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노스 알렉산드로스 원정기: 정사 사료. 다루는 해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사건 150건을 해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원문 라이선스와 출처 포함.
| 등급 | 정사 |
|---|---|
| 시점 | 내부 시점 |
| 다루는 해 |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
| 사건 수 | 사건 150건 · 지도에 놓은 84건 |
| 저자 | Arrian (Flavius Arrianus) |
| 원제 | Ἀλεξάνδρου Ἀνάβασις |
지역 분포: 서아시아 126 · 남유럽(이탈리아·그리스·이베리아·발칸) 8 · 남아시아 7 · 중앙아시아 6 · 이집트·북아프리카 3
| 해 | 장소 | 사건 | 원문 위치 |
|---|---|---|---|
| 기원전 336년 | Peloponnesus (그리스인 회합) | 필리포스 사후 알렉산드로스가 펠로폰네소스에 그리스인을 모아 페르시아 원정의 총사령을 청하고, 스파르타인만 빼고 승인받음 | 1.1.1–1.1.13 |
| 기원전 335년 | Amphipolis | 봄이 다가오자 암피폴리스에서 출발해 트리발로이·일뤼리아 쪽 트라키아로 진군, 독립 트라키아인 땅으로 들어감 | 1.1.1–1.1.5 |
| 기원전 335년 | Haemus 산길 (트라키아) | 네소스강을 건너 열흘째 헤모스 산에 이르러, 수레를 굴려 내리던 트라키아인을 방패 대형으로 막고 격퇴. 약 1,500명 전사 | 1.1.1–1.1.5 |
| 기원전 335년 | Lyginus 강 (트리발로이 땅) | 헤모스를 넘어 트리발로이 땅 뤼기노스강에서 야영 중인 트리발로이를 기습해 3,000명을 죽임 | 1.2.1–1.2.7 |
| 기원전 335년 | Ister(도나우)·Peuce 섬 | 전투 사흘 뒤 이스트로스강에 이르러, 비잔티온에서 온 배로 트리발로이가 피난한 섬에 상륙을 시도했으나 실패 | 1.3.1–1.3.6 |
| 기원전 335년 | 이스트로스 건너편 게타이의 도시 | 밤에 기병 1,500·보병 4,000으로 강을 건너 곡식밭을 헤치고 게타이를 쫓아내고 그 도시를 허물고 제사를 올림 | 1.4.1–1.4.3 |
| 기원전 335년 | 이스트로스 강변 진영 | 트리발로이 왕 쉬르모스와 켈트 사절이 우정을 청해 동맹을 맺음. 켈트는 하늘이 무너질까 두렵다고 답함 | 1.4.1–1.4.6 |
| 기원전 335년 | Pelium | 아그리안·파이오니아를 지나 클레이토스가 차지한 펠리온에 이르러 에오르다이코스강 곁에 진을 침. 이튿날 타울란티오이 왕 글라우키아스가 대군으로 합류 | 1.5 |
| 기원전 335년 | Pelium | 방진 기동으로 적을 산에서 몰아내고 강을 건너 퇴각한 뒤, 사흘 뒤 방비 없는 적진을 밤에 기습해 크게 무찌름. 클레이토스는 도시에 불을 지르고 글라우키아스에게 달아남 | 1.6.1–1.6.8 |
| 기원전 335년 | Thebai | 테바이 추방자들이 카드메이아의 수비대 장교 둘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북쪽에서 내려와 보이오티아로 들어서 올리브 숲 곁 이올라오스 땅에 진을 침 | 1.7.1–1.7.5 |
| 기원전 335년 | Thebai | 페르디카스가 명령 없이 울타리를 치고 들어가 전투가 시작되고, 알렉산드로스가 방진으로 테바이군을 성문 안으로 몰아 마케도니아군이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감 | 1.8.1–1.8.8 |
| 기원전 335년 | Thebai | 테바이 처리는 동맹군에게 맡겨져 카드메이아에 수비대를 두고 도시를 허물며 여자·아이와 생존 남자를 노예로 팖. 핀다로스의 집과 후손은 보존 | 1.9.1–1.9.9 |
| 기원전 335년 | Athenai | 아테네가 사절을 보내자 알렉산드로스는 데모스테네스 등의 인도를 요구했다가 철회하고 카리데모스만 추방. 카리데모스는 다리우스에게 감 | 1.10.1–1.10.4 |
| 기원전 334년 | Elaious | 봄에 안티파트로스에게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맡기고 보병 약 3만·기병 5천여 명으로 헬레스폰트로 떠나 집을 나선 지 20일 만에 세스토스에 이르러, 엘라이우스의 프로테실라오스 무덤에 제사 | 1.11.1–1.11.5 |
| 기원전 334년 | Ilion | 헬레스폰트를 건너 아시아에 처음 발을 딛고(전언), 일리온에 올라 트로이의 아테나에게 제사를 올리고 자신의 갑옷을 바치고 옛 무구를 가져감 | 1.11.1–1.11.5 |
| 기원전 334년 | Ilion | 일리온에서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화환을 올림 | 1.12.1 |
| 기원전 334년 | Granicus 강변 | 알렉산드로스가 오른쪽 날개를 이끌고 강으로 들어가 높은 강둑 위 페르시아 기병과 격전. 불리한 발판에서 선두가 밀리다 왕이 도착해 기병이 하나둘 상륙하며 우세해짐 | 1.15 |
