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e

지역: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 좌표: 41.890, 12.491 · 사건 477건

사건 목록

해사료내용
기원전 75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로물루스가 쟁기로 도시 경계의 고랑을 깊이 파 도시를 세움 전승
기원전 750년리비우스 로마사로물루스가 적장에게서 빼앗은 무구를 목동들이 신성시하는 참나무에 걸고 유피테르 신전 터를 표시함 전승
기원전 75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건국 넷째 달에 사비니 여인 약탈이 벌어짐 전승
기원전 74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사비니가 타티우스를 장군으로 세워 로마로 진군 전승
기원전 715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누마가 로마에 이중문 전쟁의 문(야누스 신전)을 세움 전승
기원전 509년리비우스 로마사켄투리아 민회에서 집정관 두 명이 선출됨; 타르퀴니우스는 성문이 닫혀 입성 못 하고 추방 결의, 왕의 아들들은 진영에서 쫓겨남 전승
기원전 50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루크레티아 사건을 계기로 민중이 반란을 일으킴 전승
기원전 50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포르세나가 로마를 에워싸자 기근이 닥치고 다른 투스키군도 침입 전승
기원전 50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포르세나가 점령지 반환·포로 송환·탈주자 수용 조건으로 전쟁을 끝냄 전승
기원전 451년리비우스 로마사아테네에 다녀온 위원 세 명이 먼 사절에 대한 보상으로 자리에 앉음 — 그리스 법에 익숙한 이들이라는 이유 전승
기원전 39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밀루스가 분노해 도시를 떠나 망명하기로 결심
기원전 390년리비우스 로마사갈리아군이 시내에서 도시를 파괴하려는데 모두가 그 열의에 찬 것은 아니었음 전승
기원전 390년리비우스 로마사갈리아군은 열려 있는 시가는 점령했으나 소수 방어군이 성채와 카피톨리움에서 격퇴함 전승
기원전 390년리비우스 로마사포위와 전쟁 최대의 해악은 양 진영을 덮친 기근이었고 갈리아군에는 역병도 번짐 전승
기원전 39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전투 사흘째에 브렌누스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도착
기원전 39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갈리아인이 카피톨 앞에 한가히 앉아 포위가 일곱째 달에 접어듦
기원전 39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야만인이 일곱 달 동안 점령했던 로마가 해방됨
기원전 38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승리로 카밀루스가 개선식을 받아 인기를 더함
기원전 365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밀루스가 천수를 다하고 사망
기원전 359년리비우스 로마사티부르군이 한밤 고요한 시각에 로마시를 향해 진군함
기원전 356년리비우스 로마사마르키우스 루틸루스가 평민 출신 첫 독재관으로 지명됨
기원전 295년리비우스 로마사파비우스가 데키우스 군에게 에트루리아를 맡기고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돌아와 갈리아·에트루리아·삼니움에 대한 개선식을 치름
기원전 222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원로원이 마르켈루스 단독의 개선식을 결의, 행렬이 화려했음
기원전 217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파비우스가 독재관에 임명됨
기원전 217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민중이 미누키우스에게 독재관과 동등한 권한을 부여
기원전 216년리비우스 로마사보고로는 집정관 둘과 집정관군 둘이 모두 사라져 로마는 충격에 빠짐
기원전 211년리비우스 로마사풀비우스 플라쿠스가 카페나 문을 지나 시내를 가로질러 콜리나 문 밖에 진영을 침
기원전 21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적들의 반대로 마르켈루스가 개선식 대신 소규모 의식을 받아들임
기원전 211년폴리비오스 역사한니발의 접근 소식에 로마가 공황
기원전 211년폴리비오스 역사한니발이 로마 10스타디온 앞까지 와서 되돌아감
기원전 207년리비우스 로마사한 집정관은 전차를 타도 진짜 개선은 말을 탄 다른 집정관(네로)의 것이라는 평
기원전 201년리비우스 로마사시팍스가 개선식 직전 티부르에서 죽었으나 스키피오 개선의 영광은 줄지 않음
기원전 200년리비우스 로마사카르타고와 강화한 지 몇 달 안에 필리포스 왕과의 전쟁이 시작됨
기원전 19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민중이 서른이 안 된 플라미니누스를 집정관으로 선출
기원전 196년폴리비오스 역사로마에서 필리포스와의 조약이 확정됨
기원전 19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토가 개선식을 치름
기원전 19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개선 행렬에 그리스 투구·마케도니아 방패 등 전리품이 전시됨
기원전 187년리비우스 로마사스키피오가 자마에서 이긴 기념일에 호민관과 시민 앞에서 연설함
기원전 186년리비우스 로마사바쿠스 제의 사건에서 캄파니아인 미니우스 케리니우스를 쇠사슬로 아르데아에 보내 감시하게 함
기원전 18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집정관 10년 뒤 카토가 감찰관직에 출마
기원전 172년리비우스 로마사원로원이 페르세우스를 공적(公敵)으로 선언하기로 결정함
기원전 16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집정관 후보로 나서 선출됨
기원전 167년리비우스 로마사아니키우스의 일리리아 개선식에서 병사들이 더 즐겁게 행진하고 장군을 찬양하는 노래가 많았음
기원전 167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아이밀리우스의 개선 행진이 사흘로 배정됨
기원전 128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히르카노스가 로마 원로원에 사절을 보내 우호 조약을 새롭게 함
기원전 12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민중이 법을 채택하고 기사 계급에서 배심원을 뽑는 권한을 카이우스에게 맡김
기원전 12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원로원이 집정관 오피미우스에게 도시를 구하라고 명령
기원전 12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이우스가 도망치다 티베리스 나무다리에서 추격자와 맞서 친구들이 막아 줌
기원전 10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마리우스가 압도적으로 집정관에 선출되어 곧 병력을 모음
기원전 10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마리우스가 1월 초하루에 두 번째 집정관직과 개선식을 거행
기원전 10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마리우스가 구하려 했으나 포룸에 내려온 이들이 처형됨
기원전 8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피키우스가 무장 병력으로 집회 중인 집정관들을 공격
기원전 8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라가 도시로 진군한다는 소식에 원로원이 법무관 둘을 보냄
기원전 87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마리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도시로 진군해 야니쿨룸 언덕을 점령
기원전 87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친나는 호위병과 입성하고 마리우스는 추방자라며 성문 밖에 멈춤
기원전 8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킨나의 딸 코르넬리아와 혼인
기원전 82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라가 추방자를 숨겨 준 자도 사형에 처하고 처형자에게 상금을 약속
기원전 82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라가 120년 만에 독재관직을 되살려 스스로 독재관을 선포
기원전 8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라의 개선식은 왕실 전리품과 귀환 망명자들로 더욱 빛남
기원전 8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폼페이우스가 개선식을 요청했으나 술라가 반대
기원전 7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킬리키아에서 잠깐 복무한 뒤 술라 사망 소식에 레피두스의 소요를 기대하며 서둘러 로마로 귀환
기원전 7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술라 사후 루쿨루스가 코타와 함께 집정관이 됨(176올림피아드 무렵)
기원전 72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원로원이 분노해 크라수스에게 전쟁 지휘를 맡김
기원전 7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폼페이우스에게 두 번째 개선식과 집정관직이 결의됨
기원전 70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폼페이우스가 집정관 후보가 되고 크라수스가 그의 지원을 구해 동료가 됨
기원전 66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호민관 만리우스가 폼페이우스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법을 발의
기원전 6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조영관 취임 며칠 전 크라수스·술라·아우트로니우스와 원로원 습격 음모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음
기원전 65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조영관으로 포룸과 부속 회랑을 꾸미고 카피톨리움까지 임시 회랑으로 장식
기원전 6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상류층이 키케로를 집정관 후보로 내세우고 카틸리나는 낙선, 키케로·안토니우스 선출
기원전 6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귀국한 루쿨루스가 간청 끝에 개선식을 허락받음
기원전 6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토가 카틸리나 일당 처형을 놓고 원로원에서 연설함
