어짐 | 87460_djvu.txt 줄 10200–10202 | |
| 1299년 | 러시아(اوروس) 출신 병사가 부상을 입히자 노가이가 「나는 노가이다」라 밝히고 (…) 칸의 어좌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함(문장 일부 파손) | 87460_djvu.txt 줄 10236–10238 | |
| 1301년 | 카이두에게 더 가까운 쪽으로 출발해 카이두에게 이르렀다는 대목 | 87460_djvu.txt 줄 31443–31445 | |
| 1301년 | 카이두의 군을 패주시켰다는 대목(멀리 있던 이들은 며칠 뒤) | 87460_djvu.txt 줄 31488–31490 | |
| 1307년 | 706년 표기. 테무르 카안이 죽은 뒤 쿨룩 카안이 옥좌에 올라 4년 동안 재위함 | 87460_djvu.txt 줄 19580–19582 | |
| — | Tus | (주어 판독 불가한 호라산 총독이) 투스를 거처로 삼고 건설을 시작, 샤라프(…)를 잡아 결박했고 재상직을 「روغدی」에게 줌 | 87460_djvu.txt 줄 6231–6233 |
| — | 아르군이 쾨르귀즈를 데려오고 그 자리를 대신해 호라산에 이르렀으며, 그 공백기에 혼란(بولغاق)이 있었다는 대목 | 87460_djvu.txt 줄 14043–14045 | |
| — | Bukhara | 알구가 마수드를 우대하고 자기 나라의 디완 장관(صاحب دیوان)으로 삼아 부하라로 보내 세금(「یاسامیشی」)을 거두게 함. 그는 가서 백성에게서 재물을 거둠 | 87460_djvu.txt 줄 22484–22488 |
| — | 카안이 그에게 사면(سیورغامیشی)을 내리고 안전 문서와 칼을 보내자, 그는 이를 믿고 성채에서 (버팀)함 | 87460_djvu.txt 줄 26809–26811 | |
| — | Istanbul | (룸 술탄이) 이스탄불에 이르자 그를 베르케 앞으로 데려감 | 87460_djvu.txt 줄 28393–283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