| 기원전 334년 | Granicus 강변 | 페르시아 기병이 무너지자 알렉산드로스는 추격 대신 그리스 용병을 에워싸 거의 몰살하고 약 2,000명을 포로로 삼음. 마케도니아 전사자는 기병 25명 등으로 매장·보상. 아테네에 갑옷 300벌을 보냄 | 1.16.1–1.16.2 |
| 기원전 334년 | Sardis | 사르디스 70스타디온 앞에서 성채 사령관 미트리네스와 유력자들의 항복을 받고 리디아인에게 옛 법을 허용. 언덕에 제우스 신전을 지으라 명함 | 1.17.1–1.17.2 |
| 기원전 334년 | Ephesos | 나흘째 에페소스에 이르러 추방자를 불러들이고 과두정을 깨 민주정을 세우고 페르시아에 내던 공물을 아르테미스에게 바치게 함. 군중의 보복은 막음 | 1.17.1–1.17.9 |
| 기원전 334년 | Miletos | 에페소스에서 밀레토스로 가 바깥 도시를 점령하고 안쪽 도시를 봉쇄. 니카노르가 함대 160척으로 라데 섬을 먼저 차지하고 페르시아 함대(약 400척)는 뮈칼레 곶에 정박 | 1.18.1–1.18.3 |
| 기원전 334년 | Miletos | 밀레토스 협상을 거절하고 기계로 성벽을 부순 뒤 공략, 니카노르가 항구를 막아 페르시아 함대의 원조를 차단. 섬으로 피한 용병 약 300명은 휴전 조건으로 흡수 | 1.19.1–1.19.11 |
| 기원전 334년 | Halikarnassos | 알렉산드로스가 해군을 해산하고 카리아로 가 할리카르낫소스 5스타디온 앞에 진을 침. 멤논이 성을 지킴 | 1.20.1–1.20.2 |
| 기원전 334년 | Halikarnassos | 알렉산드로스가 기계를 안쪽 벽에 대자 방어군이 대거 돌격했으나 격퇴. 방어군 약 1,000, 마케도니아군 약 40 전사. 함락은 알렉산드로스가 항복의 신호를 기다려 퇴각시켜 면함 | 1.22.1–1.22.7 |
| 기원전 334년 | Halikarnassos | 오론토바테스와 멤논이 한밤에 목탑과 창고에 불을 지르고 섬 요새와 살마키스로 철수. 알렉산드로스는 도시를 허물고 프톨레마이오스에게 3,000 보병·200 기병을 맡겨 카리아를 지키게 함 | 1.23.1–1.23.4 |
| 기원전 334년 | Alinda | 카리아의 여왕 아다가 알린다를 바치고 알렉산드로스를 양자로 삼음. 알렉산드로스는 카리아 전체를 아다에게 맡김 | 1.23.1–1.23.7 |
| 기원전 334년 | Xanthos | 크산토스강을 건너자 피나라·크산토스·파타라 등 약 서른 소도시가 항복. 한겨울에 밀리아스를 침공하고 파셀리스 사절을 받음 | 1.24.1–1.24.4 |
| 기원전 333년 | Perge | 파셀리스에서 일부는 산을 넘고 자신은 해변을 따라 페르게로 감. 북풍이 불어 통과가 쉬웠다고 해석됨. 아스펜도스 사절이 50탈란톤과 말을 약속 | 1.26.1–1.26.5 |
| 기원전 333년 | Aspendos | 아스펜도스인이 바위로 달아나 재차 항복을 청하자, 인질·말과 함께 50이 아니라 100탈란톤과 매년 공물을 요구하는 조건으로 합의 | 1.27.1–1.27.8 |
| 기원전 333년 | Sagalassos | 셀게인과 동맹을 맺고 사갈라소스에서 피시디아인을 무찔러 약 500명을 죽이고 도시를 강습으로 점령, 다른 피시디아 요새도 취함 | 1.28.1–1.28.2 |
| 기원전 333년 | Kelainai | 아스카니아 호수를 지나 닷새째 켈라이나이에 이르러 10일 머물고 안티고노스를 프리기아 총독으로 삼음 | 1.29.1–1.29.3 |
| 기원전 333년 | Mytilene | 멤논이 키오스를 얻고 레스보스의 도시들을 모두 돌린 뒤 뮈틸레네를 이중 목책으로 봉쇄하다 병들어 죽음. 뮈틸레네는 파르나바조스와 협정을 맺고 투항 | 2.1.1–2.1.5 |
| 기원전 333년 | Gordion |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온 성채에 올라 고르디오스의 수레와 끈을 보고 끈을 칼로 자르거나 쐐기를 뽑아 푼 것으로 전해짐(아리아노스는 방법을 단정하지 않음) | 2.3.1–2.3.8 |
| 기원전 333년 | Ankyra | 다음 날 앙키라로 보내진 뒤 파플라고니아 사절의 복속과 동맹 제의를 받음. 카파도키아를 할뤼스강 안쪽과 일부 바깥까지 평정 | 2.4.1–2.4.11 |
| 기원전 333년 | Tarsos | 타르소스에 서둘러 닿아 아르사메스를 달아나게 했으나 퀴드노스강에서 몸을 씻다 열병에 걸림. 파르메니온의 경고 편지를 읽으면서도 의사 필립포스의 약을 마심 | 2.4.1–2.4.5 |
| 기원전 333년 | Soloi | 안키알로스를 지나 솔로이에서 수비대를 두고 은 200탈란톤을 부과, 그 뒤 킬리키아 산지 부족을 이레 동안 평정하고 아스클레피오스에 제사·행렬·경기 | 2.5.1–2.5.4 |
| 기원전 333년 | Myriandros | 말로스에서 다리우스가 소코이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 아시리아 관문을 지나 뮈리안드로스 근처에 야영하나 밤폭풍으로 발이 묶임. 다리우스는 조언을 따라 평원을 떠나 나감 | 2.6.1–2.6.2 |