기원전 6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틸리나가 무장 3백 명과 도시를 떠나 만리우스에게 합류
기원전 6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키케로가 렌툴루스를 감옥에 넘겨 사형 집행 명령
기원전 63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이집트 속주 획득 희망을 접고 막대한 뇌물로 대제관 선거에 출마
기원전 63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카틸리나 음모가 발각되자 엄벌론자들에게 후세의 비난을 상기시켜 집정관 당선자 실라누스가 제안을 완화하게 함
기원전 63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키케로와 안토니우스가 집정관이던 해 9월 23일 해 뜨기 직전 팔라티누스 구역에서 출생
기원전 61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폼페이우스의 개선식이 이틀에 걸쳐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컸음
기원전 6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법무관 뒤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를 배정받아 평정하고, 후임을 기다리지 않고 개선식과 집정관직을 구하러 서둘러 귀환
기원전 5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두 사람의 지지로 카이사르가 곧 집정관에 선출
기원전 5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크라수스·폼페이우스의 우정에 힘입어 카이사르가 집정관 선거에 나섬
기원전 5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비불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당선
기원전 5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장인과 사위의 후원으로 개선 기회가 많은 갈리아를 택했고, 원로원이 갈리아 코마타까지 추가로 맡김
기원전 5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클로디우스가 카토에게 키프로스 임무 외에 비잔티움 망명자 복귀까지 맡김
기원전 58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키케로의 도주가 알려지자 클로디우스가 추방 표결을 통과시킴
기원전 56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토가 배로 귀환하자 모든 관리·원로원·시민이 강가에 마중 나감
기원전 5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듬해 카토가 법무관에 선출됨
기원전 5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클로디우스 살해로 공화정이 동요하자 원로원이 폼페이우스 단독 집정관을 의결
기원전 4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며칠 뒤 카이사르가 로마에 들어와 장악
기원전 49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아리미눔 점령 뒤 로마가 카토에게 눈을 돌림
기원전 46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이사르가 이집트·폰토스·아프리카 개선식을 거행
기원전 4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여러 전쟁의 승리로 다섯 번 개선식 — 스키피오 격파 뒤 한 달에 네 번, 첫째이자 가장 화려한 것은 갈리아 개선식
기원전 4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오랫동안 어지러워진 달력을 바로잡음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로마인이 카이사르를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브루투스 일파가 카이사르 의자 뒤에 서고 틸리우스 킴베르가 청원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포룸에서 카이사르의 시신이 화장된다는 말에 카이사르의 친구 킨나가 전날의 환영 때문에 불안하고 열병 중이었는데도 직접 가 봄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루페르칼리아 축제에서 카이사르가 개선복 차림으로 연단에 앉아 달리기를 구경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안토니우스의 조사에 분노한 군중이 벤치·탁자를 모아 포룸에서 카이사르 시신을 화장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이사르가 앉자마자 음모자들이 틸리우스 킴베르의 청원을 구실로 둘러쌈
기원전 44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사면이 결의된 뒤 카시우스는 안토니우스, 브루투스는 레피두스 집에서 대접받음
기원전 4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루페르칼리아에서 집정관 안토니우스가 연단에서 거듭 왕관을 씌우자 그때마다 물리치고 카피톨리움 유피테르에게 보냄
기원전 4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자리에 앉자 공모자들이 인사하는 척 둘러서서 살해 — 시신을 티베리스에 끌어 던질 계획이었음
기원전 4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장례일을 공고하고 마르스 광장에 딸 율리아의 무덤 근처에 장작더미를 쌓아 장례를 치름
기원전 4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장례 직후 군중이 횃불을 들고 브루투스·카시우스 집으로 달려가고, 킨나를 잘못 알아보고 헬비우스 킨나를 살해
기원전 4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56세에 사망하여 신의 반열에 오름; 살해된 원로원 회의장은 폐쇄되고 3월 이데스를 부친살해일로 지정
기원전 43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3인이 합의한 뒤 3백 명을 추방 명단에 올려 처형
기원전 43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법정 연령 전에 군단을 로마 가까이에 진주시켜 집정관직을 요구하고 사절을 보냄
기원전 4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팔라티누스 구역에서 출생(대다수 사가의 설) — 폰디 출생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함
기원전 40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안토니우스가 헤롯을 동정해 그를 왕으로 세우는 일에 카이사르와 함께 나섬 — 헤롯이 로마에서 왕 칭호를 얻음
기원전 40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헤롯이 로마 원로원에서 유대 왕으로 세워짐
기원전 32년플루타르코스 영웅전카이사르가 준비를 마치자 클레오파트라를 상대로 한 전쟁이 표결됨
기원전 30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로마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선물로 병사를 얻고 곡물 보급을 구실로 남은 경쟁자를 눌러 한 사람만 따르는 체제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2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야누스 퀴리누스 신전을 세 번 닫아 평화를 세우고, 달마티아·악티움·알렉산드리아 승전으로 개선식을 치름
기원전 2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수도를 개조해 마르스 울토르 신전이 있는 포룸, 팔라티누스 아폴론 신전, 카피톨리움 유피테르 토난스 신전 등 많은 건물을 세움
기원전 17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헤롯이 이탈리아로 가 로마에서 공부한 두 아들을 데려옴
기원전 12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헤롯이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로마까지 끌고 가 독살 음모로 카이사르 앞에서 고발
기원전 12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헤롯이 로마에서 두 아들을 카이사르 앞에 고소했다가 화해시킴
기원전 1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레피두스가 살아 있는 동안은 빼앗지 못한 대제관직을 그가 죽자마자 차지함
기원전 5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안티파트로스가 헤롯의 유언장을 지니고 로마로 파견됨
기원전 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서 카이사르 앞에서 왕위를 다투고 니콜라오스가 아르켈라오스를 변호
기원전 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카이사르가 양측 말을 듣고 헤롯의 나라를 아들들에게 나눠 주고 아르켈라오스를 에트나르크(분봉왕)로 세움
기원전 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스가 왕위를 놓고 로마에서 아우구스투스 앞에서 다툼
기원전 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아우구스투스가 아르켈라오스를 왕이 아닌 영토 절반의 민족장(에트나르케스)으로 삼음
기원전 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헤롯의 영토를 아르켈라오스·안티파스·필립포스에게 나누고 살로메에게 얌니아·아스돗 등을 줌
기원전 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인민이 일시에 한마음으로 「국부」 칭호를 바치고, 원로원이 메살라를 시켜 공식 전달
기원전 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딸과 손녀 두 율리아의 방탕이 심해 둘 다 추방
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로도스에서 거의 8년을 보내고 로마로 귀환
6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아르켈라오스 10년에 형제·유대인 지도자들이 카이사르에게 고소해 비엔나로 추방됨
1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독일에서 2년 뒤 돌아와 미뤄둔 개선식을 부장들과 함께 치르고, 판노니아 족장 바토를 라벤나로 보냄
13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사망 1년 4개월 전 4월 3일 루키우스 플란쿠스·가이우스 실리우스 집정관 해에 유언장을 작성
