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삼대실록: 정사 사료. 다루는 해 858년 ~ 887년, 사건 9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858년 ~ 887년 |
| 사건 수 | 사건 90건 · 지도에 놓은 89건 |
| 저자 | 藤原時平 등 (901 칙찬) |
| 원제 | 日本三代實錄 |
지역 분포: 일본 88 · 중국 1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858년 | 平安京 | 문덕천황이 8월 27일 냉연원 신성전에서 붕어. 근위 장수들이 황태자 숙소를 지키고 신새·보검 등을 황태자에게 넘김 | 卷第一 天安2年8月 (원문 1.4) |
| 858년 | 平安京 | 11월 7일 청화천황(9세)이 대극전에서 즉위하고 조(詔)를 선포함 | 卷第一 天安2年11月七日 (원문 1.62) |
| 859년 | 能登 | 능등국이 역마로 보고. 발해국 입근사 일행 104명이 주수군에 도착 | 卷第二 貞觀元年1月廿二日 (원문 2.20) |
| 859년 | 加賀 | 발해 사신이 능등국에 도착하자 조(詔)로 가하국의 편한 곳에 안치하도록 옮김 | 卷第二 貞觀元年2月四日 (원문 2.30) |
| 860년 | 富士郡 | 5월 5일 준하국이 보고: 부사산 위에 오색 구름이 보임 | 卷第四 貞觀2年5月五日 (원문 4.89) |
| 860년 | 平安京 | 비바람이 그치지 않아 도성 동서 두 하천이 범람해 사람과 말이 다니지 못하고, 해안 여러 나라에서 조수가 넘쳐 사람·가축 피해 | 卷第四 貞觀2年十五日 (원문 4.179) |
| 861년 | 出雲国 | 1월 20일 출운국이 보고: 발해국 사신 이거정 등 105명이 은기국을 거쳐 도근군에 도착 | 卷第五 貞觀3年1月廿日 (원문 5.20) |
| 861년 | 武藏國 | 흉악한 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도적이 산에 가득하다 하여 무장국 모든 군에 검비위사 1인씩 둠 | 卷第五 貞觀3年十六日 (원문 5.242) |
| 862년 | 備前 | 해적이 무리지어 오가는 사람을 죽이고 물자를 빼앗음. 비전국 관미 80곡을 실은 배가 습격당해 백성 11명 피살. 산양·남해도 13개 국에 인부를 내어 해적 추포를 명함 | 卷第六 貞觀4年廿日 (원문 6.132) |
| 863년 | 平安京 | 5월 20일 신천원에서 어령회를 엶. 숭도천황·이예친왕 등 억울하게 죽은 어령을 달래는 법회로, 동원(苑)의 4문을 열어 도성 사람이 구경하게 함 | 卷第七 貞觀5年5月廿日 (원문 7.136) |
| 863년 | 越中 | 6월 17일 월중·월후 등에서 큰 지진. 골짜기와 언덕이 자리를 바꾸고 물이 솟아 가옥이 무너지고 압사자가 많았으며 이후 매일 흔들림 | 卷第七 貞觀5年6月十七日 (원문 7.152) |
| 863년 | 丹後 | 단후국이 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세라국인 54명이 죽야군에 표착. 인번국에도 신라인 57명이 도착하여 양식을 주어 돌려보냄 | 卷第七 貞觀5年十七日 (원문 7.292) |
| 864년 | 石見 | 지난해 신라인 30여 명이 석견국 미내군 해안에 표착(사망 10여, 생존 24). 조(詔)로 양식을 주어 돌려보냄 | 卷第八 貞觀6年十七日 (원문 8.44) |