| 기원전 333년 | Issos | 다리우스가 아마노스 관문을 넘어 이소스에 닿아 뒤에 남은 병자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이튿날 피나로스강으로 진군. 알렉산드로스는 30노선으로 정찰해 사실을 확인하고 장수들을 격려하는 연설 | 2.7.1–2.7.9 |
| 기원전 333년 | Issos | 이소스 전투. 알렉산드로스가 우익에서 먼저 강으로 뛰어들어 페르시아 좌익을 무너뜨리고, 중앙 방진이 갈라진 곳에서 다리우스의 그리스 용병과 격전. 프톨레마이오스 등 마케도니아인 약 120명 전사 | 2.10 |
| 기원전 333년 | Issos | 다리우스가 전차를 버리고 말로 달아나고 알렉산드로스는 해질 때까지 추격. 다리우스의 어머니·아내·아들·딸들이 진영에서 잡히고 3,000탈란톤을 얻음. 다마스쿠스 재물은 파르메니온이 접수. 마이마크테리온월, 니코스트라토스 아르콘 | 2.11.1–2.11.10 |
| 기원전 333년 | Thapsakos | 다리우스가 밤새 달아나 낮에 병사를 모아 4,000명이 되어 에우프라테스를 사이에 두려고 탑사코스로 강행군. 아뮌타스 등 용병 약 8,000은 트리폴리스를 거쳐 퀴프로스·이집트로 달아남 | 2.13.1–2.13.8 |
| 기원전 333년 | Marathos | 알렉산드로스가 코엘레시리아 총독을 세우고 포이니키아로 나아가 아라도스 왕 스트라톤을 만나 아라도스와 마라토스 등을 넘겨받기로 함 | 2.13.1–2.13.8 |
| 기원전 333년 | Marathos | 마라토스에서 다리우스의 편지(가족 반환 요구와 우호 제의)를 받고 알렉산드로스가 「아시아의 왕」으로 대하라며 응하지 않는 답장을 써 보냄 | 2.14.1–2.14.9 |
| 기원전 333년 | Sidon | 마라토스를 떠나 비블로스는 협정으로, 시돈은 주민의 초청으로 얻고 티로스로 향함. 티로스 사절이 명령에 따르겠다고 알림 | 2.15.1–2.15.6 |
| 기원전 332년 | Tyros | 알렉산드로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제사하겠다며 입성을 청하자 티로스는 마케도니아인·페르시아인 누구도 들이지 않기로 결의. 분노한 알렉산드로스가 사절을 돌려보냄 | 2.16.1–2.16.8 |
| 기원전 332년 | Tyros | 연설로 장수들을 설득하고 꿈에 헤라클레스가 손을 잡아 이끎. 본토에서 섬 도시로 방파제를 쌓기 시작. 수심이 깊어지자 티로스 삼단노선과 성벽 사격에 시달려 탑 둘을 세움 | 2.18.1–2.18.3 |
| 기원전 332년 | Tyros | 티로스가 말 수송선에 마른 나무·역청을 채운 화공선을 방파제에 박아 탑과 기계를 태움. 알렉산드로스는 더 넓은 방파제를 쌓게 하고 해군 소집을 위해 시돈으로 감 | 2.19.1–2.19.6 |
| 기원전 332년 | Tyros | 티로스가 한낮에 퀴프로스 함대를 기습해 배 셋을 가라앉혔으나, 알렉산드로스가 급히 돌아와 항구 입구에서 반격해 티로스 함대를 몰아넣고 성벽 시험 공격. 한 구역 성벽이 무너짐 | 2.22.1–2.22.2 |
| 기원전 332년 | Tyros | 다리를 놓은 배들로 성벽에 올라 알렉산드로스가 점령. 약 8,000 티로스인 전사, 마케도니아 약 400 전사, 약 30,000이 노예로 팔림. 헤라클레스 신전 피신자는 사면. 헤카톰바이온월, 아니케토스 아르콘 | 2.24.1–2.24.2 |
| 기원전 332년 | Tyros | 다리우스의 사절이 1만 탈란톤과 에우프라테스 서쪽 영토, 딸과의 혼인을 제의했으나 알렉산드로스가 거절. 가자의 환관 바티스는 입성을 거부 | 2.25.1–2.25.4 |
| 기원전 332년 | Gaza | 가자 성의 높은 둔덕 때문에 기술자들이 불가능하다 했으나 알렉산드로스가 둔덕을 쌓아 기계를 올림. 제사 중 새가 머리에 돌을 떨구자 아리스탄드로스가 도시는 얻되 몸을 조심하라 풀이 | 2.26.1–2.26.4 |
| 기원전 332년 | Gaza | 알렉산드로스가 투석기 화살에 어깨를 다침. 티로스에서 온 기계로 사방에 둔덕을 쌓고 네 번째 공격에 성벽을 뚫어 점령. 가자인은 모두 싸우다 죽고 처자는 노예. 이웃 주민으로 채워 요새로 씀 | 2.27.1–2.27.7 |
| 기원전 332년 ~ 기원전 331년 | Pelousion | 가자에서 이레째 펠루시온에 이르러 함대와 만나고 총독 마자케스가 우호적으로 맞이해 수비대를 두고 멤피스로 향함 | 3.1.1–3.1.5 |
| 기원전 332년 ~ 기원전 331년 | Memphis | 헬리오폴리스를 거쳐 나일을 건너 멤피스에서 아피스와 신들에게 제사하고 그리스 예술가들의 경기를 엶 | 3.1.1–3.1.3 |
| 기원전 331년 | Alexandreia (이집트) | 멤피스에서 강을 내려가 카노보스를 지나 마리아 호수 옆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터를 잡고 아고라·신전·성벽 자리를 직접 표시함 | 3.1.1–3.1.5 |