1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호민관 권한으로 원로원을 소집해 슬픈 연설을 시작하다 깊이 한숨짓고 말을 잇지 못하는 시늉을 함
1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아우구스투스 장례를 논의하고 베스타 여사제들이 가져온 유언장이 티베리우스와 리비아를 상속인으로 지정
1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정무관 선거가 마르스 광장에서 원로원으로 넘어감
17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바루스에게 잃은 군기 회수를 기념하는 아치를 사투르누스 신전 근처에 봉헌
17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티베리우스가 원로원에 동방 소요는 게르마니쿠스의 지혜로만 가라앉힌다고 설명
1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외국 종교와 이집트·유대 의식을 금하고 의복과 제기를 불사르게 하며 유대 청년들을 풍토병 지역 속주로 보냄
2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유골이 아우구스투스 묘에 안치되는 날 도시가 통곡으로 가득
2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원로원 모임에서 티베리우스가 신중한 연설로 피소 재판을 시작
22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티베리우스가 드루수스에게 호민관 권한 부여를 청함
22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아시아 총독 실라누스가 속주민에게 착취로 고발됨
23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티베리우스 통치 9년째, 평온한 가운데 세이아누스가 부상
23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흩어져 있던 근위대를 한 진영으로 집결시킴
23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세이아누스가 환관 리그두스를 시켜 서서히 듣는 독을 드루수스에게 먹임
2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집정관 바로가 실리우스와 아내 소시아를 공격
2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크레무티우스 코르두스가 브루투스·카시우스를 칭송한 역사서로 새 죄목으로 고발됨
26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아그리피나 파멸의 첫걸음으로 사촌 클라우디아 풀크라가 도미티우스 아페르에게 고발됨
27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대화재가 카일리우스 언덕을 잿더미로 만듦
2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리비아(율리아 아우구스타)가 고령으로 사망
3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세야누스의 음모를 알고도 곁에서 떼어놓으려 그를 자신의 다섯 번째 집정관 동료로 삼음
31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세이아누스 몰락 직후 원로원에서 44개 연설 — 서문이 단편으로만 남음
31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세이아누스의 남은 자녀들까지 처벌하기로 결정
32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곡물값 폭등으로 극장에서 황제에게 거센 요구가 터짐
33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스페인 최고 부자 섹스투스 마리우스가 타르페이아 바위에서 던져짐
3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파르티아 귀족들이 왕 아르타바누스 몰래 로마에 옴
36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아그리파가 마차에서 티베리우스가 일찍 죽기를 빌다 해방노예의 고발로 사슬에 묶임
36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아벤티누스 언덕 근처 대경기장과 아벤티누스 구역이 불탐
37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가이우스가 황제가 되자 아그리파를 결박에서 풀어 필리포스의 분봉령 왕으로 세움
37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사망 소식에 사람들이 「티베리우스를 티베리스로!」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님
37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로마에 입성하자 원로원과 인민이 함께 환호하고 원로원 회의장에 난입해 티베리우스의 유언(다른 손자를 공동상속인으로 지정)을 무효화
3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12월 30일(1월 칼렌다이 3일 전) 출생
4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귀환 길에 원로원 사절이 서둘러 돌아오라 청하자 개선식을 포기하거나 미루고 생일에 오바티오(소개선식)로 입성; 넉 달 안에 살해됨
41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가이우스가 3년 8개월을 통치하고 죽자 클라우디오스가 군영에서 추대되고 아그리파가 원로원과 사이를 중재
41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가이우스가 아그리파의 연회 간청에 따라 성전 상 건립을 거두고 페트로니우스에게 편지를 씀
41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궁정 호위대장 카이레아 등이 팔라티움 경기 중 가이우스를 암살함
41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군이 클라우디우스를 진영으로 데려가 황제로 추대하고 원로원은 아그리파의 중재로 굴복함
4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정오 직후 소년들과 이야기하는 사이 카이레아가 뒤에서 칼로 내리치고 호민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 등이 가슴을 찔러 살해
4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음모자들이 접근을 막은 가운데 헤르마이움이라는 방으로 물러났다가 50세에 뜻밖에 제위에 오름
47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메살리나가 두 번 집정관을 지낸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와 루쿨루스 정원을 노림
47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로마 건국 800년, 아우구스투스 이후 64년 만의 세기 경기가 열림
48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클라우디우스 6년에 로마 건국 800년이 크게 기념되고, 이집트에 피닉스가 나타났으며 아이가이오스 바다에 큰 섬이 솟았다
4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메살리나가 죽은 직후 식탁에 앉아 「황후는 왜 안 오느냐」고 물음
4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갈리아 코마타 유력자들이 원로원 의석 허용을 요구해 논의됨
4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황제가 원로원에서 조상의 예를 들어 갈리아인 수용을 연설
4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메살리나가 실리우스와 공공연히 혼인 의식을 올림
4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메살리나가 루쿨루스 정원에서 살길을 찾아 편지를 쓰며 버팀
4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메살리나가 단검을 목에 대다 호위대 장교의 일격으로 죽음
4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원로원이 클라우디우스와 아그리피나의 혼인을 합법화하자 환호
4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혼인 당일 실라누스가 자살
4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파르티아 사절이 메헤르다테스 귀환을 청하러 원로원에 등장
4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로마로 압송된 미트리다테스가 황제 앞에서 당당히 말함
5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11세에 클라우디우스에게 입양돼 원로원 의원이 된 세네카에게 교육받음
5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팔라스의 영향으로 도미티우스(네로)의 입양이 서둘러짐
5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포로가 된 카라타쿠스가 황제 법정 앞에서 연설
5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여러 해 흉작이 이어진 곡물 부족기에 포룸 한복판에서 군중에게 욕설과 빵 조각 세례를 받음
5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10월 24일 로마 6구에서 출생 — 아버지는 집정관 당선자
53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열여섯 살 네로가 황제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
54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클라우디우스가 죽고 아그리피나의 뜻대로 네로가 황제가 됨
5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64세, 재위 14년에 사망 — 후계 정리가 끝날 때까지 죽음을 숨김
5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클라우디우스 사망이 알려지자 근위 대대로 나가 궁 계단에서 병사들에게 황제로 환호받고 가마로 병영에 실려 감
5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클라우디우스를 성대히 장사 지내고 직접 추도사를 읽은 뒤 신격화
5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10월 13일 정오 궁전 문이 열리고 네로가 부루스와 함께 근위대 앞으로 나감
5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브리타니쿠스의 죽음과 장례가 같은 밤에 치러짐
5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포파이아 사비나가 오토와의 관계로 네로와 얽힘
58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세금 징수인 탐욕에 대한 민중 요구로 간접세 폐지 여부를 고민
