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아메리카 · 좌표: 41.958, -70.667 · 사건 36건
| 해 | 사료 | 내용 |
|---|---|---|
| 1620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12월 15일 배를 움직여 16일 바람이 좋아 탐사해 둔 항구(플리머스)에 안전히 입항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두세 달 사이 일행의 절반이 죽음. 특히 1~2월 한겨울(병 수발 중인 건강한 사람도 모자람)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원주민이 근처를 어슬렁대다 스콴토와 함께 매서소이트가 와서 여섯 조항의 평화 조약을 맺음(서로 해치지 않기, 한쪽이 공격받으면 돕기 등). 조약은 24년간 이어졌다고 적힘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4월 초 신자들을 내려놓은 메이플라워를 영국으로 돌려보냄(필요와 위험이 커 오래 정박했음)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밭에서 씨를 뿌리던 총독 카버가 더운 날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져 몇 시간 만에 의식을 잃음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카버 뒤를 이어 브래드퍼드가 총독으로, 앨러턴이 보좌역으로 선출됨. 이후 앨러턴은 매년 재선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5월 12일 플리머스 최초의 혼인. 네덜란드 풍습에 따라 목사가 아닌 행정관이 거행하는 민사 혼례로 함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11월 예고 없이 작은 배(포춘호)가 쿠시먼과 35명을 싣고 도착. 식량은 거의 없었음 |
| 162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나라간세트 사람들이 뱀 가죽에 화살 다발을 묶은 위협장을 보냄. 플리머스는 탄환을 채워 돌려보냄 |
| 1622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웨스턴이 보낸 사람들이 땅에 내려지는 것을 보고 플리머스는 친절히 맞이하기로 함(웨스턴 개인에 대한 의리와 사람들에 대한 연민) |
| 1622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그해 여름 튼튼한 목재 요새를 지음(평평한 지붕·총안, 대포를 올리고 상시 경계) |
| 1623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식량이 바닥나 모든 사람이 곡식을 더 심고 더 나은 수확을 얻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가족별 땅 배분의 계기) |
| 1623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긴 가뭄으로 작물이 시들자 금식·기도의 날을 가졌고, 저녁 무렵 구름이 끼며 부드러운 비가 내림 |
| 1623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앤호가 도착하고 열흘 안팎 뒤 폭풍에 놓쳤던 새 소형선(리틀 제임스)이 들어옴 |
| 1624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새 임원 선출 때 총독이 사임을 청하고 보좌관을 더 늘리자고 청함 |
| 1624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윈슬로가 영국에서 보급과 함께 송아지 암소 세 마리·수소 한 마리를 들여와 이 땅의 소의 시작이 됨 |
| 1624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모의와 파벌이 드러나자 총독이 법정을 열어 전 주민을 소환, 리포드와 올덤을 소추 |
| 1624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유죄 판결로 올덤은 즉시, 리포드는 6개월 유예 후 추방하기로 판결 |
| 1625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봄 선거 무렵 추방됐던 올덤이 허가 없이 되돌아와 소란, 붙잡혀 감시병 사이를 지나 쫓겨남 |
| 1625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스탠디시를 큰 배에 태워 영국의 투자자들과 뉴잉글랜드 위원회에 편지와 지침을 갖고 보냄 |
| 1626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4월 초 스탠디시의 귀환 소식에 조각배를 보내 마중, 슬픈 소식(로빈슨 사망 등)도 함께 도착 |
| 1627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모든 사람을 불러 교역은 전과 같이 부채를 갚는 데 쓰고, 명단에 오른 사람을 ‘매입자(purchasers)’로 등록하기로 결론 |
| 1627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식민지가 부채를 떠안고 6년간 교역권을 갖는 ‘인수자’(브래드퍼드·스탠디시·앨러턴 등)와 맺은 조항 계약(조항 1~6) |
| 1629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라이덴 사람 35명이 5월 배를 타고 영국을 거쳐 플리머스에 도착(두 번째 무리는 이듬해 도착) |
| 1630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처음 온 사람’ 존 빌링턴이 배심 재판에서 고의 살인으로 유죄를 받고 처형됨(식민지 첫 사형) |
| 1633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그해 전염성 열병으로 스무 명 넘게 죽음(옛 라이덴 친구들 포함) |
| 1635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8월 14·15일 토요일 지금껏 본 적 없는 폭풍우와 허리케인 같은 바람이 몰아침 |
| 1638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프렌스가 총독으로 선출된 그해 강도·살인을 저지른 사람 세 명이 재판 후 처형됨 |
| 1638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6월 1~2일경 큰 지진. 먼저 먼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리고 북에서 남으로 지나감 |
| 1639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두 식민지가 위원을 뽑아 경계를 확정하려 했으나 한 번 힝엄 회담에서는 합의 못함(찰스 강 관련 문구를 두고 다툼) |
| 1640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브래드퍼드가 신탁으로 가졌던 특허를 이제 늘어난 자유민과 여러 타운(플리머스·덕스버리·시튜에이트·톤턴·샌드위치·야머스·반스터블·마슈필드 등)에게 넘김 |
| 164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10월 15일 존 애트우드(셔얼리 측 대리인)와 브래드퍼드 등이 오랜 회계 분쟁을 끝내는 합의 조항을 맺음 |
| 1641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1638년 초빙한 사제 찬시가 침례 문제로 교회와 맞서 떠남. 교회가 다른 목사들을 불러 공개 토론 |
| 1643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4월 18일경 장로이자 브래드퍼드의 벗 브루스터가 죽음. 이어 긴 약전이 이어짐 |
| 1644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땅이 좁고 척박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이 곳을 떠나 더 나은 곳으로 옮겨 감(교회에도 위기) |
| 1646년 | 브래드퍼드 플리머스 식민지 | 5월 중순 전함 3척이 전투 대형으로 항구에 들어옴. 선장 크롬웰은 서인도에서 스페인 배를 여러 척 나포한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