| 기원전 331년 | 시와 오아시스 (암몬) |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혈통을 알기 위해 암몬 신탁소로 가, 해안으로 1,600스타디온쯤 파라이토니온으로 간 뒤 내륙으로 꺾음. 모래바람으로 길을 잃자 뱀(프톨레마이오스) 또는 까마귀(아리스토불로스)가 길을 인도했다고 전함 전승 | 3.3.1–3.3.6 |
| 기원전 331년 | Tyros | 이른 봄 멤피스에서 포이니키아로 가 티로스에서 헤라클레스에게 다시 제사하고, 아테네 파랄로스호 사절의 청을 들어 그라니코스 포로를 풀어 줌. 하르팔로스에게 재물을 맡기고 탑사코스로 향함 | 3.6.1–3.6.8 |
| 기원전 331년 | Thapsakos | 헤카톰바이온월에 탑사코스에서 에우프라테스의 두 배다리를 건넘(수비하던 마자이오스는 도주). 북쪽 길로 메소포타미아를 지나 티그리스를 건너고 월식을 만나 달·해·땅에 제사 | 3.6.1–3.6.4 |
| 기원전 331년 | Gaugamela | 붙잡은 페르시아 척후에게서 다리우스가 가우가멜라에 대군을 모은 사실을 알고 나흘 쉰 뒤 한밤에 진군. 30스타디온 앞에서 방진을 세우고 지형 정찰 후 장수들에게 아시아 전체를 다투는 전투라 연설 | 3.8.1–3.8.7 |
| 기원전 331년 | Gaugamela | 알렉산드로스가 우측으로 치우쳐 가자 페르시아가 따라와 낫 전차와 기병이 충돌. 전차는 아그리아니아 투창병 등이 막고 대열을 열어 통과시킴 | 3.13.1–3.13.2 |
| 기원전 331년 | Gaugamela | 파르메니온의 구원 요청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추격을 접고 되돌아 페르시아 우익 기병과 최대의 기병전을 치르고, 파르메니온은 적 진영을 차지. 해가 질 때까지 다리우스를 추격. 퓌아넵시온월, 아리스토파네스 아르콘 | 3.15.1–3.15.7 |
| 기원전 331년 | Arbela | 알렉산드로스가 리코스강에서 쉰 뒤 한밤 강행군으로 이튿날 아르벨라에 닿았으나 도주한 다리우스는 없었고 재물·전차·창·활은 노획. 전장에서 600스타디온 추격 | 3.15.1–3.15.5 |
| 기원전 331년 | Babylon | 바빌론이 성문을 열어 맞이하자 크세르크세스가 허문 신전, 특히 벨로스 신전을 재건하라 명하고 마자이오스를 총독으로 삼음. 칼데아인의 지시대로 벨로스에게 제사 | 3.16.1–3.16.2 |
| 기원전 331년 | Susa | 바빌론에서 20일 만에 수사에 닿아 50,000탈란톤과 왕실 재물을 접수. 크세르크세스가 가져온 하르모디오스·아리스토게이톤 동상을 아테네에 돌려보냄 | 3.16.1–3.16.2 |
| 기원전 330년 | 우크시아 산지 (수시아나) | 수사에서 파시티그리스강을 건너 우크시오이 땅으로 들어가 산악 부족 마을을 밤에 습격하고, 크라테로스가 높은 곳을 막아 좁은 길을 차지. 산악 부족은 매년 공물로 땅을 유지하게 허락됨 | 3.17.1–3.17.6 |
| 기원전 330년 | 페르시스 관문 |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쌓은 장벽 앞에서 막히자 포로의 안내로 밤에 약 100스타디온 우회해 새벽에 기습. 크라테로스가 나팔 신호로 장벽을 공격해 페르시아군을 에워싸 무너뜨림 | 3.18.1–3.18.2 |
| 기원전 330년 | Persepolis | 알렉산드로스가 서둘러 페르세폴리스에 닿아 금고를 지키고 파사르가다이의 재물도 얻음. 파르메니온이 말렸는데도 페르시아 궁전을 불태움(아리아노스는 이를 비판) | 3.18.1–3.18.10 |
| 기원전 330년 | Ekbatana | 다리우스가 메디아에서 카스피 관문 쪽으로 가려 한다는 소식에 에크바타나로 진군하다, 에크바타나 사흘 앞에서 비스타네스에게 다리우스가 닷새 전에 7,000탈란톤과 보병·기병을 이끌고 달아났음을 들음 | 3.19.1–3.19.5 |
| 기원전 330년 | Rhagai | 다리우스를 쫓아 열하루째 라가이에 이르렀으나 다리우스는 이미 카스피 관문을 지나 간 뒤. 닷새 쉬고 파르티아로 향해 카스피 관문 앞에서 야영, 이튿날 관문을 통과 | 3.20.1–3.20.2 |
| 기원전 330년 | 파르티아 길 (카스피 관문 너머) | 바빌론 귀족들이 와서 베소스 등이 다리우스를 체포했다고 알림. 알렉산드로스는 기병 위주로 밤낮 강행군하고 정예 보병 500을 말에 태워 추격, 한밤에 400스타디온 가서 새벽에 적을 따라잡음 | 3.21.1–3.21.10 |
| 기원전 330년 | Zadrakarta (히르카니아) | 히르카니아로 들어가 산을 넘어 자드라카르타에 이르고, 나바르자네스와 프라타페르네스 등 다리우스의 측근이 항복. 다리우스 편 그리스 용병 약 1,500의 사절이 와 무조건 항복하겠다고 함 | 3.23.1–3.23.6 |
| 기원전 330년 | Zadrakarta (히르카니아) | 자드라카르타에서 15일 머물며 제사·경기를 열고 파르티아를 거쳐 아레이아 수시아에서 사티바르자네스를 복직시킴. 베소스가 왕관을 쓰고 아르탁세르크세스를 칭한다는 소식에 박트라로 향함 | 3.25.1–3.25.8 |
| 기원전 330년 | Artakoana (아레이아) | 사티바르자네스가 아낙시포스 등을 죽이고 아르타코아나에 아레이아인을 모았다는 소식에 박트라 행군을 멈추고 이틀에 600스타디온을 강행군. 그가 달아나자 반역자를 처벌하고 새 총독을 세움 | 3.25.1–3.25.5 |
