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한반도 · 좌표: 35.850, 129.217 · 사건 57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69년 | 삼국유사 | 3월 초하루 여섯 마을 우두머리가 알천 가에 모여 임금을 구하기로 의논함 전승 |
| 기원전 57년 | 삼국사기 | 박혁거세가 13세에 즉위해 거서간을 칭하고 국호를 서나벌이라 함 전승 |
| 기원전 57년 | 삼국유사 | 혁거세가 열세 살에 임금이 되고 알영을 왕후로 삼아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함 전승 |
| 기원전 37년 | 삼국사기 | 경성을 쌓아 금성이라 이름함 전승 |
| 기원전 37년 | 삼국유사 | 신라가 금성을 쌓음 (王曆 연표 기사) 전승 |
| 기원전 32년 | 삼국사기 | 금성에 궁실을 지음 전승 |
| 37년 | 삼국유사 | 이서국 사람들이 신라 금성을 공격해 옴 전승 |
| 57년 | 삼국유사 | 6월 탈해가 왕위에 올라 석씨를 성으로 함 전승 |
| 101년 | 삼국사기 | 성을 쌓아 월성이라 하고 왕이 옮겨 거처함 전승 |
| 364년 | 삼국사기 | 왜병이 크게 오자 풀 인형을 토함산 아래에 세우고 복병으로 크게 무찌름 전승 |
| 392년 | 삼국사기 | 고구려가 강성하다 하여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냄 |
| 393년 | 삼국사기 | 왜인이 금성을 5일 포위, 왕이 성문을 닫고 버티다 독산에서 추격해 격파함 전승 |
| 444년 | 삼국사기 | 왜병이 금성을 10일 포위, 왕이 추격하다 독산 동쪽에서 패해 장수 사졸이 반 넘게 죽음 |
| 459년 | 삼국사기 | 왜인이 병선 100여 척으로 동쪽 변경을 습격하고 월성을 포위, 왕이 성을 지키다 출병해 격파함 |
| 479년 | 삼국유사 | 倭國 군사가 침입해 명활성을 처음 쌓고 들어가 피함 (梁州城 포위에서 물러남) |
| 488년 | 삼국유사 | 비처왕이 천천정 행차에서 까마귀와 쥐의 인도로 연못 노인의 글을 받아 「射琴匣」 하라는 글대로 내전 분수승을 죽임; 정월 보름 오기일의 유래 |
| 553년 | 삼국사기 | 월성 동쪽에 새 궁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타나 절로 바꾸고 황룡사라 함 |
| 632년 | 삼국유사 | 개구리 우는 일로 서쪽 교외 여근곡에 숨은 백제 군사 5백 명을 죽이고 우소 장군과 뒤따른 1천2백 명도 격멸함 |
| 647년 | 삼국사기 | 비담·염종이 여왕을 문제 삼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함 |
| 661년 | 삼국유사 | 문무왕의 아우 차득공이 거사 차림으로 비파를 들고 서울을 떠나 민정을 살피러 나섬 |
| 663년 | 삼국사기 | 당이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삼음 |
| 681년 | 삼국사기 | 소판 김흠돌 등이 모반하다 처형됨 |
| 681년 | 삼국유사 | 신문왕이 7월 7일 즉위해 아버지를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를 지음 |
| 722년 | 삼국유사 | 10월 모화군에 관문(關門)을 쌓음 — 일본을 막는 성벽 (둘레 6,792보, 동원 3만 9,262명) |
| 742년 | 삼국유사 | 3월 3일 귀정문 누각에 오른 경덕왕이 길에서 충담사를 불러 차를 받고 「안민가」를 짓게 함 |
| 767년 | 삼국유사 | 7월 3일 대공 각간이 반란을 일으켜 왕도와 오도 주군의 96각간이 서로 싸워 석 달 동안 대란이 이어짐 |
| 768년 | 삼국사기 | 일길찬 대공과 아우 대렴이 모반해 무리를 모아 왕궁을 33일 포위하다 진압됨 |
| 779년 | 삼국유사 | 4월 회오리바람이 김유신 무덤에서 일어 미추왕릉에 들어가 하소연하니, 혜공왕이 사과해 공덕보전 30결을 줌 |