| 864년 | 富士郡 | 5월 25일 준하국 보고: 부사산이 크게 불을 뿜어 1~2리를 태우고 불꽃 높이 20여 장, 천둥 같은 소리와 지진 3회, 열흘 넘게 불이 안 꺼짐. 용암이 본서수해(本栖水海)를 메워 불길이 갑비국 경계에 닿음(貞觀 대분화) | 卷第八 貞觀6年5月廿五日 (원문 8.116) |
| 864년 | 甲斐 | 7월 17일 갑비국 보고: 준하국 부사산에서 갑자기 불이 나 본서·□ 두 호수를 메우고 물이 끓어 물고기가 죽고 백성 집이 호수와 함께 묻힘. 하구해(河口海)로도 불길이 향함 | 卷第九 貞觀6年7月十七日 (원문 9.22) |
| 864년 | 阿蘇市 | 12월 26일 대재부 보고: 지난 10월 3일 밤 아소군 건반룡명신의 영지(靈池)가 소리를 내며 물이 솟구쳐 흩뿌려졌고 비매신 봉우리의 석신 둘이 무너짐. 거북점은 물 역병의 조짐이라 함 | 卷第九 貞觀6年12月廿六日 (원문 9.138) |
| 865년 | 大宰府 | 대재부 보고: 당(唐) 상인 이연효 등 63명이 배 한 척으로 해안에 도착. 홍려관에 안치하고 예에 따라 공급하게 함 | 卷第十一 貞觀7年廿七日 (원문 11.47) |
| 865년 | 甲斐 | 12월 9일 갑비국 팔대군에 천간(淺間) 명신의 사당을 세워 관사(官社)로 올리고 축·네기를 둠. 부사산 서쪽 봉우리 분화와 8대군 재변의 탁선에 따른 조치 | 卷第十一 貞觀7年12月九日 (원문 11.161) |
| 866년 | 平安京 | 윤3월 22일 응천문 화재 때문에 백관을 회창문 앞에 모음. 숭복사 승려 20명에게 대반야경을 7일간 읽게 하고, 범석사 승려 10명에게 사천왕비법을 7일간 닦게 하여 재변을 없애려 함. (응천문과 동서 누관은 윤3월 10일 밤 소실) | 卷第十二 貞觀8年閏3月廿二日 (원문 12.94) |
| 866년 | 大宰府 | 4월 17일 음양료가 '이웃 나라 병사가 엿볼 것'이라 하여 대재부에 경고(警固)를 명하고, 당인이 도성에 마음대로 들어온 것을 부젠·나가토 국사에게 질책 | 卷第十二 貞觀8年4月十七日 (원문 12.120) |
| 866년 | 肥前 | 7월 15일 대재부 역마 보고: 비전국 기육군 사람이 고발하기를, 산춘영이 신라인 진빈장과 함께 신라에 건너가 병기 제조술을 익히고 돌아와 대마도를 치려 한다고 함(공모자 명단과 사수 45명 명부 첨부) | 卷第十三 貞觀8年7月十五日 (원문 13.46) |
| 866년 | 平安京 | 8월 3일 좌경 사람 대택응취가 대납언 반선남과 우위문좌 반중용이 공모해 응천문에 불을 질렀다고 고발(응천문의 변) | 卷第十三 貞觀8年8月三日 (원문 13.58) |
| 866년 | 平安京 | 8월 19일 칙으로 태정대신(후지와라 요시후사)에게 천하의 정치를 대행하도록 함(섭정의 시작) | 卷第十三 貞觀8年8月十九日 (원문 13.74) |
| 866년 | 出雲国 | 11월 17일 조(勅): 괴이한 일이 잦고 점괘가 '신라 적병이 틈을 엿본다'고 하여 능등·인번·백기·출운·석견·은기·장문·대재부 국부에 폐백을 올려 진호하고 건아·정병을 훈련시키게 함 | 卷第十三 貞觀8年11月十七日 (원문 13.152) |
| 867년 | 平安京 | 이 해 안팎이 궁핍해 백성이 굶주리고 특히 기내가 심함. 도적이 무리 지어 길을 막고 약탈·방화하므로 국사에게 오가작통(보)을 맺어 감찰하게 함 | 卷第十四 貞觀9年十三日 (원문 14.44) |
