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서유럽(프랑스·브리튼·저지대·독일) · 좌표: 50.776, 6.084 · 사건 17건
| 해 | 사료 | 내용 |
|---|---|---|
| 802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후 에레나가 평화 확정을 위해 사절 레오를 보내고, 황제도 암비아눔 주교 예세와 헬름가우두스 백작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냄. 부활절은 3월 27일 아헨에서 지냄 |
| 809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황제가 11월 아헨에서 성령 발출 문제로 공의회를 열고, 보름스 주교 베르나리우스와 코르비 수도원장 아달하르두스를 교황 레오에게 보냄 |
| 812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미카엘의 사절들이 아헨 교회에서 조약문을 받으며 그리스어로 찬양하고 황제를 바실레우스라 부름. 돌아가는 길에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 레오에게서도 같은 조약문을 받음 |
| 814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황제 카롤루스가 아헨에서 겨울을 나던 중, 71세쯤 되는 해 1월 28일 세상을 떠남(즉위 47년·이탈리아 정복 43년·황제 칭호 14년째) |
| 814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아키타니아 테오다둠 별궁에서 부음을 받은 아들 루도비쿠스가 30일째에 아헨에 도착해 모든 프랑크의 합의와 호의로 아버지를 계승함 |
| 817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사라고사에서 온 사라센 왕 아불라즈의 아들 아브디라만의 사절이 평화를 청하러 와 콩피에뉴에서 접견되고 아헨에 먼저 가라는 명을 받음. 3개월 억류된 뒤 돌려보내짐.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레오 황제 사절도 달마티아 문제로 아헨에 옴 |
| 817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6월 아헨 총회에서 황제가 장남 로타리우스에게 관을 씌워 이름과 제국의 동료로 삼고 다른 두 아들은 아퀴타니아와 바이에른의 왕으로 세움. 이에 앞서 성목요일에 나무 회랑이 무너져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곧 회복함 |
| 819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슬라오미르가 아헨으로 끌려와 고발을 받고 변명하지 못해 유배되고 왕국은 트라스코의 아들 케아드라구스에게 주어짐 |
| 820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1월 아헨 총회에서 리우데위투스 문제로 세 군대를 보내기로 정함. 바르키노나 백작 베라가 결투에서 패해 사형이 선고되나 황제의 자비로 감형되어 루앙으로 유배됨 |
| 821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2월 아헨 총회에서 리우데위투스 전쟁을 논의해 세 군대를 편성하고 스페인 변경 문제도 정함. 5월 노비오마굼 총회가 지정됨 |
| 824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불가르 왕이 평화를 청하는 사절을 편지와 함께 보내자 황제가 전례 없는 일이라 하여 바이에른의 마켈무스를 불가르 왕에게 보내 사정을 알아보게 함 |
| 825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5월 아헨 총회에서 불가르 사절을 접견함(불가르·프랑크 국경 확정 문제). 브리튼 우두머리들과 위호마르쿠스가 귀순했고 황제가 용서했으나 그는 약속을 어기고 이웃을 약탈하다 란트베르투스 백작의 부하들에게 자택에서 죽임당함 |
| 825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8월 아헨 총회에서 각지 사절과 노르만 땅 고도프리두스 아들들의 사절을 접견하고, 그들이 청한 평화를 10월 변경에서 확정하게 함 |
| 826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1월 말 아헨에서 황제가 아들 아퀴타니아 왕 피핀과 스페인 변경 백작들을 만나 사라센에 맞서 서부 변경을 지킬 일을 의논해 정함 |
| 828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2월 아헨 총회에서 스페인 변경 지휘관들의 실책을 가려 재산을 몰수하고, 프리울리 공 발드리쿠스는 불가르군이 상부 판노니아를 황폐화한 책임으로 지위와 변경령을 빼앗겨 변경이 백작 네 명에게 나뉨 |
| 829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사순절에 아헨에서 밤에 지진과 큰 바람이 일어나 성모 성당(카펠라) 납 기와 지붕을 크게 벗겨 냄 |
| 829년 | 프랑크 왕국 연대기 | 황제가 11월 11일(성 마르티누스 미사) 무렵 아헨으로 돌아와 성 마르티누스 미사, 성 안드레아 축일(11월 30일), 성탄을 크게 기뻐하며 지냄(연대기의 끝) |