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중국 · 좌표: 33.000, 112.530 · 사건 15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207년 | 한서(漢書) 제기 | 패공이 밤에 군을 되돌려 완성을 삼중으로 포위 — 진회의 설득으로 항복을 받기로 함 |
| 기원전 207년 | 한서(漢書) 제기 | 남양군 수 의가 항복하자 은후(殷侯)에 봉하고 진회에게 천호를 줌 — 이후 서쪽으로 가는 곳마다 항복, 약탈 금지 |
| 22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광무제(유수)가 이통·이질 등과 함께 완(宛)에서 거병함(나이 28) |
| 125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안제가 완에 행차했다 병이 남 |
| 184년 | 후한서(後漢書) 본기 | 주준이 완성을 함락하고 황건 별수 손하를 벰 |
| 184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황건 汝潁賊이 宛城으로 몰려 달아나자 孫堅이 한쪽을 맡아 성에 먼저 올라가 크게 격파 |
| 184년 | 자치통감 | 경자 남양 황건 장만성이 태수 저공을 공격해 죽임 |
| 184년 | 자치통감 | 장만성의 잔당이 조홍을 우두머리로 삼아 10여만으로 완성을 점거 — 주준이 형주자사 서구 등과 6~8월 포위했으나 함락 못해 소환 논의가 나옴 |
| 197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張繡가 항복했다가 다시 반란해 曹操가 패하고 장남 曹昂·조카 安民이 죽음 |
| 218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宛守將 侯音이 반란해 南陽太守를 잡아 宛에 웅거하자 曹仁이 포위, 이듬해 도륙하고 侯音을 벰 |
| 218년 | 자치통감 | 겨울 10월 남양 사람들이 부역에 시달려 완 수장 후음이 반란 — 남양태수 동리곤이 도망쳤으나 후음의 기병에 붙잡힘, 번성의 조인이 돌아와 토벌함 |
| 219년 | 자치통감 | 정월 조인이 완을 도륙하고 후음을 베고 다시 번에 주둔함 |
| 222년 | 삼국지(三國志) 정사 | 孫權이 다시 반하자 曹丕가 許昌에서 남정해 宛에 행차 |
| 303년 | 진서(晉書) 제기 | 義陽蠻 張昌이 반란해 漢을 칭하고 南陽太守 劉彬·新野王 歆을 죽임 |
| 497년 | 위서(魏書) 제기 | 완성(宛城)을 야습해 외성(郛)을 함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