| 867년 | 豊後 | 풍후국에 화남·화매 두 신에게 진사(鎭謝)하고 대반야경을 읽게 함. 삼지(三池)가 진동한 괴변 때문 판정 보류 | 卷第十四 貞觀9年三日 (원문 14.80) |
| 867년 | 伊豫 | 이예국 궁기촌에 해적이 떼 지어 약탈하여 공사 바닷길이 끊김. 섭진·화천·산양·남해도 여러 나라가 협력하여 추포하라고 명함 | 卷第十四 貞觀9年十日 (원문 14.236) |
| 868년 | 出羽 | 출우국 보고: 포해군 월산·대물기 두 신사 앞에 돌 화살촉 6개가 비처럼 내림 | 卷第十五 貞觀10年十五日 (원문 15.68) |
| 868년 | 播磨 | 7월 15일 파마국 보고: 이달 8일 큰 지진으로 여러 군의 관사와 정액사 탑당이 모두 무너짐(貞觀 10년 파마 지진) | 卷第十五 貞觀10年7月十五日 (원문 15.126) |
| 869년 | 平安京 | 2월 1일 천황이 임헌하여 정명친왕(후의 양성천황)을 황태자로 세우고 책문을 읽음 | 卷第十六 貞觀11年2月 (원문 16.26) |
| 869년 | 平安京 | 4월 13일 정관격(貞觀格) 편찬을 마치고 대납언 후지와라 우지무네 등이 궐에 바침 | 卷第十六 貞觀11年4月十三日 (원문 16.82) |
| 869년 | 多賀城 | 5월 26일 육오국에 큰 지진. 하늘이 낮처럼 빛나고 성곽·창고·문루가 무너지고, 바다가 울부짖으며 해일이 성 아래까지 밀려와 익사자 천여 명(貞觀 지진·쓰나미) | 卷第十六 貞觀11年5月廿六日 (원문 16.86) |
| 869년 | 博多 | 6월 15일 대재부 보고: 지난달 22일 밤 신라 해적이 배 두 척으로 박다진에 와 풍전국 연공 견·솜을 약탈하고 달아남. 군을 보내 추격했으나 잡지 못함 | 卷第十六 貞觀11年6月十五日 (원문 16.90) |
| 869년 | 肥後国 | 7월 14일 비후국 큰 비바람과 해일로 6개 군이 물에 잠기고 사람·가축 압사, 관물 절반 이상 유실 | 卷第十六 貞觀11年7月十四日 (원문 16.112) |
| 869년 | 大宰府 | 12월 17일 지난여름 신라 해적의 공물 약탈에 이어 큰 새가 대재부 청사·병고에 모인 괴변. 신기관·음양료가 이웃 나라 병란을 점치자 오기칠도 여러 나라에 폐백을 올리게 함 | 卷第十六 貞觀11年12月十七日 (원문 16.220) |
| 869년 | 大宰府 | 12월 28일 우근위소장 사카노우에 다키모리를 대재부에 보내 진호·경고를 맡김. 박다는 이웃 나라 배가 모이는 나루이므로 홍려관 근처에 통령 1인·선사 40인·갑주 40벌을 두자고 상주 | 卷第十六 貞觀11年12月廿八日 (원문 16.232) |
| 870년 | 對馬國 | 2월 12일 대재부 보고: 대마도 사람 복부을시마려가 신라에 붙잡혔다가 탈출해, 신라가 큰 배를 짓고 병사를 훈련해 대마도를 치려 한다고 증언. 조(勅)로 연해 군에 경계를 명함 | 卷第十七 貞觀12年2月十二日 (원문 17.36) |
| 870년 | 肥前 | 6월 대재부 보고: 비전국 저도군 병고가 진동하고 북이 두 번 울림. 점으로 이웃 병란을 경계하라 하여 축전·비전·일기·대마에 대비를 명함. 붙잡아 둔 신라인 윤청 등 30명 중 7명이 도주 | 卷第十八 貞觀12年6月十三日 (원문 18.50) |
| 870년 | 對馬國 | 대마도 보고: 신라와 가까워 늘 침탈을 당하고 활쏘기 무기가 있어도 쓸 사람이 없다 하여 노사(弩師) 1인 임용을 요청, 대재부에 적임자를 뽑아 항례로 두게 함 | 卷第十八 貞觀12年廿八日 (원문 18.102) |