| 기원전 330년 | 자랑가이오이의 도읍(드랑기아나) | 알렉산드로스가 필로타스의 음모를 발견. 필로타스는 마케도니아인 앞에서 유죄가 되어 창에 찔려 죽고, 미디아의 장군들에게 편지를 보내 파르메니온도 처형 | 3.26.1–3.26.4 |
| 기원전 329년 | Alexandreia ad Caucasum | 아라코시아·드랑기아 등을 복속시키고 눈 덮인 길로 카우카소스에 이르러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제사한 뒤 카우카소스를 넘음. 아레이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티바르자네스는 에리귀오스와의 전투에서 창에 맞아 죽음 | 3.28.1–3.28.4 |
| 기원전 329년 | Bactra | 드랍사카를 거쳐 박트라와 아오르노스를 첫 공격에 점령하고 아르타바조스를 박트리아 총독으로 삼음. 베소스는 옥소스를 건너 배를 태우고 소그디아나로 물러남 | 3.28.9–3.29.1 |
| 기원전 329년 | Oxos 강 | 가죽 자루에 겨를 채워 닷새에 걸쳐 옥소스를 건넘. 스피타메네스와 다타페르네스가 베소스를 넘기겠다고 하자 프톨레마이오스를 보내 열흘 길을 나흘에 감 | 3.29.1–3.29.7 |
| 기원전 329년 | 베소스가 있던 마을 (소그디아나) | 프톨레마이오스가 마을을 포위해 베소스를 넘겨받아 알렉산드로스가 지나는 길가에 목칼을 씌워 세움. 알렉산드로스가 신문하고 채찍질한 뒤 박트리아로 보내 처형하게 함 | 3.30.1–3.30.11 |
| 기원전 329년 | Marakanda | 알렉산드로스가 소그디아나의 도읍 마라칸다에 이르러 탄아이스(야크사르테스)로 진군. 약탈하던 마케도니아인을 학살한 약 3만 명이 높은 바위산으로 피해, 알렉산드로스가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화살을 맞고도 점령 | 3.30.1–3.30.6 |
| 기원전 329년 | 소그디아나의 칠 도시 (가자 등) | 알렉산드로스가 사다리로 첫 도시를 공격해 점령하고 같은 날 둘째, 이튿날 셋째를 함락. 기병으로 나머지 둘을 감시해 도망자를 베어 이틀 만에 다섯 도시를 노예로 삼음. 크라테로스는 큰 도시 퀴로폴리스를 포위 | 4.2.1–4.2.2 |
| 기원전 329년 | Kyropolis | 알렉산드로스가 말라 있던 강 수로로 정예와 몰래 성 안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돌에 머리와 목을 맞는 부상. 첫 점령에 약 8,000 전사, 15,000이 모였던 중 나머지는 물이 떨어져 항복. 일곱째 도시도 점령 | 4.3 |
| 기원전 329년 | Alexandreia Eschate | 20일 만에 새 도시를 요새화해 용병·마케도니아 퇴역병을 살게 하고 경기를 엶. 강 건너 스키타이가 모욕하자 가죽으로 건너 사격 지원 속에 스키타이 기병을 격파. 약 1,000 전사, 150 포로. 알렉산드로스는 물을 마시고 설사로 쓰러짐 | 4.4.1–4.4.9 |
| 기원전 329년 | 폴뤼티메토스 강 (소그디아나) | 스키타이 왕의 사과 사절. 한편 스피타메네스가 마라칸다 성채 포위를 풀고 도주하자 파르누케스 일행이 쫓다가, 폴뤼티메토스강 가에서 지휘 혼란 속에 포위되어 섬에서 몰살 | 4.5.1–4.5.6 |
| 기원전 329년 | Marakanda | 소식을 들은 알렉산드로스가 동료 기병 절반 등을 이끌고 사흘에 1,500스타디온을 가서 마라칸다 앞에 닿자 스피타메네스는 성을 버리고 사막까지 쫓겨 감. 알렉산드로스는 전사자를 묻고 땅을 황폐화 | 4.6.1–4.6.3 |
| 기원전 328년 | 불명 (잔치 자리) | 디오뉘소스 축일에 알렉산드로스가 디오스쿠로이에게 제사했다가 술자리에서 클레이토스와 다투고 그를 창으로 죽임(비극적 사건으로 서술) | 4.8.1–4.8.9 |
| 기원전 327년 | 불명 | 헤르몰라오스가 마케도니아인 앞에서 자백하고 처형됨. 칼리스테네스가 사주했다는 아리스토불로스·프톨레마이오스의 진술과 이를 부정하는 다른 기록이 갈림 | 4.14.1–4.14.4 |
| 기원전 327년 | Sogdiana | 알렉산드로스가 옥소스를 건너 군을 다섯으로 나눠 소그디아나를 평정. 스피타메네스는 마사게타이로 달아나 기병 600을 모아 박트리아 요새를 기습 | 4.16.1–4.16.7 |
| 기원전 327년 | 소그디아나·사막 가장자리 | 크라테로스가 마사게타이를 쫓아 사막 가까이서 따라잡아 기병 150을 죽임. 스피타메네스는 결국 패해 죽음 | 4.17.1–4.17.7 |
| 기원전 327년 | 소그디아나 바위산 | 바위 타기에 익숙한 300명이 밤에 쇠못과 아마 밧줄로 가장 가파른 곳을 올라 점령. 이 일로 옥시아르테스의 딸 록사네를 얻어 혼인함 | 4.19.1–4.19.4 |
| 기원전 327년 | 코리에네스의 바위 | 소그디아나를 마친 알렉산드로스가 파라이타카이 땅으로 가 코리에네스가 피신한 높이 약 20스타디온·둘레 약 60스타디온의 바위를 공략 | 4.21.1–4.21.10 |