6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그리스식 경기를 5년마다 로마에서 열도록 제정
62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부루스가 병 또는 독으로 사망
62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네로가 옥타비아를 내쫓고 포파이아와 결혼 준비
64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낡은 건물과 좁은 거리가 싫다며 도시에 공공연히 불을 놓음
6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사고인지 방화인지 불확실한 대화재가 대경기장 쪽에서 시작
6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닷새 만에 에스퀼리누스 기슭에서 건물을 헐어 화재를 멈춤
6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폐허를 이용해 네로가 보석과 금의 새 저택을 지음
64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방화 소문을 덮으려 그리스도 신자들을 처벌
65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한 가을에 리비티나 신전 장부에 3만 명이 기록된 역병
6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네르바·베스티누스 집정관 해, 피소 음모가 퍼짐
6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밀리쿠스가 세르빌리우스 정원 문을 두드리며 중대 밀고를 하려 함
6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세네카가 유언장을 쓰려 서판을 청했으나 거절당함
65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경기 직후 포파이아가 만삭의 몸으로 네로에게 걷어차여 죽음
6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티리다테스의 로마 입성 행렬 — 포룸에 대대가 정렬한 가운데 네로가 연단 위 곡의에 앉아 왕의 청에 따라 터번을 벗겨 관을 씌움
66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네로가 트라세아 파이투스와 바레아 소라누스를 제거하려 함
66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트라세아의 마지막 장면
6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모든 군대가 등을 돌렸다는 소식에 식탁을 뒤엎고 세르빌리우스 정원으로 가 독약을 챙기고 해방노예를 오스티아로 보내 함대 준비를 명함
6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자기 몸 크기의 구덩이를 파라 명하고 단검 두 자루의 날을 살피며 주저함
6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재위를 끝낸 날이 옥타비아를 죽인 날과 같았음
6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빈덱스의 죽음에 낙담해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네로가 죽고 모두가 충성 서약을 했다는 소식에 부관 칭호를 버리고 카이사르를 칭하며 로마로 진군
68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기회가 오자 갈바의 거사에 가담했고, 황제 자리를 노려 갈바를 만찬에 초대할 때마다 호위 대대 병사 모두에게 금화를 나눠줌
69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갈바가 군대를 달래러 나가다 쿠르티우스 호수 곁에서 오토의 사주로 죽었다 (재위 7개월 7일)
69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크레모나에서 패한 비텔리우스는 속았다고 생각해 분노로 카피톨리움을 불태웠다
69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로마 시장 한복판에서 갈바가 죽고 오토가 황제가 되어 비텔리우스와 싸움
69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로마에서 사비누스가 카피톨리움을 점거했다가 비텔리우스군에게 공격받음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자식이 없어 업신여김받는다 여겨 젊은 귀족 피소를 아들이라 부르며 병영에서 입양했으나 하사금은 언급하지 않아 오토에게 기회를 줌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피살 전날 아침 제사 때 점쟁이가 암살자가 가까이 있다고 거듭 경고했으나 궁 안에 머물러 군단병 경비만 세움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73세, 재위 7개월에 살해 — 원로원이 살해된 포룸 자리의 해군 기둥 위에 동상을 세우라 했으나 베스파시아누스가 취소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피소가 떠나자마자 병영을 장악하고 궁에서 만찬 중인 갈바를 치려 했는데, 가이우스 피살 때와 네로 이탈 때 근무했던 같은 대대가 이번에도 경비 중이었음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저녁 무렵 원로원에 들어가 길에서 붙잡혀 강제로 추대됐다고 짧게 연설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나팔을 울리며 장군 외투에 검 차림으로 기치와 깃발을 앞세우고 로마에 입성, 알리아 패전일에 대제관직을 취함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작은 가마에 빵 굽는 자와 요리사 둘만 데리고 아벤티누스 언덕의 아버지 집으로 몰래 빠져나가 캄파니아로 달아나려 함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적 선봉이 궁을 수색하는 가운데 스칼라이 게모니아이에서 서서히 고문당해 죽고 갈고리로 티베리스에 끌려 던져짐
69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비텔리우스와의 전쟁에서 숙부 사비누스와 일부 병력과 함께 카피톨리움으로 피신했다가 신전이 불타자 밤새 신전지기 곁에 숨음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갈바가 두 번째 집정관직을 티투스 비니우스와 맡는 해로 저작을 시작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갈바가 피소의 손을 잡고 양자 입양 연설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1월 15일 갈바가 아폴로 신전 앞에서 제사할 때 점쟁이가 불길한 징조를 알림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근위대 진영에서 병사들이 오토를 황제로 맞이함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갈바가 쿠르티우스 호수 근처에서 죽음을 맞음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3월 14일 오토가 원로원에 국가를 맡기고 출전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케레스 경기 극장에서 오토의 죽음 소식이 전해짐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겁먹은 비텔리우스가 카이키나와 발렌스에게 출정 명령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사비누스 등이 카피톨리움에 모임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지휘관 없이 몰려든 병사들이 카피톨리움으로 돌진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내전 중 카피톨리움이 불탐 — 건국 이래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시가전을 군중이 모의전처럼 구경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근위대 진영 공격이 가장 어려운 전투
69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비텔리우스가 칼에 몰려 끌려 다니며 죽음
7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1월 1일 원로원이 지휘관들에게 감사 결의
70년타키투스 연대기·역사카피톨리움 재건을 기사 계급 루키우스 베스티누스가 맡음
71년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의 개선식이 로마에서 열려 군대가 밤부터 행렬을 준비
7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로마로 돌아와 유대 승전 개선식을 치르고 집정관을 여덟 번 더 지냄; 승전·패전 양쪽 병사의 방종과 속주 혼란을 수습
7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포룸 곁 평화 신전과 아그리피나가 시작했다가 거의 허물어진 카일리우스 언덕의 클라우디우스 신전을 새로 지음
71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아버지와 함께 개선식을 치르고 감찰관·호민관직과 일곱 번의 집정관을 공동으로 지냄
75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에서 카피톨리움, 평화의 신전, 클라우디우스 기념물, 거대한 원형경기장, 포룸을 짓거나 마무리했다
8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원형경기장을 봉헌하고 서둘러 지은 목욕장을 개관
8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재위 중의 참사: 로마의 대화재
80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재위 중의 참사: 역병
8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화재로 파괴된 많은 건물과 두 번째로 불탄 카피톨리움을 재건하고 유피테르 쿠스토스 신전·네르바 포룸 등을 세움
92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포도주는 넘치고 곡물은 모자란다며 포도 신규 식재를 금하는 포고를 냄
95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사촌 플라비우스 클레멘스를 사소한 의심으로 집정관 임기 직후 처형
96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도미티아누스가 해방노예들의 모의와 아내의 가담으로 마흔다섯 살에 죽었다
9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죽기 전날 독일에서 온 점쟁이가 번개를 풀이해 정권 교체를 예언하자 재판해 처형하고 침실로 물러남
9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음모자들이 목욕 중 칠지 만찬 중 칠지 망설이자 도미틸라의 집사 스테파누스가 조언과 협력을 제안
96년수에토니우스 황제전민중은 거의 무관심했으나 병사들은 분노해 신격화를 요구하고 암살 가담자 처벌을 끈질기게 요구
