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操가 柳城에서 돌아온 뒤 公孫康이 袁尙·袁熙·速僕丸 등을 베어 목을 보냄 (삼국지(三國志) 정사 魏書 武帝紀 (卷01) 建安12년)
조조가 오환을 치려 하자 장수들은 유비가 유표에게 허 습격을 권할까 염려했으나 곽가가 '오랑캐는 먼 곳을 믿고 방비가 없으니 갑자기 치면 격파할 수 있다' 하여 강행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56, 207년))
조조가 전주를 길잡이로 서무산에 올라 산을 깎고 계곡을 메워 500여 리를 개척해 백단·평강·선비 정을 지나 유성을 겨냥 — 200리 앞에서 오환이 알고 답돈 등이 수만 기로 맞섬, 8월 조조가 백랑산에 올라 (자치통감 資治通鑑 卷065 (원문 단락 #5259, 2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