| 기원전 327년 | 아스파시오이 땅 (코에스 강 일대) | 알렉산드로스가 방패병·기병·궁병을 이끌고 아스파시오이·구라이오이·아사케노이 땅으로 들어가 진군 | 4.23.1–4.23.5 |
| 기원전 327년 | Massaga | 알렉산드로스가 아사케노이의 큰 도시 마사가로 진군하자 인도 용병 7,000의 지원을 받은 수비대가 돌격해 나옴. 그를 성에서 떼어 놓으려 해 전투가 벌어짐 | 4.25.1–4.25.7 |
| 기원전 326년 | Aornos | 원주민의 안내로 프톨레마이오스를 보내 바위의 가장 쉬운 곳을 먼저 차지하게 하고, 알렉산드로스가 아오르노스 포위를 시작 | 4.29 |
| 기원전 326년 | Aornos | 알렉산드로스가 첫날 1스타디온 길이의 흙 둔덕을 쌓고 나흘째에 작은 언덕을 차지해 바위를 공략, 아오르노스를 점령한 뒤 아사케노이 땅으로 들어가 디르타 성에 이름 | 4.30 |
| 기원전 326년 | Nysa | 코펜강과 인더스강 사이 뉘사(디오뉘소스가 세웠다는 도시)에서 주민이 마케도니아에게 디오뉘소스 전설을 들려주고 자유를 인정받음 | 5.2.1–5.2.7 |
| 기원전 326년 | 인더스강 | 알렉산드로스가 인더스에 이르러 헤파이스티온이 놓은 다리와 30노선 둘을 보고 탁실레스가 보낸 은 200탈란톤·소 3,000·양 1만여 마리·코끼리 30마리·기병 700을 받음 | 5.3.1–5.3.3 |
| 기원전 326년 | Taxila | 인더스를 건너 제사를 올리고 탁실라로 진군해 탁실레스가 도시를 바침. 알렉산드로스는 히다스페스강을 향해 출발 | 5.8.1–5.8.2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알렉산드로스가 히다스페스 강가에 진을 치자 맞은편에 포로스가 코끼리 부대와 대군으로 나타나 도하 지점을 모두 지킴. 알렉산드로스가 군을 이리저리 움직여 상대를 속임 | 5.9.1–5.9.4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 곶과 섬 | 알렉산드로스가 30노선을 타고 방패병 절반 등을 이끌고 섬 너머로 건너 상륙. 포로스가 보낸 척후가 알아차려 포로스에게 달려감 | 5.14.1–5.14.5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프톨레마이오스의 전언으로 알렉산드로스는 포로스가 전군으로 오는 줄 알았다가 인도 병력 수를 확인하자 곧바로 기병으로 돌격 | 5.15.1–5.15.7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인도 기병이 모여 맞서자 코이노스가 뒤에서 나타나 양쪽을 막게 되어 대열이 혼란에 빠짐. 인도군이 코끼리 사이로 물러남 | 5.18.1–5.18.2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알렉산드로스의 승세를 본 크라테로스 등이 강을 건너 추격을 이어받음. 인도 보병 2만에 못 미치게, 기병 3,000이 전사. 포로스의 아들 둘이 전사하고 포로스는 항복 | 5.18.1–5.18.2 |
| 기원전 326년 | Nikaia·Boukephala | 알렉산드로스가 포로스에게 어떻게 대우받고 싶으냐고 물어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우정을 맺음. 전투지에 니카이아, 도하 지점에 말 부케팔로스를 기려 부케팔라를 세움 | 5.19.1–5.19.6 |
| 기원전 326년 | Akesines 강 | 알렉산드로스가 히다스페스 가에서 제사·경기를 마치고 크라테로스에게 도시 건설을 맡기고 이웃 인도 부족을 정벌. 이어 아케시네스강을 배와 가죽 자루로 건넘(프톨레마이오스 기록으로 폭 15스타디온) | 5.20.1–5.20.8 |
| 기원전 326년 | Sangala | 카타이오이를 비롯한 독립 인도 부족이 요새 도시 상갈라 근처에서 싸울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알렉산드로스가 진군 | 5.22.1–5.22.2 |
| 기원전 326년 | Sangala | 알렉산드로스가 상갈라 성벽 앞 호수 사이에 흙 둔덕과 목책을 쌓고 밤새 탈주로를 막아 도시를 점령 | 5.24.1–5.24.6 |
| 기원전 326년 | 히파시스 강변 | 히파시스 건너가 비옥하고 코끼리가 많다는 보고를 듣고 알렉산드로스가 더 나아가려 장수들에게 연설 | 5.25.1–5.25.6 |
| 기원전 326년 | 히파시스 강변 | 긴 침묵 끝에 코이노스가 군을 대표해 돌아가자는 연설을 함 | 5.27.1–5.27.9 |
| 기원전 326년 | 히파시스 강변 | 군이 환호하고 기뻐 눈물을 흘림. 알렉산드로스는 12개의 탑만큼 높은 제단을 세워 신들에게 감사하고 기념으로 삼으라 명함. 이어 히드라오테스·아케시네스 쪽으로 되돌아감 전승 | 5.29.1–5.29.5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알렉산드로스가 히다스페스를 따라 대해까지 내려갈 배를 모음. 인더스에서 악어와 이집트콩을 보고 나일의 발원지를 찾은 줄 알았다고 서술 | 6.1.1–6.1.6 |
