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일본 · 좌표: 34.412, 129.335 · 사건 16건
| 해 | 사료 | 내용 |
|---|---|---|
| 632년 | 일본서기 | 4년 8월 당이 고표인을 보내 미타스를 송환하여 쓰시마에 정박함 |
| 664년 | 일본서기 | 3년 이 해 쓰시마·이키·쓰쿠시 등에 방인(防)과 봉화를 두고 쓰쿠시에 물을 가둔 큰 둑(미즈키)을 쌓음 |
| 667년 | 일본서기 | 6년 11월 야마토 다카야스성·사누키 야시마성·쓰시마 가네타성을 쌓음 |
| 805년 | 일본후기 | 遣唐使 제1선이 對馬嶋 下縣郡에 닿음. 大使 葛野麻呂 보고 — 작년 7월 6일 肥前국 松浦郡 田浦에서 출범, 제3·제4선은 연락이 끊김, 8월 10일 福州 長溪縣 赤岸鎭에 닿음 |
| 812년 | 일본후기 | 対馬嶋 보고 — 新羅船 3척이 서해에 떠 一艘가 下縣郡 佐須浦에 닿음. 선원을 죽이고 4인을 잡음. 밤마다 新羅 쪽에 불빛이 보여 長門·石見·出雲에 요해를 지키도록 통보함 |
| 836년 | 속일본후기 | 8월 大宰府가 遣新羅使 출발과 함께 遣唐 第三舶이 對馬嶋 上縣郡 南浦에 표착(배 위엔 3명뿐)했다고 급보 |
| 840년 | 속일본후기 | 9월 對馬嶋司가 풍파 위험으로 조·공문 수송 선박이 자주 침몰하니 신라선 6척 중 1척을 분급해 달라 청해 허락 |
| 843년 | 속일본후기 | 8월 對馬嶋 上縣郡 竹敷埼 防人이 정월 중순부터 신라 쪽에서 북소리가 들리고 저녁에 불빛이 보인다고 보고, 勅으로 방비를 명하고 筑紫人 防人 배치를 허락 |
| 849년 | 속일본후기 | 2월 對馬嶋司가 신라와 가까워 방비가 필요하다며 史生 1명을 줄이고 弩師 1명을 두게 해 달라 청해 허락 |
| 857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6월 庚寅, 대재부가 역마로 쓰시마 상현군 의주장 우라베노 가와치마로·하현군 의대령 아타이노 우라누시 등 300명쯤이 수 立野正岑의 관을 포위하고 불화살로 정잠과 종자 10명·방인 6명을 죽였다고 보고 |
| 857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7월 辛亥, 대재부에 제(制)해 쓰시마 적 무리에 협박당해 들어갔거나 옥중에서 죽은 무죄자의 처자를 용서하게 함 |
| 858년 | 일본문덕천황실록 | 2월 庚申, 쓰시마 백성이 수 다치노 마사미네를 죽이고 관사·민가를 태운 자들을 형관에 내려 죄를 심리하게 함 |
| 870년 | 일본삼대실록 | 2월 12일 대재부 보고: 대마도 사람 복부을시마려가 신라에 붙잡혔다가 탈출해, 신라가 큰 배를 짓고 병사를 훈련해 대마도를 치려 한다고 증언. 조(勅)로 연해 군에 경계를 명함 |
| 870년 | 일본삼대실록 | 대마도 보고: 신라와 가까워 늘 침탈을 당하고 활쏘기 무기가 있어도 쓸 사람이 없다 하여 노사(弩師) 1인 임용을 요청, 대재부에 적임자를 뽑아 항례로 두게 함 |
| 873년 | 일본삼대실록 | 12월 22일 대재부 보고: 지난 9월 25일 신라인 32명이 배 한 척으로 대마도에 표착, 홍려관에 가둠. 칙으로 신라는 흉독을 못 버렸으니 철저히 조사 후 돌려보내게 함 |
| 1185년 | 아즈마카가미 | (1185) 5월 23일, 範頼가 頼朝의 명으로 對馬守 親光를 맞으러 배를 對馬嶋에 보내려 했는데, 親光는 平氏의 공격을 피해 3월 4일 高麗國으로 건너갔다고 하여 그렇다면 高麗로 보내라는 지시를 島 在廳들에게 하고 오늘 이미 보냈다. 對馬 守護人 河内義長도 親光에게 보낼 글을 함께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