97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네르바가 「페르비움」이라 부르는 포룸(미네르바 신전이 솟은 곳)을 봉헌하고 열여섯 달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98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네르바가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고 1년 4개월 8일 재위 끝에 로마에서 죽었다
11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다키아 지휘를 투르보에게 맡기고 여론을 달래러 서둘러 로마로 감
11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사채·체납 세금을 면제하고 차용증을 트라야누스 광장에서 불태움
11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로마에서 판테온·바실리카·아우구스투스 광장 등을 복원하고 하드리아누스 다리·무덤을 짓고, 건축가 데크리아누스와 코끼리 24마리로 거상(巨像)을 옮김
135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하드리아누스가 로마에 아테나이움이라는 교양 학교를 세우고 아테네식으로 엘레우시스 비의를 도입했다
136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반대에도 케이오니우스 코모두스(아일리우스 베루스)를 입양하고 서커스 경기와 하사금을 베풂
1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아일리우스 베루스 사망 뒤 중병에 걸린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후일 피우스)를 입양하되 안니우스 베루스와 마르쿠스 안토니누스를 입양하는 조건을 붙임
1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1월 1일 감사 연설을 마친 아일리우스 베루스가 약을 마시고 그날 사망함
14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아내 파우스티나가 죽자(치세 3년) 원로원이 신격화하고 경기·신전·사제를 의결함
148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안토니누스 피우스 치세에 로마 건국 900년이 성대하게 기념되었다
16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원로원의 압력으로 통치를 맡은 마르쿠스가 동생 루키우스 베루스를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로 공동 황제로 삼음
166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루키우스가 마르쿠스도 함께 개선하자고 요구해 두 황제가 개선식을 치름(마르쿠스는 루키우스 사후 게르마니쿠스만 칭함)
166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시리아를 떠나기 싫어하며 로마로 돌아와 형과 개선식을 공유함
169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국고가 바닥난 마르쿠스가 속주·원로원에 세금을 물리지 않으려고 트라야누스 포룸에서 황실 금그릇·수정잔·비단옷·보석을 두 달간 경매로 팔았다
176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마르쿠스가 로마로 돌아와 연설 — 8아우레우스를 외치는 군중에게 8백 세스테르티우스씩 주고 45년치 국고 채무 증서를 포룸에서 소각
176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마르쿠스가 이미 카이사르로 세운 아들 콤모두스와 함께 로마에서 다시 개선식을 했다
176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로마에 이르러 개선하고 서둘러 라비니움으로 감
176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아버지와 함께 임페라토르로 환호받고 개선식을 치름
177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스키타이(북방) 사정이 다시 급해져 마르쿠스가 아들 콤모두스를 서둘러 크리스피나와 혼인시킴
178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마르쿠스가 벨로나 신전의 피 묻은 창을 던지는 의례 뒤 출정 — 파테르누스에게 대군을 주어 전선에 보내고 열 번째 임페라토르 환호
18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콤모두스가 로마에 들어서자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와 꽃을 들고 맞음. 유피테르 신전에 들른 뒤 궁으로 감
180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아버지가 거의 끝낸 전쟁을 적의 조건에 맞춰 접고 로마로 돌아와, 사오테루스와 개선 행렬을 함
18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콤모두스가 로마에 와 원로원에서 사소한 말을 늘어놓음 — 아버지를 진창에서 구했다는 허풍
18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원형경기장 입구에서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루킬라의 연인)가 콤모두스를 칼로 노리고 「이것이 원로원이 보낸 칼이다」 — 루킬라가 꾸민 일, 암살 실패
18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콤모두스가 부왕의 친구들을 물리고 이탈리아 출신 페렌니스를 근위대장으로 앉혀 정무를 맡김
18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누이 루킬라가 퀸티아누스를 꼬드겨 콤모두스 암살을 꾀함. 퀸티아누스가 극장 통로에서 단검을 뽑고 소리치다 붙잡힘
18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퀸티아누스의 외침이 콤모두스의 가슴에 박혀 이후 원로원 전체를 적으로 봄
18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콤모두스가 살비우스 율리아누스·타루테니우스 파테르누스와 한 귀부인 등 많은 이를 살해 — 율리아누스는 대군을 갖고도 반란을 꾸미지 않았음
185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브리타니아 군단이 1천5백 창병을 이탈리아로 보내 페렌니스를 고발 — 콤모두스가 그들 앞에 근위대장을 넘김
185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근위대장 페렌니스가 병사들 손에 구타·살해, 처자와 누이까지 죽음
185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카피톨리움 경기장에 철학자 차림의 사나이가 뛰어들어 「페렌니스의 칼이 목에 닿았다」고 외침. 페렌니스가 그를 잡아 죽임
185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브리타니아 군이 보낸 1500명의 창병이 페렌니스를 반역죄로 고발. 콤모두스가 그와 아들을 처형함
187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마테르누스가 군을 흩어 이탈리아로 숨어들어 대모신(키벨레) 축제 때 콤모두스를 노렸으나 동료의 밀고로 로마에서 붙잡혀 참수됨
189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로마에 역병 — 하루 2천 명이 죽은 날도 있었고, 독 바늘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범죄자도 제국 전역에서 활동
190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기근 때 서커스에서 소녀 인솔의 아이들 외침으로 폭동, 콤모두스가 접에 질려 클레안데르와 그 아들을 죽이게 하고 군중이 시신을 끌고 다님
19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대장 클레안데르가 곡물을 사재기하고 값을 올려 굶주림을 키움(곡물 관리 파피리우스는 그의 아래)
19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군중이 클레안데르를 내놓으라고 교외 별궁으로 몰려가자 기병대가 베어 가르고, 시민은 지붕에서 돌과 기와를 던져 맞섬. 로마 시내 시가전
19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누이 파딜라가 콤모두스에게 달려가 재난의 원인을 넘기라고 호소. 클레안데르가 목이 잘려 창에 꽂혀 돌려지고 소요가 가라앉음
190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분노한 시민을 견디지 못한 코모두스가 클레안데르를 군중에게 넘겨 처벌케 함
19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콤모두스가 로마를 「콤모디아나」, 군단을 「콤모두스 군단」으로 개명하고 헤라클레스를 자칭, 열두 달 이름까지 자기 칭호로 바꿈
19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콤모두스 사망 전조 — 평화 신전 부근 밤 화재가 번져 궁전 일부와 국가 기록 대부분이 소실
191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한밤의 불로 평화의 신전과 주변 건물이 타고 베스타 신전까지 번짐. 사람들은 전쟁이 올 징조라고 풀이함
192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콤모두스가 독살 시도에 실패하자 체육장에서 안마사에게 목이 졸려 죽었고 원로원은 이름을 지우도록 했다
19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콤모두스가 원형경기장에서 14일 연속 구경거리 — 첫날 혼자 곰 1백 마리를 사살하고 디오 등 원로원이 지켜봄
19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라이투스·에클렉토스·마르키아가 독살에 실패하자 운동선수 나르키소스에게 욕조에서 콤모두스를 교살하게 함(12년 9개월 14일 재위)
19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콤모두스가 「헤라클레스, 유피테르의 아들」을 자칭하고 사자 가죽에 곤봉을 들고 다님. 달 이름도 바꿈
19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원형경기장에서 콤모두스가 높은 단 위에서 창과 화살로 짐승을 쓰러뜨림. 사자 100마리를 창 100개로 잡는 쇼도 함
19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콤모두스가 검투사 학교에서 검투사 차림으로 새해를 맞으러 나서려 하고, 마르키아·라이투스·에렉투스 등의 이름을 적은 사형 명단을 침상에 둠
19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어린 소년이 명단을 가져가 마르키아가 읽고 포도주에 독을 탐. 콤모두스가 토하자 나르키소스가 목을 졸라 숨지게 함. 13년 재위 끝