| 기원전 326년 | 히다스페스 강변 | 코이노스가 병으로 죽고 장사를 치름. 알렉산드로스가 포로스를 이미 정복한 7개 부족·2,000여 도시의 왕으로 세우고 함대·군을 배치 | 6.2.1–6.2.4 |
| 기원전 326년 | 말로이 땅 (아케시네스 일대) | 알렉산드로스가 방패병·궁병·아그리아니아·기병 절반을 이끌고 물 없는 땅을 지나 독립 부족 말로이를 치러 감. 첫날 아케시네스에서 100스타디온쯤 떨어진 작은 물가에서 야영 | 6.6.1–6.6.6 |
| 기원전 326년 | 히드라오테스 강 | 새벽에 히드라오테스강에 이르러 건너는 중이던 말로이를 많이 죽이고 같은 여울로 건너 추격 | 6.7.1–6.7.6 |
| 기원전 326년 | 말로이의 성채 | 군을 둘로 나눠 알렉산드로스와 페르디카스가 성벽을 공격하자 인도군이 성채로 물러남. 알렉산드로스가 작은 문으로 먼저 들어감 | 6.9 |
| 기원전 326년 | 말로이의 성채 | 사다리가 부러진 뒤 성벽을 넘은 소수 속에서 알렉산드로스가 화살에 가슴을 맞아 중상. 프톨레마이오스는 상처에서 피와 함께 바람이 새어 나왔다고 전함 | 6.10.1–6.10.4 |
| 기원전 325년 | 히드라오테스·아케시네스 합류 진영 | 반란을 막으려 알렉산드로스는 배로 히드라오테스를 내려가, 헤파이스티온이 군을, 네아르코스가 함대를 지휘하던 진영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 보임 | 6.13.1–6.13.5 |
| 기원전 325년 | 아케시네스 하류 | 살아남은 말로이와 옥시드라카이가 사절과 선물을 보내 복속을 청함 | 6.14.1–6.14.5 |
| 기원전 325년 | 아케시네스·인더스 합류점 | 아케시네스와 인더스의 합류점에서 페르디카스의 군을 기다리고 새 배를 얻고 오사디오이의 사절을 받음 | 6.15.1–6.15.7 |
| 기원전 325년 | 옥시카노스의 땅 | 옥시카노스가 항복하러 오지 않자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큰 두 도시를 강습으로 점령, 둘째 도시에서 그를 사로잡음 | 6.16 |
| 기원전 325년 | Patala | 반란한 무시카노스를 페이톤이 잡아 오게 하고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도시를 허물거나 수비대를 두며 파탈라로 감 | 6.17.1–6.17.2 |
| 기원전 325년 | 인더스 하구 | 인더스를 내려가는 중 처음 밀물·썰물을 겪어 배가 마른 땅에 얹혔다가 다시 떠오르자 크게 놀람 | 6.19.1–6.19.5 |
| 기원전 325년 | Patala | 파탈라로 돌아와 성채 요새화와 조선소를 헤파이스티온에게 맡기고 다른 하구로 대해로 나가 탐사 | 6.20.1–6.20.5 |
| 기원전 325년 | 오레이타이 땅 | 계절풍 때문에 바다길이 막히자 육로로 오레이타이로 진군해 복속시키려 함 | 6.21.1–6.21.3 |
| 기원전 325년 | 가드로시아 접경 | 가드로시아·오레이타이 경계의 좁은 길목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접근하자 대부분이 달아남 | 6.22 |
| 기원전 325년 | 가드로시아 사막 | 가드로시아 길은 물과 필수품이 없고 대부분 밤에 행군. 알렉산드로스가 바닷가 항구를 살피고 우물을 파게 하려 함 | 6.23 |
| 기원전 325년 | Pura | 오라에서 출발한 지 60일 만에 가드로시아의 도읍 푸라에 이름. 사료들은 아시아에서 겪은 가장 큰 고난이라 서술 | 6.24.1–6.24.6 |
| 기원전 325년 | 가드로시아 사막 | 행군 중 갈증 속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물을 떠 온 병사의 투구 물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쏟아 버림 | 6.26.1–6.26.5 |
| 기원전 325년 | 가드로시아의 도읍 | 가드로시아 도읍에서 군을 쉬게 하고 지시를 어긴 아폴로파네스를 해임하고 토아스를, 그가 죽자 시뷔르티오스를 총독으로 세움 | 6.27.1–6.27.6 |
| 기원전 324년 | Pasargadai |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스의 파사르가다이에 이르러 퀴로스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을 보고 슬퍼함 | 6.29.1–6.29.11 |
| 기원전 324년 | Persepolis | 페르세폴리스의 옛 궁전에 이르러 총독 오릭시네스가 신전·왕릉을 약탈하고 사람을 부당하게 죽인 죄로 교수형에 처하고 페우케스타스를 페르시스 총독으로 임명 | 6.30.1–6.30.3 |
| 기원전 324년 | 페르시스 (칼라노스의 화장) | 페르시스에서 병이 난 인도 현자 칼라노스가 병든 몸으로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말함 | 7.3.1–7.3.6 |
| 기원전 324년 | Susa | 수사에서 총독 아불리테스 부자를 잘못된 통치로 처형. 알렉산드로스 자신과 측근들의 합동 혼례를 올려 다리우스의 딸 바르시네 등과 혼인(록사네는 이미 아내) | 7.4.1–7.4.8 |