| 870년 | 大宰府 | 11월 13일 축후 권사생 사에키 마쓰구가 신라국 첩을 바치며, 대재소이 후지와라 모토리마로가 신라왕과 통모해 나라를 해치려 한다고 고발. 사에키를 비위사에 가둠 | 卷第十八 貞觀12年十三日 (원문 18.136) |
| 870년 | 上総 | 12월 2일 태정관이 상총국사에게 부(符)를 내림: 흩어져 사는 이종(夷種) 중 일부가 불을 놓고 약탈하므로 단속하고, 귀순한 자는 우대하되 따르지 않는 자는 오지로 보내라 | 卷第十八 貞觀12年12月 (원문 18.154) |
| 871년 | 出羽 | 5월 16일 출우국 보고: 포해군 산 위 대물기신사 산에서 4월 8일 불이 나 흙·돌을 태우고 천둥 같은 소리, 강이 청흑색 흙탕이 되어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논이 유실됨(鳥海山 분화) | 卷第十九 貞觀13年5月十六日 (원문 19.96) |
| 871년 | 平安京 | 윤8월 7일 천둥과 큰비로 강이 갑자기 넘쳐 도성의 길·다리가 휩쓸리고 집이 무너짐. 사자를 보내 신사에 폐백을 올려 비를 멈추게 빎 | 卷第二十 貞觀13年閏8月七日 (원문 20.58) |
| 871년 | 平安京 | 9월 28일 태황태후 후지와라 준시(문덕천황의 어머니)가 붕어 | 卷第二十 貞觀13年9月廿八日 (원문 20.80) |
| 871년 | 平安京 | 12월 14일 음양료가 내년에 천행(역병)이 있을 것이라 하고, 노인도 겨울 꽃이 핀 해는 천하 대역병이라 하여 오기칠도 여러 나라에 폐백·전경을 명함 | 卷第二十 貞觀13年12月十四日 (원문 20.137) |
| 872년 | 平安京 | 5월 24일 발해 대사 양성규가 사사로운 선물을 천황·황태자에게 바치기를 청해 허락됨. 같은 날 칙으로 곡연을 베풀고 어의를 내림(발해 사신 접대) | 卷第廿一 貞觀14年5月廿四日 (원문 21.98) |
| 872년 | 平安京 | 9월 2일 태정대신 후지와라 요시후사가 동일조제에서 69세로 사망 | 卷第廿二 貞觀14年9月二日 (원문 22.54) |
| 873년 | 甑島郡 | 대재부 보고: 3월 11일 정체불명의 배 두 척 60명이 살마국 증도군에 표착. 우두머리 최종좌는 발해인이라 했으나 신라인이 거짓칭하는 것으로 의심, 한 척은 도망. 칙으로 심문하게 함 | 卷第廿三 貞觀15年廿七日 (원문 23.111) |
| 873년 | 肥後国 | 대재부 역마 보고: 발해인 최종좌 등이 비후국 천초군에 표착. 당통사 장건충이 심문해 발해의 입당사로 확인되어 의복·양식을 주고 선린의 사신으로 대접하게 함 | 卷第廿四 貞觀15年八日 (원문 24.18) |
| 873년 | 陸奧 | 육오국 보고: 부이(俘夷)가 국내에 가득해 걸핏하면 반란을 일으켜 관리·백성이 공포에 떪. 무장국 예에 따라 오대보살상을 국분사에 안치하게 허락 | 卷第廿四 貞觀15年12月七日 (원문 24.112) |
| 873년 | 對馬國 | 12월 22일 대재부 보고: 지난 9월 25일 신라인 32명이 배 한 척으로 대마도에 표착, 홍려관에 가둠. 칙으로 신라는 흉독을 못 버렸으니 철저히 조사 후 돌려보내게 함 | 卷第廿四 貞觀15年12月廿二日 (원문 24.127) |