19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라이투스와 에렉투스 일행이 한밤에 페르티낙스의 집을 찾아가 황제 자리를 권함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페르티낙스가 비밀리에 근위대 막사로 가 1인당 1만2천 세스테르티우스를 약속하고 밤에 원로원에서 「병사들이 나를 황제로 부르지만 사임하겠다」고 선언 — 원로원이 진심으로 추대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페르티낙스가 황제로, 콤모두스는 공적(公敵)으로 선언 — 시신을 찢으려던 군중은 이미 묻혔다는 말에 동상만 훼손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국고에 백만 세스테르티우스뿐 — 페르티낙스가 콤모두스의 조상·무기·가구·총애자를 팔아 근위대에 약속금, 시민에게 1인 1백 데나리우스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근위대와 라이투스가 집정관 팔코를 황제로 세우려는 음모 — 페르티낙스가 곡물 시찰에서 돌아와 원로원에 알리고 팔코의 목숨을 살림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병사 2백이 궁에 난입 — 페르티낙스는 설득하려 나갔다가 살해, 에클렉토스만 곁에서 싸우다 죽음(67세 가까이, 재위 87일)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근위대 막사 앞에서 제국 경매 — 율리아누스가 1인당 2만5천 세스테르티우스를 불러 술피키아누스를 이기고 황제로 받아들여짐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서커스에서 군중이 밤낮 율리아누스를 규탄하며 시리아의 니게르에게 구원을 외침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율리아누스가 원로원에 세베루스를 공적으로 선언하게 하고 교외에 방벽을 쌓아 도시가 진영으로 변함(코끼리·미세눔 수병 동원)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병사들이 페르티낙스 살해자들을 체포하고 원로원이 율리아누스를 사형 선고, 세베루스를 황제로 추대 — 율리아누스는 궁에서 살해(66일 재위)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세베루스가 로마에 들기 전에 페르티낙스 살해 근위대를 포위해 무장·말을 빼앗고 로마에서 추방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세베루스가 성문까지 기병복, 이후 도보 시민복으로 입성 — 꽃과 월계수로 장식된 도시, 전군이 무장행진
19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세베루스가 포룸에서 페르티낙스의 밀랍상 장례를 치러 신격화 — 마르스 광장 3층 화장대에 불을 붙이자 독수리가 날아오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대 진영에서 라이투스가 콤모두스가 죽었다고 알리자 군중이 페르티낙스를 아우구스투스로 환호하고 병사들도 따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페르티낙스가 개간지를 개간자에게 주고 10년 면세를 약속하며 관세·밀고자를 없애는 개혁을 시작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병들이 정오에 궁으로 난입. 페르티낙스가 연설로 달랬으나 일부가 덤벼 그를 죽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병들이 진영 성벽 위에서 제국을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겠다고 외침. 율리아누스가 올라가 병사당 큰 돈을 약속해 낙찰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병사들이 율리아누스를 호위해 궁으로 갔으나 시민은 돈으로 제국을 산 그를 욕하며 멀리서 따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이탈리아 도시들이 월계수를 들고 문을 열어 세베루스를 맞음. 율리아누스는 지키지 못함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원로원이 세베루스를 단독 황제로 선포하고 보낸 호민관이 홀로 남은 율리아누스를 죽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근위병들을 무기 없이 월계수만 들고 나오게 해 창으로 에워싸 가두고 꾸짖은 뒤 무장과 허리띠를 벗겨 쫓아냄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싸움 한 번 없이 로마에 입성. 원로원과 시민이 월계수로 맞음
193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하사금을 나눠주고 새 근위대를 뽑은 뒤 이탈리아에서 신병을 모아 동방 원정을 준비. 일리리아 군은 트라키아로 내려와 합류시킴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민중·원로원이 코모두스 시신을 갈고리로 끌어 티베리스에 던지라 했으나 페르티낙스의 명으로 하드리아누스 묘에 안치됨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밤중에 원로원으로 가 콩코르디아 신전에 앉았고, 폼페이아누스가 제위를 권했으나 사양, 아침에 의원들이 몰려와 황제로 환호함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페르티낙스가 3월 28일(원문: 4월 칼렌다이 5일 전) 살해됨; 향년 60세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페르티낙스 사후 율리아누스가 원로원이 닫힌 것을 보고 두 대대장에게 끌려 근위대 병영에 이르러 술피키아누스와 황제 자리를 다툼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병사 집회 뒤 저녁에 원로원에 가 무조건 몸을 맡기자 원로원 결의로 황제로 환호받고 호민관 권한·프로콘술 권한을 받음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원로원 사절단의 노력으로 율리아누스가 궁정에서 일개 병사에게 살해됨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무장한 채 로마에 들어와 카피톨리움과 궁정에 올랐고, 이튿날 무장 병사와 친구들과 함께 원로원에 나가 황제권 장악의 이유를 설명함
19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세베루스가 로마에 셉티조니움과 세베루스 목욕탕 등을 지음(셉티미우스 목욕탕은 수로가 무너져 쓸모 없었음)
195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알비누스를 공개 전쟁으로 칠 구실이 없자 은밀히 제거하려 함
196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사투르날리아 직전 마지막 경마에서 군중이 일제히 「언제까지 이런 일을 겪고 언제까지 전쟁을 하나」 외침 — 하늘의 불·은빛 비 등 불길한 징조
196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군 앞에서 니게르를 친 이유를 설명하며 알비누스의 배신을 같은 방식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선동
197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세베루스가 술라·마리우스·아우구스투스의 가혹함을 칭송하고 콤모두스를 변호하는 연설 뒤 알비누스 편 35인을 풀어 주고 29인(페르티낙스의 장인 술피키아누스 포함)을 사형
197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말을 타고 로마에 들어서자 시민은 월계수로 맞고 원로원은 호칭을 바침
197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검투 경기와 하사금을 베푼 뒤 파르티아 전쟁에 출발함
19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병사들에게 곡물 배급·금반지·아내와 동거를 허락해 군 기강을 풀어 놓았다고 헤로디아노스가 비판
20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세베루스 재위 10주년 — 시민·근위대에게 재위 햇수만큼 금화를 주고 안토니누스와 플라우틸라의 혼례, 7일간 맹수 7백 마리 사냥 구경거리
204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세베루스가 세속경기를 열고 수백 마리 맹수를 잡는 큰 구경거리와 잦은 하사금으로 시민을 달램
204년조시모스 새 역사세베루스가 두 아들 안토니누스·게타와 함께 칠로·리보 집정관 해에 110년 주기 세기제(루디 사이쿨라레스)를 다시 열었다
205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안토니누스가 꾸민 음모 고발로 부름받은 플라우티아누스가 궁에서 살해, 시신은 거리에 던져졌다가 세베루스 명령으로 매장
205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플라우티아누스가 황제 부자를 죽일 음모로 호민관을 보냈다 들통나 황궁으로 불려가 살해됨. 시신은 거리에 버려짐
21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안토니누스가 어머니 거처로 불러 화해시키려는 척 동생 게타를 데려가 백인대장들이 어머니 품 안에서 게타를 살해(22세 9개월)
21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안토니누스가 막사로 달려가 병사들에게 약속을 쏟은 뒤 게타 편 해방노예·병사 약 2만 명(남녀)을 궁에서 죽이고 파피니아누스 등 명사를 살해
211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로마에서 세베루스의 장례와 신격화. 불탄 화장대에서 독수리가 날아올라 영혼을 하늘로 옮긴다고 믿음
211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두 형제가 궁을 갈라 쓰고 서로 독을 의심해 식탁도 따로 함. 군과 관리들이 두 파로 갈림
211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게타 살해 뒤 카라칼라가 근위대에 「동생이 무장한 자들과 나를 덮쳤다」고 변명함
21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부친 사후 카라칼라가 근위병영에서 동생이 음모를 꾸민다고 호소한 뒤 궁정에서 동생을 죽이고 시신을 곧 태우게 함
21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카라칼라가 게타의 측근 수많은 사람을 죽임. 근위대장이자 법학자 파피니아누스도 포함
21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파트루이누스가 피우스 신전 앞에서 살해되고 파피니아누스와 그 아들(재무관)도 살해되어 시신이 거리에서 끌려다님
21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로마에 카라칼라 목욕탕을 지음; 건축가들이 둥근 방(cella soliaris)은 재현할 수 없다고 함
216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카라칼라가 로마에 훌륭한 목욕장(안토니누스 욕장)을 지었으나 달리 기억할 만한 일은 없었다
217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불카날리아 날 벼락이 원형경기장을 쳐 윗층과 경기장 안이 모두 불타고 수도관을 비워도 못 껐음 — 같은 날 테베레 범람
