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집트·북아프리카 · 좌표: 31.416, 31.813 · 사건 21건
| 해 | 사료 | 내용 |
|---|---|---|
| 1169년 | 티레의 윌리엄 | 왕이 군을 이끌고 이집트로 내려가고 그리스인도 해·육로로 합류 |
| 1169년 | 티레의 윌리엄 | 왕이 다미에타를 포위, 라틴인과 그리스인이 함락을 위해 헛수고 |
| 1218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다미에타 탑(Turris Damiatae) 점령 — 그리스도인 군이 술탄의 황색 깃발을 쓰러뜨리고 깃발을 빼앗음 (난외 'Capture of the tower'). |
| 1219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다미에타 포위 뒤 무슬림군이 술탄·알라핀(Alapini)과 대군을 이끌고 되공격해 그리스도인 측이 뚫어 둔 자리를 점령; 바다와 강 사이 첫 진지는 신의 도움으로 지킴. |
| 1219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그리스도인 측(튜턴 기사단·프리슬란드인·백작·남작 등)이 무신자를 패주시킴. |
| 1219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다미에타 시민이 긴 포위·칼·굶주림·역병으로 크게 시달림. 술탄이 시민을 위해 그리스도인과 강화해 죽음을 면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때는 (줄 끊김). |
| 1219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모든 성인 축일 뒤 일요일 밤 — 누군가 들어왔으나 군영 보초의 고함에 들켜 포로·전사; 사료는 포로 100여 명으로 셈(주어 OCR 훼손). |
| 1221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바빌론 술탄이 대군을 이끌고 다미에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강의 두 갈래 위에 다리를 놓음 |
| 1222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다미에타를 잃은 일을 알리는 편지. 발신자 필리프 드 오뱅이 체스터 백작 라눌프에게 보냄 |
| 1222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예루살렘 왕이 다미에타에 이르러 군을 모은 뒤, 성 베드로·바울 축일 뒤 강과 육로로 진군해 술탄 군을 만남. 적은 그 앞에서 달아남 |
| 1222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8년 휴전을 얻는 대가로 십자군이 다미에타를 술탄에게 돌려주기로 함. 예루살렘 왕·교황 사절·공작 등 주요 인물은 인질로 남고, 맹세와 인질로 조건을 보장 |
| 1249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십자군이 다미에타 해안에 내려 맞아 나온 사라센 기병을 물리침 |
| 1249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루이 왕이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해안 선두에 섬 — 다미에타 점령 시작 |
| 1249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다미에타 점령은 하느님의 은총이나 굶겨서 얻은 것 — 옛 장 드브리엔 왕도 기근으로 취했다는 조앵빌의 평가 |
| 1249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사라센 병사를 공성 기계 밖으로 몰아냄. 빼앗은 기계 곁으로 튀르크 기병 대군이 몰려와 조앵빌이 왕에게 구원을 청함(기사들은 상처로 갑옷도 못 입음) |
| 1249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튀르크가 갤리선을 뭍으로 끌어 올려 나일 강으로 옮겨 놓아, 다미에타에서 오는 보급이 끊기고 굶주림이 닥침 |
| 1250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사라센이 다미에타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내놓을지 물음. 왕의 형제나 백작 하나를 볼모로 두자는 안을 냈으나 사라센은 왕 본인을 담보로 원함 |
| 1250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술탄이 귀족들을 갤리선 네 척에 나눠 태워 다미에타로 보냄. 조앵빌도 그 배에 탐 |
| 1250년 | 조앵빌의 성왕 루이전 | 사라센 아미랄들과 약조: 다미에타를 넘기면 왕과 귀족을 풀어 줌. 그러나 술탄은 평민(menu peuple)을 바빌론으로 보내고 일부를 죽여 약조를 어김 |
| 1250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풀려나는 조건으로 다미에타를 사라센에게 돌려주기로 함 |
| 1250년 | 매슈 패리스 대연대기 | 다미에타에서 기독교인들이 참수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