| 기원전 324년 | Susa | 알렉산드로스가 병사들의 빚을 갚아 주려 장부를 만들게 했으나 처음에는 신고자가 적었음 | 7.5.1–7.5.6 |
| 기원전 324년 | Susa | 새 도시와 정복지의 총독들이 데려온 3만 명의 같은 나이 청년들을 「후계자(에피고노이)」라 부르며 마케도니아식으로 무장·훈련시킴. 마케도니아인들은 속상해함 | 7.6.1–7.6.5 |
| 기원전 324년 | 에울라이오스 강 하구 (수시아나) | 헤파이스티온에게 보병 주력을 페르시아만까지 이끌게 하고 알렉산드로스는 함대와 함께 에울라이오스강을 내려가 바다로 나감 | 7.7.1–7.7.7 |
| 기원전 324년 | Opis | 오피스에서 알렉산드로스가 노쇠·불구 병사를 제대시키겠다고 선언하자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모욕으로 받아들여 항의함 | 7.8.1–7.8.2 |
| 기원전 324년 | Opis | 알렉산드로스가 필리포스가 마케도니아인을 가난한 목동에서 오늘에 이르게 한 일을 되짚는 연설 | 7.9.1–7.9.2 |
| 기원전 324년 | Opis | 알렉산드로스가 궁에 들어가 이틀 동안 나오지 않다가 사흘째에 페르시아인들을 불러 여단 지휘권을 나눔. 마침내 마케도니아인들이 화해를 청하며 와서 화해 | 7.11.1–7.11.9 |
| 기원전 324년 | Opis | 노쇠·불구 마케도니아인 약 1만 명이 스스로 돌아가고, 알렉산드로스는 임금과 귀향 비용에 1인당 1탈란톤을 더 줌. 크라테로스가 이들을 인솔 | 7.12.1–7.12.3 |
| 기원전 324년 | Nisaean 평원 (메디아) | 헤파이스티온과 에우메네스의 다툼이 화해로 풀림. 알렉산드로스가 왕실 암말을 키우는 니사이온 평원에서 말이 5만 필 남짓임을 봄 | 7.13.1–7.13.6 |
| 기원전 324년 | Ekbatana | 에크바타나에서 제사와 경기, 술자리를 열던 중 헤파이스티온이 열병에 걸려 알렉산드로스가 달려갔으나 이미 죽어 있었음 | 7.14.1–7.14.10 |
| 기원전 324년 | 코사이오이 산지 | 오랜 애도 뒤 동료들이 이끌어 알렉산드로스가 우크시오이와 맞닿은 호전적 산악 부족 코사이오이 원정에 나섬 | 7.15.1–7.15.6 |
| 기원전 323년 | Tigris 건너 (바빌론 접근) | 티그리스를 건너 바빌론으로 가는 길에 칼데아 철학자들이 신탁을 들어 입성을 말렸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에우리피데스의 시구로 답함 전승 | 7.16.1–7.16.5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바빌론 입성 때 그리스 사절들을 만나 후대하고 돌려보냄. 아리스토불로스에 따르면 네아르코스의 함대와 포이니키아에서 해체해 옮겨 온 함선이 바빌론에서 합류 | 7.19.1–7.19.6 |
| 기원전 323년 | Pallacopas 운하 (유프라테스) |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약 800스타디온 떨어진 팔라코파스 운하까지 에우프라테스를 내려가 유량 조절 사정을 살핌 | 7.21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바빌론으로 돌아오자 페우케스타스가 페르시아인 2만 등을 이끌고 도착하고 필로크세노스·메난드로스 등도 군을 이끌고 합류 | 7.23.1–7.23.8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알렉산드로스가 목이 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이름 없는 사람이 왕좌에 앉자 점쟁이들이 불길한 징조로 풀이 | 7.24.1–7.24.4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왕실 일지에 따르면 메디오스 집에서 마시고 목욕한 뒤 또 마시다 열이 나기 시작하여 이튿날부터 제사를 가마로 가서 올리고 열이 밤새 이어짐 | 7.25.1–7.25.6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병사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를 보았고, 그는 말을 하지 못하고 눈짓으로 인사했다고 일지가 전함. 알렉산드로스는 죽음 | 7.26.1–7.26.3 |
| 기원전 323년 | Babylon | 알렉산드로스가 제114 올림피아드, 헤게시아스 아르콘 때에 죽음. 아리스토불로스: 32년 8개월을 살고 12년 8개월 재위 | 7.28.1–7.28.3 |
원문: Perseus Digital Library, Tufts University,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 대목 나누기·정리: 이 프로젝트
CC-BY-SA 4.0 (Perseus)
https://github.com/PerseusDL (Perseus Digital Library, Tufts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