219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엘라가발루스 숭배 — 신을 유피테르보다 앞세우고 스스로 사제가 되어 할례와 돼지고기 금기를 지켜 「아시리아인」이라 불림
219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엘라가발루스가 마이사의 재촉으로 로마를 향해 떠남
219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로마에 들어서자 속주 일을 팽개치고 엘라가발루스 신을 팔라티누스 언덕에 안치해 신전을 지음
220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엘라가발루스가 코르넬리아 파울라와 혼인(잔치·검투·호랑이 51마리 도살) 뒤 이혼하고 베스타 여사제 아퀼리아 세베라와 동거
220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엘라가발루스가 신 엘라가발루스의 아내로 카르타고의 우라니아를 불러 궁에 두고 혼례 선물을 거둠
22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엘라가발루스가 흑석 신상을 황금 모래 깐 길로 옮기는 행렬을 하고 시민이 횃불과 꽃으로 따름
220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엘라가발루스가 베스타 여사제와 혼인하며 사제와 여사제의 혼인이 알맞다고 둘러댐
221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엘라가발루스가 사촌 바시아누스를 원로원에 데려와 마에사·소아이미아스를 양옆에 두고 양자로 삼고 신의 명이라며 알렉산데르로 개명
221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병사들이 엘라가발루스의 여장과 춤을 경멸해 신중한 알렉산데르에게 마음을 옮기고 그를 지킴. 모후 맘마이아가 음식도 직접 살핌
22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입양했던 알렉산데르를 후회해 내치고 원로원에 카이사르 칭호를 박탈하라 명했으나 침묵뿐이었음
222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엘라가발루스가 군영(근위대 막사)에서 재위 30개월 만에 죽임을 당했다
22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엘라가발루스가 알렉산데르를 해치려다 근위대 소요 — 병영에서 상자에 숨어 달아나려다 발각되어 18세에 살해, 어머니도 함께 죽고 시신은 끌려다니다 테베레에 던져짐
222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알렉산데르가 곧바로 황제가 되어 도미티우스 울피아누스에게 근위대와 제국 업무를 맡김
22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대 진영에서 병사들이 알렉산데르만 환호하자 격분한 엘라가발루스가 소란꾼을 벌하려 하자 병사들이 그와 어머니를 죽임. 시신은 시궁에 던져짐
22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병사들이 알렉산데르를 황제로 선포해 궁에 들임. 아직 어린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지도 아래 있음
222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알렉산데르가 학식 있는 법관과 전쟁 경험 있는 장교로 관직을 채움. 모후가 유혹하는 자를 궁에서 멀리함
22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엘라가발루스의 시신이 하수구에 들어가지 않자 추를 달아 아이밀리우스 다리에서 티베리스에 던짐
22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3월 노나이 하루 전, 콩코르디아 신전 원로원 회의에서 알렉산데르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음
22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울피아누스가 플라비아누스·크레스투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이었으나 곧 근위대에게 밤에 공격받아 궁으로 도망쳤으나 살해
223년카시우스 디오 로마사울피아누스 생전에 시민과 근위대가 사소한 일로 사흘간 시가전 — 병사들이 건물에 불을 지르려 하자 시민이 화평
233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로마로 돌아와 성대한 개선식을 치르고 원로원에 '페르시아를 이겼다'고 보고함(9월 25일 기록)
234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게르마니아 전쟁에 출발할 때 시민과 원로원이 100~150마일을 배웅함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고르디아누스가 보낸 재무관 일행이 막시미누스의 근위대장 비탈리아누스에게 비밀 서한을 핑계로 다가가 찔러 죽임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원로원이 속주 총독들에게 사자를 보냄. 대부분 막시미누스 편 관리를 죽이고 로마 편에 섰으나 일부는 사자를 죽이거나 막시미누스에게 보냄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원로원이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와 발비누스를 공동 황제로 뽑음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시민의 요구에 소년 고르디아누스(고르디아누스 1세의 손자)를 데려오게 해 카이사르로 삼음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시민이 검투사까지 끌어모아 근위대 진영을 공격하나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반격해 검투사와 군중이 쓰러짐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도시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탐. 약탈은 군중 틈에 섞인 하층민이 함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막시미누스 죽음의 소식에 로마 시민이 환희로 뛰쳐나오고 발비누스가 제물을 바침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대는 황제가 곁에 둔 게르만 호위를 의심하다가 카피톨리움 경기 중 소요를 일으킴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병이 궁에 난입해 두 노황제의 옷을 찢고 몸을 훼손한 뒤 죽여 거리에 버림
238년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근위병이 소년 고르디아누스를 황제로 환호하고 시민에게 「싫은 둘을 없앴을 뿐」이라 외침
2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6월 26일(칼렌다이 6일 전)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에서 원로원이 모여 아프리카의 고르디아누스 서한을 낭독함
2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막시무스와 발비누스가 민중에게 아우구스투스로 환호받고 고르디아누스 손자가 카이사르가 됨; 막시무스 출정 뒤 근위대와 시민 충돌로 도시 대부분이 불탐 전승
2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제사와 경기를 마친 막시무스가 카피톨리움에서 서원한 뒤 대군을 이끌고 막시미누스를 치러 출발함 전승
2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막시무스는 파르티아, 발비누스는 게르만 정벌로 정해졌으나 병사들이 어린 고르디아누스를 아우구스투스로 환호하고 병영으로 감
238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막시무스와 발비누스가 병사 폭동으로 살해되고 고르디아누스 3세가 아우구스투스가 됨(HA는 그들이 2년 통치했다고 서술)
24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야누스 문을 열고 페르시아 원정에 출발해 모이시아로 행군, 트라키아의 적을 몰아냄
248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필리푸스 부자가 로마에서 건국 1000년을 모든 종류의 경기로 기념했다
248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필리푸스 부자 치세에 로마 건국 1000년을 크게 차린 경기와 구경거리로 기념했다
260년조시모스 새 역사스키타이가 이탈리아로 들어와 로마를 위협하자 원로원이 도시의 병사와 건장한 평민을 무장시켜 야만족보다 많은 군대를 만들었고 그들은 로마를 두고 이탈리아 다른 곳을 약탈했다
26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갈리에누스·파우시아누스 집정관 해에 큰 지진과 며칠간의 어둠, 아시아 도시 피해, 로마와 아카이아 도시들에 하루 5천 명이 죽는 역병이 번짐 전승
262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비잔티온 학살 뒤 서둘러 로마로 가 원로원을 소집, 10년 축제를 거행하고 코끼리·검투사·고트·사르마티아·프랑크·페르시아를 본뜬 행렬을 벌임
271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로마에서 화폐 기술자들이 펠리키시무스 아래 위조 뒤 두려워 반란했고 코일리우스 언덕에서 싸워 병사 7천 가까이를 잃었다
271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로마에서 조폐국 직원들이 화폐를 위조하고 재정관 펠리키시무스를 죽이고 반란하자 아우렐리아누스가 극심한 가혹함으로 진압하고 귀족 여럿을 처형했다
271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아우렐리아누스가 로마를 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고 금과 보석을 가득 넣은 태양 신전을 지었다
27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마르코마니 전쟁 뒤 로마로 진군해 반란 주동자를 가혹하게 처형하고, 원로원과 상의해 로마 성벽을 확장함
27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황제 금고 관리자 펠리키시무스가 이끈 조폐공 반란을 진압하다 병사 7천 명이 전사함 전승
271년조시모스 새 역사알라만니의 이탈리아 침입을 걱정한 아우렐리아누스가 이스테르 부근에서 야만족 수천을 죽이고 성벽이 없던 로마에 성벽을 두르기 시작해 프로부스 때 마쳤다
274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아우렐리아누스가 로마에 태양 신전을 세워 선물로 장식하고 도시를 넓은 둘레의 튼튼한 성벽으로 에워쌌다
274년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아우렐리아누스가 로마에 들어와 동방과 서방을 되찾은 자로서 개선식을 했고 테트리쿠스와 제노비아가 전차 앞에서 걸어갔다
274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아우렐리아누스가 원로원 의원이자 집정관급인 테트리쿠스를 제노비아와 함께 개선 행렬에 끌고 갔으나 곧 이탈리아 감독관으로 삼음
