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아시아 · 좌표: 41.007, 28.966 · 사건 45건
| 해 | 사료 | 내용 |
|---|---|---|
| 324년 | 조시모스 새 역사 | 콘스탄티누스가 비잔티온 성벽을 15스타디온 넓히고 궁전·경마장·광장·신전을 세우고 로마에서 따라온 원로원 의원들에게 집을 지어 주었다 |
| 337년 |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 | 콘스탄티누스의 시신이 자기 이름을 붙인 도시로 옮겨졌고 로마 민중은 매우 슬퍼했다 |
| 408년 | 프로코피우스 | 아르카디우스가 비잔티온에서 죽음을 앞두고 어린 아들 테오도시우스와 제국의 앞일을 어찌할지 고심 |
| 518년 | 프로코피우스 | 아나스타시우스가 죽고 유스티누스가 제위를 이었으며, 카바데스는 자기 사후 왕위 문제로 근심 |
| 531년 | 프로코피우스 | 헤르모게네스의 강화 사절이 실패하고, 벨리사리우스는 지휘권을 박탈당한 채 비잔티온으로 소환 |
| 532년 | 프로코피우스 | 비잔티온에서 청색당·녹색당이 갑자기 대폭동(니카 반란) |
| 532년 | 프로코피우스 | 벨리사리우스와 문도스가 병력을 이끌고 경기장 쪽으로 몰려든 군중을 공격해 진압 — 폭동이 끝남 |
| 532년 | 프로코피우스 | 황제가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동방 총사령관에 앉히고 리비아(반달) 원정을 보냄 — 페르시아는 평화를 후회 |
| 533년 | 프로코피우스 | 유스티니아누스가 반달 원정을 공표하나 다수가 레온 원정 실패를 떠올려 반대 |
| 533년 | 프로코피우스 | 7번째 해 하지 무렵, 총독 함선이 궁 앞 해안에 정박 — 총대주교 에피파니오스가 기도하고 출항 |
| 534년 | 프로코피우스 | 벨리사리우스가 겔리메르와 반달을 데리고 비잔티온에 도착 — 600년간 장군에게 없던 개선 영예 |
| 540년 | 프로코피우스 | 벨리사리우스가 비티기스와 고트 귀족·재물을 데리고 비잔티온에 도착 — 황제가 기쁘게 맞이 |
| 542년 | 프로코피우스 | 역병이 비잔티온에서 4개월, 절정 3개월 — 하루 5천에서 1만 이상 사망 |
| 548년 | 프로코피우스 | 황제가 파쿠리오스·세르기오스를 먼저 이탈리아에 보내고 새 원정군 준비 |
| 548년 | 프로코피우스 | 아르타바네스를 중심으로 유스티니아누스 암살 음모 모의 |
| 549년 | 프로코피우스 | 벨리사리우스가 5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비잔티온으로 귀환 — 육지에는 상륙 못 하고 해안 요새만 오감 |
| 551년 | 프로코피우스 | 호스로에스의 사절 이스디구스나스가 비잔티온에서 장기 협상 끝에 5년 휴전에 합의 |
| 552년 | 프로코피우스 | 인도에서 온 수도사들이 황제에게 비단을 직접 만들겠다고 약속 — 페르시아 의존을 끊으려 함 |
| 895년 | 타바리 연대기 | 슬라브인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코무니노스 일가가 새벽 전 문을 열고 가족을 데리고 콘스탄티노스 광장으로 나감 — 쿠데타 개시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반란군이 블라케르나 성문 자물쇠를 부수고 황실 마구간으로 들어감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성금요일(4번째 인딕티오, 6589년 4월)에 코무니노스 군이 콘스탄티노플로 진입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팔라이올로고스가 함대로 도착해 환호를 시작하자 성벽 위 코무니노스 측이 조용히 하라고 함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알렉시오스가 총대주교 코스마스의 오른손으로 황후 없이 대관됨 |
| 1081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알렉시오스가 4번째 인딕티오 8월에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이삭에게 도성 행정을 맡김 |
| 1082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황제가 블라케르나 궁에서 교회 대회를 소집해 피고로서 교회 재산 정발을 변명함 |
| 1096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황제가 백작들과 고드프루아를 불러 신하의 서약을 하게 하려 함 |
| 1096년 | 티레의 윌리엄 | 베드로가 흩어진 군세의 잔병을 모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
| 1096년 | 티레의 윌리엄 | 고드프루아가 황제에 사절을 보내 억류된 위그를 풀게 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 |
| 1097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라틴군과 황제 측 사이에 양쪽에 사상자가 난 교전이 벌어짐 |
| 1097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백작들이 도성에 닿아 코스미디온 수도원 근처에서 히에론까지 군을 배치함 |
| 1097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보에몬드가 해명하자 황제가 디라키온에서의 옛 적대를 농담으로 상기시킴 |
| 1097년 | 티레의 윌리엄 | 콘스탄티노폴리스 성 앞에서 큰 전투 — 그리스군 대량 희생 |
| 1097년 | 티레의 윌리엄 | 노르망디 공 로베르와 외스타슈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황제의 큰 선물과 영접을 받음 |
| 1100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보고밀 교주 바실리오스의 제자들을 위해 궁 폴로장 치키스테리온에 화형대를 쌓음 |
| 1101년 | 티레의 윌리엄 | 황제가 튀르크를 부추겨 순례자를 매복 공격, 남은 자만 예루살렘에 이름 |
| 1118년 | 안나 콤네나 「알렉시아스」 | 황제가 숨을 거두기 직전 황후가 머리맡에 몸을 던짐 — 알렉시오스 서거 |
| 1148년 | 티레의 윌리엄 | 콘라트 황제가 귀국하고 프랑스 왕은 시리아에 머무름 |
| 1157년 | 티레의 윌리엄 | 플랑드르 백작 티에리가 도착;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왕의 혼인 사절을 보냄 |
| 1161년 | 티레의 윌리엄 | 왕이 트리폴리 백작 누이 밀리센트를 천거하나 황제가 1년 뒤 물리고 레몽의 딸 마리아를 아내로 맞음 |
| 1171년 | 티레의 윌리엄 | 왕이 일부 제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감, 황제가 맞음 |
| 1171년 | 티레의 윌리엄 | 황제 앞에 인도되어 정중히 대접받고 필요한 일을 협의 |
| 1180년 | 티레의 윌리엄 | 왕이 여동생을 세 번째 남편 온프루아에게 줌; 콘스탄티노폴리스 황제가 사망 |
| 1182년 | 티레의 윌리엄 |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소요가 일어나 안드로니코스가 득세하며 라틴인에 대한 박해 |
| 1204년 | 노브고로드 제1연대기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서사 도입부: 알렉시오스가 형 이삭을 눈멀게 하고 제위에 오르고 그 아들 알렉시오스를 가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