| 874년 | 薩摩国 | 7월 2일 대재부 보고: 살마국 개문신 산꼭대기에서 불이 나 연기가 하늘을 덮고 모래가 비처럼 내리며 백리 밖까지 진동음. 신에게 봉호 20호를 바침(開聞岳 분화) | 卷第廿六 貞觀16年7月 (원문 26.2) |
| 874년 | 松浦 | 7월 18일 대재부 보고: 당 상인 최급 등 46명이 6월 3일 비전국 송포군 해안에 도착. 귀화인 예에 따라 안치·공급하게 함 | 卷第廿六 貞觀16年7月十八日 (원문 26.12) |
| 875년 | 平安京 | 1월 28일 밤 냉연원 화재로 건물 54동이 타고 비각(秘閣) 소장 도서·문서가 재가 됨 | 卷第廿七 貞觀17年1月廿八日 (원문 27.26) |
| 875년 | 平安京 | 4월 28일 묘시에 동북쪽에 붉은 빛 혜성(원문 「白彗…其色赤」)이 나타나 광망이 생기고, 5월 2일에는 길이 1장 남짓. 같은 4월 28일 천황이 처음 사기를 읽기 시작 | 卷第廿七 貞觀17年4月廿八日 (원문 27.106) |
| 875년 | 下総 | 하총수 분야노 간라마로가 역마로 보고: 부수(俘囚)가 반란해 관사를 불태우고 양민을 죽임. 칙부로 무장·상총·상륙·하야 4국이 각 300명 군사를 내어 합세하여 추토하게 함 | 卷第廿七 貞觀17年十日 (원문 27.112) |
| 875년 | 秋田 | 출우국 보고: 도도(渡嶋) 황적이 반란해 수군 80척으로 추전·포해 두 군 백성 21명을 죽이고 약탈. 칙으로 목재(牧宰)가 토평하게 함 | 卷第廿七 貞觀17年十六日 (원문 27.262) |
| 876년 | 平安京 | 4월 11일 전 단파수 안배방상·가사 홍흥을 불놓았다는 혐의로 추금(대극전 화재의 조사) | 卷第廿八 貞觀18年4月 (원문 28.76) |
| 876년 | 博多 | 8월 3일 대재부 보고: 지난 7월 14일 당 상인 양청 등 31명이 배 한 척으로 황진(荒津) 해안에 도착. 귀화인 예에 따라 안치·공급하게 함 | 卷第廿九 貞觀18年8月三日 (원문 29.64) |
| 876년 | 平安京 | 11월 29일 천황(청화)이 황태자(양성)에게 양위하고, 우대신 후지와라 모토쓰네에게 어린 군주를 보필해 정치를 대행하게 함 | 卷第廿九 貞觀18年11月廿九日 (원문 29.132) |
| 877년 | 平安京 | 1월 3일 양성천황이 대극전이 아직 없어 풍락전에서 즉위하고 조(詔)를 선포 | 卷第三十 元慶元年1月 (원문 30.32) |
| 877년 | 平安京 | 4월 9일 사시에 대극전 재건을 시작. 비탄 목수 등과 친왕·공경이 팔성원에서 행사 대부와 공인을 대접 | 卷第卅一 元慶元年4月九日 (원문 31.12) |
| 877년 | 出雲国 | 발해국 사신 양중원 등이 출운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왕의 계(啓)와 신물은 받지 않고 돌려보냈고, 대사가 바치려는 대모 술잔도 받지 않음 | 卷第卅一 元慶元年廿五日 (원문 31.76) |
| 877년 | 筑前 | 8월 22일 대재부 보고: 지난 7월 25일 당 상인 최탁 등 63명이 당 태주에서 일본 사절 다안강 등을 싣고 와 축전국에 도착. 예에 따라 안치·공급하게 함 | 卷第卅二 元慶元年8月廿二日 (원문 32.42) |
| 878년 | 秋田 | 3월 29일 출우수 후지와라 오키요가 역마로 보고: 이부(夷俘)가 반란해 3월 15일 추전성과 군원 및 주변 민가를 불태움(元慶의 난). 칙으로 군을 가려 요충을 막고, 부족하면 육오국에 구원을 요청하게 함 | 卷第卅三 元慶2年3月廿九日 (원문 33.76) |