274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동방과 서방에 대한 개선식: 오다이나투스·페르시아 왕·제노비아의 전차, 코끼리 20마리, 아마존이라 한 고트 여성들, 붉은 외투의 테트리쿠스 부자와 황금 사슬의 제노비아가 행진함
274년조시모스 새 역사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에서 개선식을 하고 팔미라에서 가져온 전리품으로 태양 신전을 지어 해와 벨루스의 상을 세웠다
281년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게르만과 블렘미에스를 이긴 개선식을 치르고 서커스에 타조·사슴·멧돼지 각 천 마리 등을 풀어 시민이 마음대로 가져가게 함 전승
306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로마에서 평민과 근위대가 아버지 헤르쿨리우스의 오랜 반대에도 막센티우스를 황제로 확인했다
306년조시모스 새 역사막센티우스가 두 군사 호민관과 돼지고기 배급 담당자 루키아누스, 근위병들의 도움으로 황제로 추대되고 반대한 도시 장관 아벨리우스를 먼저 죽였다
312년조시모스 새 역사로마 앞 들판에서 콘스탄티누스 기병이 막센티우스 기병을 흩었고, 막센티우스는 다리로 도망치다 다리가 무너져 강물에 빠져 죽었으며 그의 머리가 창에 꿰어 시내로 들어왔다
326년조시모스 새 역사로마에 온 콘스탄티누스는 아들 크리스푸스를 계모 파우스타와의 불륜 혐의로 죽이고, 슬퍼한 어머니 헬레나를 위로한다며 파우스타를 달군 욕탕에 가두어 죽게 했다고 조시모스는 쓴다
326년조시모스 새 역사죄를 씻을 길을 못 찾은 콘스탄티누스가 에스파냐인 아이귑티우스의 말대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군이 카피톨리움에 오르는 축제에서 의식을 모욕해 원로원과 민중의 미움을 샀다
348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저자 시대인 1100년째에는 아무 행사 없이 지나갔다 (필리푸스 집정관 해)
350년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로마에서 플라비우스 가문과 연이 닿은 네포티아누스가 도시 장관을 죽이고 검투사 무리로 황제를 자칭해 거리와 신전을 시체로 채웠다
411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로마가 고트족에 함락됨 — 이후 로마인이 브리튼 지배를 그침
455년프로코피우스가이세리코스가 대함대로 이탈리아에 상륙해 로마를 점령 — 막시무스는 돌에 맞아 죽음
536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아시나리아 문으로 로마 입성하고 고트는 플라미니아 문으로 철수 — 60년 만에 로마가 로마인 손에
537년프로코피우스고트 총동원 소식에 벨리사리우스가 고심 — 테베레 다리(밀비우스)에서 대응
537년프로코피우스고트가 다리 탑 문을 쉽게 부수고 건넘 — 벨리사리우스 기병 1000과 교전
537년프로코피우스고트가 로마 포위 시작 — 방책 6곳을 쌓음, 로마는 문마다 수비 배치
537년프로코피우스포위 18일째 아침 고트가 공성탑·망치로 성벽 공격 — 벨리사리우스는 웃으며 병사를 안심
537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황제에게 '로마를 확보했으나 병력이 흩어졌다'며 증원을 요청하는 서한
537년프로코피우스로마군이 연승에 취해 총력전을 원하나 벨리사리우스는 소규모 출격만 고집
537년프로코피우스비티기스가 고트 전원을 무장시켜 네로 평원 일대에서 대회전 준비
537년프로코피우스로마군이 전면전을 피하고 기병 습격으로 야만인을 이김 — 베사스 활약
537년프로코피우스하지 무렵 로마에 기근과 역병 — 고트는 전투를 피하고 지구전
538년프로코피우스야만인은 역병·굶주림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철수 방도를 논의
538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와 콘스탄티누스 사이에 프레시디오스 사건으로 불화
538년프로코피우스고트가 핀키아나 문 가까운 수도관으로 야간 침투 시도
538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하지 무렵 비티기스 진영으로 출동, 로마에는 소수만 남김
545년프로코피우스토틸라가 로마에 접근해 포위 — 농민은 해치지 않고 세금을 받겠다 선언
546년프로코피우스펠라기우스가 토틸라에게 휴전을 청했으나 허사 — 로마의 기근 악화
546년프로코피우스베사스가 곡물을 되팔며 방비를 소홀히 함 — 이사우리아 수비병이 토틸라에게 성문을 열어 로마 함락(12월 17일)
547년프로코피우스벨리사리우스가 소수 수비만 두고 로마에 들어와 무너진 성벽을 급히 수습 — 대담한 재점령
547년프로코피우스요하네스가 아케론티스 요새를 포위하다 토틸라가 로마 성벽을 공격한다는 소식에 용감한 구원 시도
550년프로코피우스토틸라가 로마를 포위 — 디오게네스가 이끄는 정예 3000이 수비하나 이사우리아가 문을 열어줌
552년프로코피우스나르세스가 승리 후 로마를 접수하고 항복받음 — 26번째 해에 요새 항복
553년프로코피우스로마 원로원·시민에게 이 승리가 오히려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고 논평
596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아우구스티누스와 수도사들을 잉글랜드 민족 선교에 파견함
601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아우구스티누스가 사제 로렌시우스와 수도사 베드로를 로마로 보내 교황에게 보고하고 물음에 대한 답을 받음
601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팔륨과 편지, 멜리투스 등 후속 인원을 보냄
601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이 브리튼으로 가는 멜리투스 편에 이교 신전을 파괴하지 말고 교회로 바꾸라는 편지를 보냄
601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이 에텔베르트 왕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냄
604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그레고리우스 서거
610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멜리투스가 로마에 가 교황 보니파키우스의 주교회의에 참석함
624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보니파키우스가 유스투스에게 팔륨과 편지를 보냄
625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보니파키우스가 에드윈 왕에게 믿음을 권하는 편지를 보냄(왕비에게도 편지)
634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호노리우스가 에드윈에게 격려 서신을, 파울리누스에게 팔륨을 보냄
640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당선자) 요한이 스코트인에게 부활절 날짜와 펠라기우스 이단에 대한 편지를 보냄
667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사제 위가르드가 대주교 서품을 받으러 로마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음; 교황이 서신을 보냄
668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교황 비탈리아누스가 테오도르를 대주교로 서품해 아드리안과 함께 브리튼에 보냄
688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서색슨 왕 카드왈라가 로마에 가 교황 세르기우스에게 세례받고 곧 서거함
692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윌리브로드가 로마에서 프리슬란트 주교로 서품받음; 수이드베르트는 브리튼에서 서품
709년베다 「잉글랜드 교회사」머시아 왕 코인레드와 이스트 색슨 왕 오파가 로마에서 수도복을 입고 생을 마침
749년프랑크 왕국 연대기뷔르츠부르크 주교 부르카르두스와 사제 폴라두스가 로마의 교황 자카리아스에게 파견되어 왕권을 두고 자문함. 교황은 실권을 쥔 자를 왕이라 부르는 것이 낫다 하고 피핀을 왕으로 세우라 허락함
781년프랑크 왕국 연대기카를이 로마에서 부활절을 지내며 교황 하드리아누스가 아들 피핀에게 세례를 주고 왕으로 도유하고 또 루도비쿠스도 도유해 왕관을 씌움. 피핀은 이탈리아, 루도비쿠스는 아퀴타니아 왕이 됨
787년프랑크 왕국 연대기바이에른 공 타실로의 사절이 교황에게 화해의 중재를 청했으나 왕이 권한 확인을 요구하니 사절이 답변권이 없다고 함. 교황이 약속을 어기면 파문하겠다고 선언하고 일은 무산됨. 왕은 사도 묘를 참배하고 프랑크로 돌아감
796년프랑크 왕국 연대기하드리아누스가 죽고 레오가 교황직에 올라 사절로 성 베드로의 열쇠와 로마시 깃발을 왕에게 보내 로마인에게 충성 서약을 받을 귀족을 요청함. 앙길베르투스가 파견되었고, 프리울리 공 에리쿠스가 훈 왕궁(링)에서 얻은 보물 일부를 성 베드로에게 보냄
799년프랑크 왕국 연대기연도 행렬 중 로마인들이 놓은 매복에 걸린 교황 레오가 말에서 떨어지고 눈이 뽑히고 혀가 잘렸다고 전해짐. 밤에 성벽으로 탈출해 스폴레토 공 위니기수스에게 구출되어 스폴레토로 옮겨짐
800년프랑크 왕국 연대기카를이 노멘툼에서 영접한 교황 레오의 인도로 11월 24일 성 베드로 성당 계단에서 성직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로마에 입성함
800년프랑크 왕국 연대기성탄절 미사에서 교황 레오가 카를의 머리에 관을 씌우자 로마 사람들이 「카롤루스 아우구스투스…로마인의 황제」라 환호하고, 교황이 옛 군주처럼 경배한 뒤 카를이 파트리키우스 칭호를 버리고 황제·아우구스투스라 불림
815년프랑크 왕국 연대기로마인들이 병든 교황 레오가 세운 새 농장들을 약탈·방화하고 로마로 쳐들어가려 하자 베르나르두스 왕이 스폴레토 공 위니기수스를 보내 폭동을 진압함
823년프랑크 왕국 연대기이탈리아에서 정의를 집행하던 로타리우스가 교황 파스칼리스의 청으로 로마에 가 부활절(4월 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제국의 관과 황제·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고, 파비아를 거쳐 6월 아버지에게 돌아옴
823년프랑크 왕국 연대기로마 교황청 관리 테오도루스와 사위 레오가 라테라노 궁에서 눈이 뽑힌 뒤 참수된 일(황제 쪽을 편든 탓, 교황 파스칼리스의 명이라는 의혹)이 황제에게 전해짐. 교황은 서약으로 결백을 선언하고 살해자는 베드로 가문이라 정당하다 주장함
824년프랑크 왕국 연대기교황 파스칼리스가 죽고 에우게니우스가 서임되자 황제가 로타리우스를 8월 중순 이후 로마로 보내 새 교황·로마인과 일을 정하게 함. 로타리우스는 에우게니우스에게 영접받아 로마의 질서를 바로잡음
1081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하인리히가 로마 진군에 나서며 로베르에게 동맹을 청함
1084년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로베르가 알라마니아 왕을 막으려 서둘러 로마로 가서 교황군과 합류

그곳이 든 같은 일

지도에서 보기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사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