| 780년 | 삼국사기 | 이찬 김지정이 반란해 궁궐을 침범하자 김양상과 경신이 군사를 일으켜 죽임. 왕과 후비는 난병에게 해를 입음 |
| 785년 | 삼국유사 | 선덕왕이 죽자 이찬 김주원이 알천이 불어 건너지 못하는 사이 상재 아닌 경신이 먼저 입궁해 즉위함 |
| 795년 | 삼국유사 | 당 사신이 서울에 와서 한 달 머물다 돌아감 |
| 826년 | 삼국유사 | 흥덕왕이 즉위하자 곧 사신이 당에서 앵무 한 쌍을 가져옴; 암컷이 죽자 수컷이 거울을 보다 죽음 |
| 861년 | 삼국유사 | 경문왕(膺廉)이 헌안왕의 유조로 즉위함; 귀가 당나귀 귀가 되었다는 이야기 |
| 887년 | 삼국유사 | 유모 부호부인과 위홍 등이 권력을 휘둘러 도적이 들끓자 다라니 은어를 길에 던진 왕거인이 옥에 갇혔다가 하늘의 벼락으로 풀려남 전승 |
| 912년 | 삼국유사 | 봉성사 바깥문 스물한 칸에 까치가 집을 짓는 변고가 이어짐 |
| 920년 | 고려사 | 신라가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하자 왕이 군사를 보내 구했고 견훤이 물러나 이때부터 사이가 틀어짐 |
| 924년 | 고려사 | 신라왕 승영이 죽고 아우 위응이 즉위해 와서 상을 알림 |
| 924년 | 삼국유사 | 2월 19일 황룡사에서 백좌설경을 열고 선승 3백에게 공양함 |
| 927년 | 고려사 | 견훤이 군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고 왕궁에 들어가 신라왕을 군중에 끌고 가 자결을 강요 |
| 927년 | 고려사절요 | 견훤이 신라 왕도에 갑자기 쳐들어가 약탈하고 왕궁에 들어앉음. 신라 왕은 포석정에서 놀다 남쪽 이궁으로 달아남 |
| 927년 | 삼국사기 | 견훤이 구원병이 이르기 전에 왕경을 덮쳐 들어가 약탈하고 왕을 잡음 |
| 927년 | 삼국유사 | 11월 견훤이 왕경에 쳐들어와 포석정에서 연회하던 경애왕을 잡아 죽이고 김부를 세움 |
| 928년 | 삼국유사 | 3월 태조가 50기를 거느리고 서울에 이르자 왕이 교외에서 맞아 임해전에서 연회함 |
| 931년 | 고려사 | 태조가 50여 기를 거느리고 신라 도성 기내에 이르러 문안함 |
| 931년 | 삼국사기 | 태조가 50여 기를 이끌고 신라 경기에 와 왕을 뵘. 왕과 백관이 교외에서 맞음 |
| 935년 | 고려사 | 신라왕이 글을 올려 신하의 예로 뵙기를 원한다고 청함 (신라 항복) |
| 935년 | 삼국사기 | 경순왕이 사방 땅이 남에게 속해 나라가 약하다며 신하들과 의논해 땅을 들어 태조에게 항복하기로 함. 왕자는 반대하고 개골산으로 감 |
| 935년 | 삼국유사 | 10월 경순왕이 신하들과 의논해 나라를 들어 태조에게 항복하기로 하고 태자는 개골산으로 떠나 감 |
| 1073년 | 고려사 | 동번 해적이 동경 관할 파잠부곡을 노략하자 원흥진 도부서가 전함으로 초도에서 싸워 12급을 벰 |
| 1173년 | 고려사절요 | 1173년 경주 사람들이 순석·인준 일파를 쳐 죽이고 이의민 등을 성에 들였다. 의종을 객사에 가두고, 10월 경신삭에 끌고 나와 곤원사 북쪽 연못가로 데려가 술을 올림 |
| 1190년 | 고려사 | 동경에서 도적이 일어나 안찰부사 주유저가 습격하려다 피해를 입음 |
| 1199년 | 고려사 | 동경에서 도적이 다시 일어나 명주 도적과 합쳐 주군을 침탈 |
| 1200년 | 고려사 | 경주에서 이의민 족인이 주리와 틈이 생겨 싸우다 패함 |
| 1202년 | 고려사 | 최충헌이 경주 사람의 불의와 이웃 읍 공격을 이유로 재상·장수를 모아 토벌을 논의 |
| 1202년 | 고려사절요 | 1202년 경상도안찰사 지자심이 경주가 항복을 청한다고 하자 최충헌이 노해 김척후 등을 중·좌·우도 병마사로 보내 토벌. 적은 운문산·울진 초적을 모아 정국병마를 자칭 |
| 1204년 | 고려사절요 | 1204년 동경 사람이 신라 부흥을 말하며 반란을 꾀했다 하여 동경유수를 지경주사로 낮추고, 안동을 대도호부로 올림 |
| 1238년 | 고려사 | 몽골군이 동경에 이르러 황룡사 탑을 불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