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집트·북아프리카 · 좌표: 31.201, 29.910 · 사건 46건
| 해 | 사료 | 내용 |
|---|---|---|
| 기원전 331년 | 아리아노스 알렉산드로스 원정기 | 멤피스에서 강을 내려가 카노보스를 지나 마리아 호수 옆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터를 잡고 아고라·신전·성벽 자리를 직접 표시함 |
| 기원전 331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이집트 해안의 섬을 사람들이 파로스라 부른다는 서술(알렉산드리아 건설 대목) |
| 기원전 222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리비아를 거쳐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러 프톨레마이오스를 만남 |
| 기원전 150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오니아스가 이집트에 예루살렘 성전을 닮은 성전을 세움 |
| 기원전 48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카이사르가 테오도토스가 내민 폼페이우스 머리를 보고 외면, 인장 반지를 받고 눈물 |
| 기원전 48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클레오파트라가 아폴로도로스만 데리고 작은 배로 어두워질 무렵 궁에 상륙 |
| 기원전 48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도주하는 폼페이우스를 알렉산드리아까지 쫓아가 그의 피살을 알게 되고, 시간과 장소가 불리한 상태로 프톨레마이오스 왕과의 위험한 전쟁에 휘말림 |
| 기원전 48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클레오파트라와 새벽까지 연회를 즐기고 요트로 이집트를 거슬러 에티오피아까지 가려 했으나 군대가 따르지 않음 |
| 기원전 47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알렉산드리아 다리 공격 중 적의 기습으로 배에 몰렸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탈출 |
| 기원전 41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풀비아는 로마에서 전쟁을 벌이는데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노획물이 됨 |
| 기원전 34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의 아들들을 왕 중 왕으로 선포하고 땅을 나눠 줌 |
| 기원전 31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클레오파트라가 함대를 육로로 끌어 아라비아 만으로 옮기려는 위험한 계획을 추진 |
| 기원전 30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기병이 적에게 넘어가고 안토니우스는 패해 도시로 후퇴하며 배신당했다고 외침 |
| 기원전 30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카이사르가 체육관 단상에 올라 두려움에 엎드린 시민을 일으켜 세워 용서함 |
| 기원전 30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클레오파트라가 팔을 내밀어 독사에 물림 |
| 기원전 30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석관과 시신을 꺼내 보고 「죽은 자가 아니라 왕을 보고 싶다」고 말함; 이집트를 속주로 삼고 운하 정비에 군대를 동원 |
| 1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집정관 해에 게르마니쿠스가 고대 유적을 보려고 이집트로 출발 |
| 40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충돌해 양쪽이 가이우스에게 사절을 보냄 |
| 41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가이우스 사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이 다시 무장하자 클라우디우스가 칙령으로 권리를 확인함 |
| 66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그리스인 분쟁이 폭동으로 번지자 총독이 군단을 풀어 진압 |
| 69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이집트 총독 티베리우스 알렉산드로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베스파시아누스를 위한 충성 서약을 시킴 |
| 69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던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로마의 승전 소식과 사절단의 축하가 도착 |
| 69년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 내전에 돌입해 장군과 군을 이탈리아로 보내고 자신은 이집트의 열쇠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감 |
| 69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알렉산드리아의 베스파시아누스가 비텔리우스 몰락 소식을 여러 경로로 들음 |
| 70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알렉산드리아에서 여름 순풍을 기다리는 동안 베스파시아누스가 이적을 보임 |
| 70년 | 타키투스 연대기·역사 | 세라피스 신전 참배를 원해 신탁을 구함 |
| 71년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티투스가 사막을 신속히 건너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러 배편으로 로마로 가기로 결심 |
| 172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부콜리가 로마군을 격파하고 알렉산드리아를 거의 함락 — 시리아에서 온 카시우스가 그들을 갈라놓아 평정 |
| 176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이집트에서 사인·철학자처럼 처신하고, 카시우스를 지지했던 알렉산드리아 시민을 용서하고 딸을 거기 남김 |
| 199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세베루스가 나일을 거슬러 올라 이집트를 시찰하고 신전의 비서(秘書)를 거둬들이며 알렉산드로스 무덤을 봉쇄 |
| 199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알렉산드리아인에게 지역 원로원을 허용함 |
| 215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토니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와 교외에서 영접한 유력 시민을 환대하는 척 연회를 열고 죽인 뒤 전군을 도시에 풀어 학살 |
| 215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학살이 밤낮 도시 전역에서 이어져 사망자 수를 원로원에 숨김 — 외지인과 수행자도 희생, 신전도 약탈 |
| 215년 | 카시우스 디오 로마사 | 안토니누스가 세라피스 신전에서 학살을 지휘하고 형 살해에 쓴 칼을 신에게 바침 — 알렉산드리아의 구경거리와 공동 식사를 폐지하고 도시를 가로벽으로 나눔 |
| 215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이 꽃과 향으로 성대히 맞음. 황제는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알렉산드로스 묘에 옷과 반지를 바침 |
| 215년 | 헤로디아노스 로마 제국사 | 카라칼라가 젊은이를 사열한다며 모아 군으로 에워싸고 학살. 구덩이에 쌓아 묻었고 피가 나일 하구를 물들임 |
| 215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병사들에게 숙주인을 죽이라 명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학살이 일어남 |
| 261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이집트에서 아이밀리아누스가 황제권을 잡고 곡창을 쥐어 기아로 도시들을 굴복시켰으나, 갈리에누스의 장수 테오도투스에게 사로잡혀 감옥에서 교살됨 |
| 261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알렉산드리아에서 병사가 총독의 노예를 죽이자 폭도가 몰려가 장군 아이밀리아누스를 돌과 칼로 공격함 전승 |
| 273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이집트를 자칭 자유국으로 만들려던 피르무스를 곧 돌아와 진압하고 이집트를 되찾은 뒤, 서쪽으로 가 테트리쿠스가 자기 군대를 넘겨 갈리아를 되찾음 전승 |
| 280년 | 황제 열전(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 이집트인이 사투르니누스를 '아우구스투스'라 외쳤으나 신중한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곧 팔레스타인으로 달아남 전승 |
| 296년 |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황제들에 대하여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아킬레우스가 황제 표지를 걸치고 일어났다 |
| 297년 | 에우트로피우스 로마사 개요 |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알렉산드리아에 포위된 아킬레우스를 약 여덟 달 만에 항복시켜 죽이고 이집트에 가혹한 처형·재산 몰수를 했다 |
| 1167년 | 티레의 윌리엄 | 시르쿠가 알렉산드리아로 물러나고 왕이 쫓아가 도시를 포위 |
| 1167년 | 티레의 윌리엄 | 도시가 왕에게 넘어오고 평화가 선포됨 |
| 1174년 | 티레의 윌리엄 | 시칠리아 왕 함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손실; 트리폴리 백작이 섭정을 맡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