| 878년 | 秋田 | 출우수 보고: 도적이 더욱 치성해 600명을 내어 야대 애구를 지키게 했으나 소산(焼山)에서 적 천여 명과 마주쳐 5백여 명이 달아나고 성하 촌락이 불탐. 칙으로 상야·하야 각 1천 병을 내고 육오국도 구원하게 함 | 卷第卅三 元慶2年廿八日 (원문 33.108) |
| 878년 | 秋田 | 5월 5일 육오수 미나모토 야스시가 보고: 출우국에 2,000명을 파견했고 다시 500명을 청받아 보냄. 자국 이(夷)의 동요에 대비해 원병 2,000명을 요청하나 칙으로 양식 낭비를 우려해 방편으로 노역을 줄이라 함 | 卷第卅三 元慶2年5月五日 (원문 33.118) |
| 878년 | 秋田 | 7월 10일 출우권수 우중변 후지와라 야스노리가 입국해 군사 계책을 세움. 상야 병 600여 명을 추전천 남쪽에 주둔시켜 북쪽의 적을 막고, 적지 12촌과 귀순 3촌을 구분해 보고 | 卷第卅四 元慶2年7月十日 (원문 34.10) |
| 878년 | 相模国 | 9월 29일 밤 관동 여러 나라에 큰 지진으로 땅이 갈라짐. 상모·무장이 가장 심해 공사 건물이 온전한 것이 없고, 압사자를 헤아릴 수 없으며 5~6일 흔들림이 계속됨 | 卷第卅四 元慶2年9月廿九日 (원문 34.80) |
| 878년 | 秋田 | 10월 12일 출우국 보고: 8월 29일 역적 300여 명이 성 아래에 와 항복을 청함. 육오권개 사카노우에 요시카게가 2천 병으로 도착, 진수장군 오노 하루카제 등 470명이 추전영 북쪽에 도착 | 卷第卅四 元慶2年10月十二日 (원문 34.93) |
| 879년 | 秋田 | 3월 2일 보칙이 상주: 정월 13일 칙부대로 토벌하려 했으나 병 1,800여 명(상야·하야 각 800, 육오 200)을 두고 진퇴가 어려움. 적이 원한을 호소하는 10여 조의 글을 올려 이치가 있어 법금을 풀고 달램 | 卷第卅五 元慶3年3月 (원문 35.56) |
| 879년 | 丹後 | 3월 13일 단후국 보고: 길이 6장·폭 1장 5척의 이국 선박 한 척이 죽야군에 표착했으나 모두 부서져 도구도 없음 | 卷第卅五 元慶3年3月十三日 (원문 35.64) |
| 879년 | 平安京 | 10월 8일 대극전 낙성. 우대신이 조당원 함장당에서 낙성연(釁落)을 열고 작사에 참여한 사위 이하 공인과 비탄 목수까지 대접 | 卷第卅六 元慶3年10月八日 (원문 36.76) |
| 880년 | 大宰府 | 서국에서 신라 흉적이 침입한다는 유언이 돌아 좌근위소장 사카노우에 다키모리를 대재소이로 보냈으나 근위들이 폭행하는 등 소란이 일어, 후임 후지와라 후사오는 소란을 이유로 비후수로 옮김 | 卷第卅七 元慶4年廿三日 (원문 37.118) |
| 880년 | 平安京 | 12월 5일 태상천황(청화)이 붕어했음을 내외에 알림. 유조로 거애를 하지 않고 심상하라 하며 제위(諸衛)를 엄중히 경계시키고 관(關)을 닫음 | 卷第卅八 元慶4年12月五日 (원문 38.104) |
| 880년 | 平安京 | 12월 6일 자시 큰 지진, 밤부터 아침까지 16번. 대극전 서북 모퉁이 돌단이 갈라지고 궁성 담과 도성 집들이 많이 무너짐 | 卷第卅八 元慶4年12月六日 (원문 38.106) |
| 882년 | 加賀 | 11월 27일 가하국이 역마로 보고: 이달 14일 발해 입근사 배정 등 105명이 도착 | 卷第卌二 元慶6年11月廿七日 (원문 42.106) |
