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반도 · 좌표: 33.510, 126.522 · 사건 10건
| 해 | 사료 | 내용 |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8월 15일 밤 폭풍 속에서 육지를 보고 닻을 끊었으나 버티지 못하고 암초에 부딪혀 배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남(표제의 난파일은 8월 16일). 선원들이 해안으로 밀려 올라옴.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8월 16일 아침 해안을 뒤져 모인 생존자는 36명. 64명 가운데 28명이 죽음. 선장 레이니르 에흐버르츠도 시신으로 발견되어 묻음.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8월 18일 기병·보병 1천~2천 명이 와서 진을 치고, 서기(하멜)·수석 항해사·갑판장·소년 등 책임자를 목에 쇠사슬(방울)을 걸어 끌어내 엎드리게 함. 일본 나가사키로 가려 한다고 손짓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음.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8월 22일 섬 총독(목사) 소재지 「Moggan」에 이르러 수천 무장 군사 앞에서 서기 등이 총독 앞에 엎드려 심문받음. 일본으로 가겠다고만 대답. 이후 왕의 삼촌이 유배되어 죽은 집에 갇힘.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10월 29일 총독이 부른 자리에서 붉은 수염의 조선 옷 입은 사람이 네덜란드 말로 말을 걸어옴: 1626년 호란디아호로 온 얀 얀서 벨테브레(드 라이프 출신). 1627년 오우어르케르크호로 일본에 가다 표착. 왕이 일본행을 번번이 거절했다고 전함. |
| 1653년 | 하멜 「표류기」 | 12월 초 총독 임기(3년)가 끝나 신임 총독이 옴. 옛 총독은 떠나기 전 겨울옷과 신발을 지어 줌. 신임은 부식을 끊고 쌀과 소금만 줌. |
| 1654년 | 하멜 「표류기」 | 4월 말 여섯 명이 배를 훔쳐 달아나려 했으나 담을 넘던 중 개 짖는 소리에 파수가 알아채 무산. |
| 1654년 | 하멜 「표류기」 | 5월 초 조타수와 다섯 명이 해안의 빈 배를 타고 달아나다 돛대가 두 번 바다로 넘어져(한 번은 부러짐) 해안으로 떠밀림. 붙잡혀 목에 널판을 쓰고 각각 25대의 곤장을 맞고 한 달가량 누워 지냄. |
| 1654년 | 하멜 「표류기」 | 5월 말 왕의 회신이 와서 서울로 올라오라는 명이 내림(감옥에서 풀려남). |
| 1654년 | 하멜 「표류기」 | 6~7일 뒤 네 척의 배에 나누어 태워 두 다리와 한 손을 차꼬에 묶은 채 출항. 이틀 역풍으로 못 가 풀려 다시 옛 감옥으로 돌아갔다가, 4~5일 뒤 순풍에 다시 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