| 883년 | 上総 | 2월 9일 상총개 후지와라 마사노리가 보고: 시원군 부수 30여 명(40여 명)이 반란해 관물 약탈, 군 1,000명을 내어 추토. 칙으로 '도둑 40명에 우격(羽檄)을 쓸 일이 아니다' 하며 관부로 인부를 보내 추포하게 함 | 卷第卌三 元慶7年2月九日 (원문 43.38) |
| 883년 | 平安京 | 5월 2일 발해 대사 배정이 조당에서 왕계와 신물을 바침. 3일 풍락전에서 사연 | 卷第卌三 元慶7年5月二日 (원문 43.104) |
| 884년 | 平安京 | 2월 4일 양성천황이 몸이 아프다며 태정대신에게 손위(遜位)를 청하는 친필을 보내고 이조원으로 옮겨 양위 | 卷第卌四 元慶8年2月 (원문 44.160) |
| 884년 | 平安京 | 2월 23일 광효천황이 대극전에서 즉위하고 조(詔)를 선포 | 卷第卌五 元慶8年2月廿三日 (원문 45.26) |
| 884년 | 平安京 | 3월 15일 밤 큰 천둥·비로 상주사 탑에 벼락이 쳐 5층에서 불이 나 강당·금당·종루·경장·보랑·중문이 순식간에 전소 | 卷第卌五 元慶8年3月十五日 (원문 45.55) |
| 884년 | 秋田 | 9월 29일 출우국 보고: 6월 26일 추전성에 뇌우로 어두워지며 돌 화살촉 23개가 내렸고 7월 2일 포해군 해변에도 내림. 음양료가 '병적·역병의 우려'라 점침 | 卷第卌六 元慶8年9月廿九日 (원문 46.104) |
| 885년 | 大宰府 | 8월 1일 음양료가 '북쪽 변방과 서쪽 변경에 병적이 있을 것'이라 하여 북륙도 여러 나라와 장문국·대재부에 경고(警固)를 명함 | 卷第卌八 仁和元年8月 (원문 48.16) |
| 885년 | 大宰府 | 대당 상고인이 대재부에 도착. 왕신가 사자와 관내 관민이 비싼 값으로 다투어 물건을 사는 것을 금하도록 부사에 명함 | 卷第卌八 仁和元年10月廿日 (원문 48.89) |
| 886년 | 石清水八幡宮 | 6월 7일 석청수 팔번대보살 누각이 울린 괴변으로 육오·출우 두 국과 대재부에 경고(警固)를 명함 | 卷第卌九 仁和2年6月 (원문 49.134) |
| 886년 | 平安京 | 7월 7일 5월부터의 장마 끝에 큰 비바람과 홍수. 가모·송미 등 6사에 사자를 보내 폐백을 올려 비를 멈추도록 빎 | 卷第卌九 仁和2年7月七日 (원문 49.190) |
| 887년 | 平安京 | 7월 30일 신시 큰 지진이 수 시각 계속. 천황이 인수전에서 자신전 남쪽 뜰로 피신. 도성과 오기칠도에 큰 피해, 바다 조수가 육지로 올라와 익사자가 많고 섭진국이 가장 심함(仁和 지진) | 卷第五十 仁和3年7月卅日 (원문 50.151) |
| 887년 | 平安京 | 8월 20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큰 비바람으로 나무가 뽑히고 집이 쓰러져 압사자가 많음. 가모강·가도노강이 범람해 인마가 다닐 수 없음 | 卷第五十 仁和3年8月廿日 (원문 50.183) |
| 887년 | 平安京 | 8월 26일 천황이 병이 중해 제7황자(후의 우다천황)를 황태자로 세우고, 같은 날 사시에 인수전에서 58세로 붕어 | 卷第五十 仁和3年8月廿六日 (원문 50.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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